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출렁이자 ESG 평가 허점 드러났다
블룸버그, MSCI, 서스테이널리틱스의 ESG 평가가 공급망에서 허점을 안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팅롱다이(Tinglong Dai) 존스홉킨스 캐리 비즈니스스쿨 교수와 크리스토퍼 탕(Christopher S. Tang)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들의 측정 방식은 특히 공급망 분야에서 결함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HP, 아마존, 네슬레, IBM, 액센츄어 등 수많은 기업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한 두 교수는 “기업들은 글로벌 밸류 체인(GVC)으로 국내를 넘어 국외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 ESG 평가기관은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급망을 별개의 항목으로 두는 게 그 예다.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 평가가 이뤄지려면 회사 ‘자체’ 외에도 공급망 협력업체의 행동까지 반영해야 하는데, 그렇게 넓은 시각에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ESG 평가는 사회(Social)라는 범주 아래 공급망이라는 지표를 포함하고 있다. 탄소배출, 기후변화 영향, 오염, 인권 등 다른 세부 지표와 별개로 취급하면서, ‘공급망 파트너’의 탄소배출, ‘공급망 파트너’의 기후변화 영향 등은 아예 측정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공급망 파트너의 탄소 배출을 예로 들어보자. 팀버랜드와 같은 많은 회사들은 그들 자신의 사업에서 배출되는 배출량을 줄이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스코프(Scope)3 배출량'으로 알려진 공급망 파트너 및 고객의 배출량은 여전히 높을 수 있다. ESG 평가기관은 데이터 부족으로 Scope3 배출량을 집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Scope3 배출량까지 공개하는 기업은 제조업 19%, 서비스업 2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공급망의 관점에서 ESG 평가가 어려운 이유는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SG 평가기관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지의 물건을 파는 아마존의 경우 월마트보다 연간 매출액이 크다. 그러나 신고된 선박 탄소 배출량을 보면, 월마트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탄소배출량을 추적할 수 있는 물건은 아마존이 수입하는 물건 중 약 1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같은 유통업체라도 다른 공급망 방식을 가진 점도 한 몫 했다. 월마트는 중앙 집중식 공급망 구조를 가진 반면, 아마존의 공급망은 전 세계에 고도로 분산돼 있다. 매출의 많은 부분이 제3자 공급업체에서 나오고, 그 중 약 40%는 중국에서 직접 판매되기 때문에 배출량 추적과 보고가 더욱 복잡하다.
문제는 보다 좁은 범위에서 보고를 할 수밖에 없는 아마존이 월마트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아마존은 미국 이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제3자 판매자와 그 공급업체가 발생시킨 배출량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단 보고된 수준에서 탄소 배출량이 월마트보다 적기 때문에, 아마존은 ESG 펀드에서 가장 선호하는 종목 중 하나가 됐다.
또 공급망 지표는 소비자 보호에 관한 것이다. 아마존은 "지구에서 가장 고객 중심적인 기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자사 플랫폼에서 제3자 판매자가 판매한 상품으로 고객이 피해를 입었을 땐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마존은 단지 구매자와 판매자를 매칭하는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또 해외 제3자 판매업자에게는 미국의 관할권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도 주장한다.
팅롱다이 교수와 크리스토퍼 탕 교수는 “주요 ESG 평가기관들은 아마존의 공급망을 평가할 때 소비자 보호를 반영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MSCI는 2020년 아마존의 이런 소비자 책임 위험에도 불구하고 기업 지배구조와 데이터 보안 등에서 강점을 보였다며 아마존의 ESG 등급을 BB에서 BBB로 상향했다. 두 교수는 “이런 허점은 3M, 엑손모빌, 테슬라 등의 기업평가에도 충분히 우려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정보 공개 '일관성' 높이는 게 과제
통일된 보고 기준의 부재도 ESG 평가의 허점 중 하나다. 기업들은 ESG 평가 등급을 높이기 위해 특정 ESG 성과 측정치만 선택해 보고할 수 있다. 일례로 협력업체 실적을 들 수 있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기업들은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공급업체는 보고하고 '나쁜' 공급업체는 은폐하여 공급망을 효과적으로 '그린워싱' 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관성을 개선하기 위해선 ESG 평가기관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환경적으로 유해하고 비윤리적인 운영을 고려할 수 있도록 방법론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ESG 평가 기관은 기업이 공급망 파트너의 활동(예: 스코프 3 배출량)을 수집하고 공개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국가의 노력도 있다. 지난 6월, 독일 의회는 2023년 발효되는 공급망 실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따르면 독일에 본사를 둔 대기업들은 그들의 글로벌 공급망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환경적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을 근절하고, 전체 공급망에서 작업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책임이 포함된다. 법을 위반한 기업은 연간 수입의 2%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
지난 3월 발효한 유럽연합(EU)의 새로운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정(SFDR)은 다른 방식으로 압력을 가한다. 이 법안에는 ESG 평가를 포함하는 금융상품이라면 방법론에 대한 세부 사항을 보고하는 규정이 담겼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규정을 지키기 위해 일부 증권사들은 “ESG 통합”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 공시 규정이 부재한 미국에서는 ESG 평가기관이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평가기관이 자체적으로 한 기업의 전체 공급망을 조사하는 것은 복잡하다. 그러나 ESG 평가 관점을 물건의 생산부터 판매까지 엔드 투 엔드(E2E)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기업들이 자사의 공급망 전반에서 책임을 지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