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선언한 세계 최대 석유기업들, 진짜는 누구?

영국 싱크탱크 '카본트래커', 9개 에너지기업 넷제로 전략 순위 매겨 1위 이탈리아 기업 에니, 미국 엑손모빌은 꼴찌

2020-07-28     박지영 junior editor

하루에 한두 개씩 매일 쏟아지는 글로벌 기업들의 '넷제로(Net Zero)' 선언. 넷제로란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상쇄해,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한편에선 이런 의문이 등장한다. '진짜 넷제로 하는 것 맞아?' 

어느 기업의 선언이 가장 믿을만 한지 실제로 비교 분석한 곳이 있다. 영국  금융 싱크탱크인 카본 트래커(Carbon Tracker)다. 카본 트래커는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들 9곳의 넷제로 전략을 비교 분석해 순위를 매겼다. 9곳은 엑손모빌, BP, 로얄더치쉘, 토탈, 쉐브론, 에니(이탈리아), 코노코 필립스(미국 ), 에퀴노르(노르웨이), 렙솔(스페인) 등이다.  

어느 기업이 가장 실효성있는 넷제로 전략을 가진 것일까. 

 

카본 트래커, 자사 프레임워크 기초해

9개 에너지 기업 넷제로 전략 평가

카본 트래커는 석유회사들의 넷제로 목표에 대한 분석 기준을 3가지로 제시했다. 

      1) 탄소 감축 목표는 탄소 순 배출량에 근거했는가?

     2) Scope 3의 배출량을 고려했는가?

     3) 전체 사업장이 배출량 범위에 들어가는가?

첫 번째 기준은 기업이 실제 배출하는 탄소배출 총량을 줄일 수 있느냐, 없느냐다. 탄소배출은 예전처럼 하고, 이를 추후에 다른 방식으로 상쇄하는 건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카본트레커 분석에 따르면, 9개 기업 중 순배출량 감소를 약속한 기업은 에니, 렙솔, BP 등 3개 기업뿐이다. 

두 번째 기준은, Scope 단계에 따른 구분이다.  탄소 배출은 Scope 1, 2, 3으로 나누어진다. Scope 1과 2는 직ㆍ간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로, 석유 추출 및 정제의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뜻한다. 전체 탄소 배출량의 85%는  Scope 3, 즉 소비자가 석유를 사용할 때 배출된다. Scope 3의 온실가스 저감에 대한 고민을 하기 위해선, 강력한 정도의 Scope 1, 2가 필수적이다. Scope 3를 고려한 기업은 9개 중 6개 기업이다. 에니, 렙솔, BP에 이어 로얄더치쉘, 토탈, 에퀴노르 등이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석유회사의 전체 사업장이 탄소 배출량 감축 범위에 고려되었는지도 기준으로 삼았다. 코코노필립스와 엑손모빌은 전체 순위가 각각 8위, 9위를 기록했는데, 이들 기업은 일부 사업장의 탄소배출 감축만을 약속했다. 
 

탄소배출 감축 중간목표 제시한 이탈리아 석유회사 '에니' 1위 차지 

석유 회사의 넷제로 전략 비교 평가 표/카본트래커(Carbon Tracker)

카본 트래커의 분석 결과, 1위는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기업 에니(Eni)이 차지했다. 가장 진정성있는 탄소배출 전략을 지녔다는 것이다. 에니는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8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완전한 넷제로는 아니지만,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중간 목표치를 밝혔기 때문이다. 에니는 2035년까지 제품 생산의 전 과정(Scope 1, 2)에서 탄소 배출량을 30% 감축하겠다고 했다.  

렙솔과 BP는 각각 2, 3위를 차지했는데, 2050년까지 넷제로에 도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중간목표치가 없어 평가 점수가 깎였다.  또 BP는 넷제로를 선언했지만, 초기에는 Scope 3에 대한 감축치를 설명하지 않았고, 직접적인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아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전체 사업장을 포함하지 않은 점도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 러시아 국영 지원을 받는 로스네프트 사업장의 탄소 배출은 감축 범위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석유회사들과 미국의 석유회사들의 탄소 배출 전략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엑손모빌과 셰브론, 코노노필립스는 Scope 1, 2만 고려했다.  

특히 엑손모빌은 2023년까지 탄소 배출량 10% 경감을 목표로 잡았으며, 전체 사업장 중 캐나다 임페리얼 오일 사업장만 탄소 배출 감축 범위에 포함시켜 최하위를 기록했다. 

카본 트래커는 "4~9위를 차지한 6개 기업(쉘, 토탈, 에퀴노르, 셰브론, 코노노필립스, 엑손모빌)의 경우, Scope 3 범위의 탄소배출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감축목표를 세웠다"며 "이들의 넷제로 선언이 그린 워싱(Green Washingㆍ기업의 이익을 위해 친환경을 위장하는 것)의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넷제로 진정성에 의문 품을만한 행보 계속돼 

2019년 세계 10위 석유회사인 렙솔(Repsol)의 ‘넷제로’ 선언을 시작으로 석유회사들의 탄소 배출량 감축 선언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 분석을 총괄한 카본 트래커(Carbon Tracker)는 “지구 온난화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총배출량이기 때문에 순 제로 배출에 도달하는 경로도 중요하다”며 “넷제로를 외치고 있지만, 모든 넷제로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석유는 좌초자산이 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하며, 재생에너지 중심의 새로운 사업모델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2030년까지 약 1.8조달러(한화 약 2115조1400억원)을 낭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올해 6월, 로열더치쉘은 올 2분기 최대 220억달러(한화 약 26조4000억원)를 손실 처리(자산상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BP는 그보다 2주 전 최대 175억달러(한화 약 20조9527억원)를 손실로 처리하기로 했으며, 영국 화학기업 이네오스(Ineos)에게 석유화학 사업을 50억달러(6조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더불어 세계 최대의 석유 및 가스 회사들이 파리 협정을 지키기 위해선 2040년까지 생산량 또한 35%를 줄여야 하는데, 오히려 생산량은 증가시킬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탄소 배출량 감축 선언이 단지 지금의 비판을 막기 위한 방패막이로만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에너지기업인 쉘과 토탈 등은 온실가스 배출감축 약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금의 90%를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