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후변화 대응 보고서 통해 5가지 대응책을 말하다
한은, ‘기후변화와 한국은행의 대응방향’ 보고서 발간 대출 및 지급결제 제도, 친환경 부문 투자 비중 확대 방안 등
최근 기후변화의 금융 리스크 가시화와 관련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28일,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발간한 ‘기후변화와 한국은행의 대응방향’ 보고서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한은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중앙은행 차원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검토・분석하고자 기후변화 대응 TF팀을 구성해 이번 보고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은은 기후변화가 우리 경제에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호성 금융안정국 금융안정연구팀장은 “심각한 기후변화가 중앙은행의 책무인 물가안정 및 금융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이에 따른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은 큰 비용과 노력이 수반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풀어야 할 당면 과제이자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탄소중립, 경제 성장과 금융 시스템에 큰 영향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중립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과정은 경제 성장과 금융 시스템에 상당한 피해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은이 주요국의 중앙은행과 금융감독 당국이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지난 2017년에 만든 녹색금융협의체(NGFS)의 분석을 토대로, ‘2℃ 시나리오’와 ‘1.5℃ 시나리오’를 구성해 기후변화 이행 리스크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다. 2℃ 시나리오는 오는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올해 대비 약 70% 감축하는 것이고, 1.5℃ 시나리오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온도 상승 폭을 1.5℃ 이내로 억제하는 것이다.
한은은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세를 부과할 경우, 205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평균 0.08~0.32%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분석 결과, GDP 성장률은 2℃ 시나리오에서는 연평균 0.08~0.09%p 감소했고, 1.5℃ 시나리오에서는 연평균 0.25~0.32%p 하락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 시나리오에서는 연평균 0.02%p 증가했고, 1.5℃ 시나리오에서는 연평균 0.09%p 상승했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탄소가격 정책이 효과적인 친환경 기술과 정책 등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고 물가상승률을 높여 장기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중립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과정은 금융 시스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이 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국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 비율)의 경우, 2℃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경에 올해 대비 최대 2.6%p 하락했고, 1.5℃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경에 올해 대비 최대 5.8%p 떨어졌다. 한은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현실화된다면, 기업의 금융자산 가치가 하락해 같은 자산을 보유한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악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은, 우리나라 정책운영 여건에 맞는 수단 검토
한은은 앞으로 기후변화가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먼저, 친환경 부문으로 자금 공급을 원활히 유도하기 위해 대출 및 지급결제 제도, 공개시장 운영 등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할 예정이다. 외화자산 운용 시 기후변화 관련 가중치를 높여 친환경 부문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방법 중 가장 먼저, 한은 대출 담보로 녹색채권을 추가하는 방안이 눈길을 끈다. 한은이 녹색채권을 적격담보증권에 포함하면, 녹색채권에 대한 수요 기반이 확대되면서 발행 여건도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두 번째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이하 ‘금중대’)을 통해 녹색성장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금중대는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한은이 은행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제도다. 한은은 금중대를 통해 녹색성장기업을 지원하면, 녹색금융 접근성이 제약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녹색자금 공급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세 번째는, 한은 대출 적격담보증권에 녹색채권이 추가될 경우, 차액결제이행용 적격담보증권의 범위를 동일한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담보증권 제공비율 인상에 따른 참가기관의 담보 납입 부담이 완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네 번째는, 특수은행이나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녹색채권을 환매조건부매매 및 증권대차 담보 대상증권에 추가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해당 녹색채권 활용도를 높이면 녹색채권 발행이 원활해지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마지막은, 현재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주식 및 채권에 투자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한은은 현재 외화 자산 다변화 차원에서 ESG 상품에 투자하는데, 앞으로는 외화 자산 전체에 ESG 요소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단계로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또한 전체 운용 프로세스에 재무 분석과 비재무 분석을 통합하는 ESG 통합 전략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한은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전담 조직을 새롭게 꾸리고, 자체적으로 탄소배출량 저감 목표 설정 및 분야별 실행 방안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이다. 단,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수치, 도입 시기에 대해서는 검토 예정이라고 했다.
임호성 팀장은 “이번 보고서는 중앙은행 입장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위험성을 고려하고, 앞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신호를 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실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현재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검토를 마친 뒤에는 후속조치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