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Insight】 로얄더치셸, 본사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이전… 기후소송 때문?

2021-11-16     박지영 editor

대표적인 석유화학기업인 로얄더치셸이 15일 본사를 둔 네덜란드 헤이그를 떠난다고 발표했다. 로얄더치의 목적지는 영국. 본사를 영국으로 옮기며 세금 납부도 영국에서 하겠다는 발표였다. 네덜란드 대표기업이 본거지를 옮긴다는 발표에 네덜란드 스테프 블로크(Stef Blok) 경제부장관는 “씁쓸하다(unpleasantly surprised)”면서도 “의도를 깊이 헤아리고 있다”고 답했다.

 

‘청정에너지 사업 가속화’ 위해 떠난다는 셸... 본심은?

로얄더치셸은 본사 이전과 함께 1907년부터 회사명이었던 ‘로얄더치셸’에서 ‘셸’로 사명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뜻하는 ‘로얄 더치’를 삭제하면서 본사를 헤이그에서 런던으로 옮기고 최고 경영진과 이사회 회동 장소도 영국으로 이동한다.

또 대주주 또는 창업자 보유 주식에 대해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주식 구조도 폐지하기로 했다. 자사주 매입을 용이하게 하고 청정에너지 사업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사측의 입장이다.

로얄더치셸 앤드류 멕킨지 이사회 의장은 “현재의 복잡한 지분 구조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지배구조 슬림화로 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주주 환원과 배기가스 배출제로 사업 전략을 가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사측은 내달 10일 주주총회를 열어 주주들에게 동의를 구할 계획이다. 이번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75%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결정의 이면에는 더욱 복잡한 계산이 깔려있다. 세금과 기후대응 압박이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번 결정 배후에 네덜란드 정부의 배당세 원천징수 문제와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탈탄소 압박이 있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유럽연합(EU) 거주자가 아닌 경우 배당세 15%를 미리 뗀다. 셸은 정부와 15% 배당세 원천징수를 놓고 오랜 기간 공방을 벌여왔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다국적 기업인 셸과 유니레버를 네덜란드로 완전히 옮기기 위해 2018년 배당금 원천징수 폐기를 추진했지만, 녹색당과 좌파 정당들은 “19억 달러 규모의 다국적 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며 반대한 후 보류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올해 셸의 반 벤 뷔르덴 CEO는 “배당세를 폐지하지 않을 경우 다른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는 배당세 등의 이유로 작년에 네덜란드를 떠나 영국으로 본사를 옮겼다. 영국은 배당세가 없는 몇 안 되는 EU 국가 중 하나다. 배당세가 없으면 셸은 자사주 매입을 비교적 용이하게 진행할 수 있다. 지금껏 분기별 B주 매입은 감독당국에 의해 일일 평균 거래량의 25% 또는 약 25달러 이내로 제한돼 왔다.

유니레버에 이어 셸까지 본사 이전 카드를 들고 나오자, 네덜란드 정부는 분주해졌다. FT에 따르면, 셸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정부는 배당세를 폐지하기 위해 의회 다수당 확보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테프 블록 경제부 장관과 한스 빌브리프 국세청 장관은 국회에서 배당세 폐지에 대해 연설하겠다고 밝혔다.

전방위적인 탈탄소 압박도 이번 결정의 주요한 배경이다. 특히 기후소송에서 셸이 패소한 게 본사 이전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앞서 네덜란드 법원은 지난 5월 셸에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라고 명령했다. ‘셸이 파리협정 목표에 위협을 준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을 네덜란드 법원이 받아들이면서다.

이에 사측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긴급 조치 필요에 동의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특정 회사에 대해서만 이뤄진 법원의 판단은 효과적이지 않다”며 항소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한 회사에 과도한 명령을 내리는 대신 에너지 시스템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결 이후 법원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공격적인 탄소감축 목표를 공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항소에 큰 부담을 느낀 셸이 본사 이전을 추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엔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써드포인트(Third Point LLC)로부터 탈탄소 압박 서한을 받기도 했다. “탄소감축과 청정에너지에 투자하고, 레거시 사업의 현금흐름을 최적화하도록 여러 독립형 사업에 뛰어들라”며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제공하는 석유사업부문과 투자가 필요한 재생에너지사업부문 두 개로 회사를 분리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네덜란드 연기금 ABP도 셸을 포함한 모든 화석연료 기업을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국이라고 기후소송 안전할까

영국에선 기후소송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답은 “아니다”다. 당장의 면피책은 될지 모르나 전세계적으로 기후소송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기 때문이다. 런던 경제대학에 따르면, 2020년 기후 소송 건수는 2017년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까지 24개국에서 884건의 기후소송이 발생한 반면, 2020년에는 1587건이 발생했다.

15일 가디언에 실린 만평. 영국정부는 환영하는 모양새나 언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소송은 영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린피스는 석유기업 BP에게 북해에서 3000만 배럴의 석유를 시추할 수 있는 허가를 내줬다는 이유로 스코틀랜드를 고소한 바 있다. 그린피스는 영국 정부와 규제기관인 석유가스청이 허가 사실을 제대로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네이처지 기후변화 섹션에는 향후 몇 년 이내로 화석연료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 건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연구도 나온다. 영국 옥스퍼드대학팀은 “높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후변화 사이의 과학적 인과관계가 보다 명확해지면서, 화석연료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후소송의 사건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