카본트래커가 발견한 107개 기업의 재무제표 속 기후변화는?
탄소중립이 기업의 주요 ESG 사안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 IASB(국제회계기준위원회) 등은 기후변화의 재무적 영향 공개를 강조하고 있다. 탄소중립 목표 수립, 친환경에너지 전환 선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 요소를 기업의 실질적인 재무회계에 반영해야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기업들은 기후변화와 재무회계 간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영국 기후금융 싱크 탱크 '카본 트래커'(Carbon Tracker)는 지난 16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주요 글로벌 기업들의 재무제표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고려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보고서의 평가대상 기업 중 대다수는 클라이밋액션(Climate Action) 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해 기후변화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조사결과에 대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평가 대상 업체 72%...
재무 제표에서 기후변화영향 고려한 증거 찾아볼 수 없어
해당 보고서는 탄소배출이 높은 107개 기업의 2020 회계연도 재무제표를 분석하여 기후변화영향 고려도· 기후변화 관련 정량적 추정치 ·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연차보고서와의 일관성을 평가했다. 그 결과, 대다수 기업의 재무제표 기후변화정보공개 수준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해당보고서는 평가 대상 기업 72%의 재무 제표에서 기후변화 영향에 대해 고려한 증거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하고 기후변화 리스크를 명시했지만, 재무제표 상에서 해당 요소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카본 트래커는 좌초자산의 가치 하락 · 기후변화로 인한 현금흐름 영향 · 기후 재난으로 인한 시설 수명 감소, 친환경 사업에 대한 투자 및 자본조달 계획 · 환경규제로 인한 수요감소 및 매출 하락 등이 재무 제표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많은 기업들이 ESG 관리를 위해서 정량적 지표를 기반으로 추정치를 활용하여 미래 목표를 수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견됐다. 카본 트래커는 "기업들이 추정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중요 이슈를 누락하거나 잘못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 기업의 경우, 유가 변동으로 인한 재무 예측 모델에서 기후변화 요소를 반영하지 않으면 이로 인한 재무적 영향이 누락될 수 있다.
셋째, 카본 트래커는 기업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및 연차보고서에서 명시한 ESG 요소와 재무제표에 기록된 정보 간의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많은 기업들이 온실가스배출 감축을 선언했지만, 실제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이와 반대되는 내용이 드러나거나 관련 내정보가 누락된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에어버스는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Scope 1-3 탄소배출감축 4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AF), 탄소중립기술 투자, 항공기 연비 강화 등의 세부 활동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에어버스는 친환경 공정을 위한 제조 및 개인보호장비 교체 비용 , 탄소배출감축이 재고자산 평가 절하에 끼치는 영향, 친환경연료 항공기 도입이 항공기 사용 수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재무제표에 언급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본 트래커는 "글로벌 기업들이 제시한 환경 지표 및 추정치가 파리협정의 탄소중립 어젠다에 부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특히 지속가능경영 선도기업으로 잘 알려진 다농, 유니레버, 네슬레의 환경 지표들 또한 파리기후협약의 기준에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외부감사보고서, 재무제표 기후변화 리스크 평가 부재
카본 트래커가 평가 대상기업의 외부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 중 80%가 기업 재무제표의 기후변화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제회계표준위원회(IFRS),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등이 기업 재무회계 분야의 기후변화 리스크를 강조한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나머지 20%의 감사보고서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기후변화 리스크 요소는 유무형 자산의 손상차손(시장가치의 급격한 하락등으로 자산의 미래 경제적 가치가 장부가격보다 현저히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경우) · 생산 시설의 유효 수명 · 자산 처분 및 시설 폐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업의 재무제표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연차보고서 간의 명백한 일관성 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59%의 외부감사보고서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예를 들어, 에어 프랑스는 연차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물리적 요소(기후재난빈도 증가, 우천 패턴 변화)를 중요 사업 리스크로 제시했으나, 재무제표에서 해당 요소에 대한 영향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부감사보고서는 이에 대한 감사의견을 제공하지 않았다.
"탄소중립 투자 위해 재무제표의 기후변화요소 반영이 필수적"
카본 트래커는 기업 재무 제표에서 기후변화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만 탄소 중립을 위한 적절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UN 책임투자원칙(UN PRI), 기후변화 투자그룹(IGCC), 탄소중립 투자자연맹(Net-Zero Asset Owner Alliance Initiative) 등의 기관투자자 연합은 기후변화가 재무제표에서 중요 이슈로 부각되어야 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특히 이들은 작년 9월, UN PRI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공식 성명을 내고, 기업들이 재무 제표에서 기후변화 리스크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카본 트래커의 수석 애널리스트 바바라 데이비드슨 (Barbara Davidson)은 "많은 기업들이 탄소중립 전환으로 가는 과정에서 큰 재무적· 기후변화 리스크를 안고 있다"며 "이러한 리스크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면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는 지켜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