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파워, 세계 최초로 원자력 분야 5억달러 녹색채권 발행
세계 최초로 원자력 발전사업자가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EU에서는 아직 천연가스와 원자력이 ‘녹색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 합의 도출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에서 먼저 움직인 모양새다.
캐나다의 민간 원자력 발전사인 브루스파워(Bruce Power)가 세계 최초로 원자력 분야에서 5억달러(5900억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브루스파워는 원전 수명 연장과 기존 장치의 생산량 증가와 관련된 투자 및 재융자를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번 채권발행은 지속가능 투자자들을 위한 시험대로 여겨졌으며, 블룸버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 ‘녹색채권으로 ESG 바이어들을 둘로 쪼개놓은 원자력 발전소’라고 현상을 표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번 채권에는 채권 목표액의 6배에 달하는 주문이 몰렸다고 한다.
브루스파워,
"석탄 화력발전소 폐기 이후, 온타리오주 전기 70% 감당해야"
브루스파워는 캐나다의 유일한 민간 원전인데, 이곳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에너지의 30%를 생산한다. 8기의 원전 발전장치 중 6기를 개조할 계획으로, 수십억 달러의 예상 소요비용 중 일부를 향후 10년간 녹색채권으로 조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토론토의 RP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인 라이언 본(Ryan Baughn) 매니저는 블룸버그에 “ESG 투자자들이 가장 크게 쪼개지는 주제는 바로 ‘원자력’”이라며 “우리는 원자력에 대해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더 생태학적 위험이 높은 전환기술로 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넷제로로 가는 전 지구적 경로에서 원전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온타리오가 원전을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현실적인 이유도 커 보인다. 브루스파워의 마이크 렌체크 CEO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온실가스 감축 이니셔티브 중 하나가 온타리오주의 석탄 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기”라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전은 온타리오주 에너지의 70%를 감당해야 하는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 탄소중립 위해 죽어가던 원전 부활시켜
죽어가던 원전 산업을 탄소중립이 되살리고 있는 현상은 미국과 유럽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수년 동안 인기가 없어 점점 더 많은 원자로 폐쇄가 이어졌으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쟁탈전으로 인해 원자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FT에 따르면, 스리마일섬(미국의 대형원전사고)과 체르노빌 사건이 잠잠해진 이후인 200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원자력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시장에 셰일가스가 넘쳐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력수요가 줄면서, 원전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줄어들었고 여기에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원전은 거의 죽어가는 형국이었다.
2013년 이후 1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컨설팅기관 로듐에 따르면,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미국 원자로의 절반이 10년 내 모두 작동을 중지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바이든 대통령을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원전을 다시 부양하는 법안에 승인했다. 미국은 폐쇄 직전의 원자로 수명 연장에 60억 달러(7조1000억원) 투입하는 초당적 기반 시설계획과, 첨단 원자력 연구 개발에 25억 달러(2조9000억원)를 더 투입하는 법안이다.
연방정부의 자금지원으로 원전을 유지하기 위한 구제금융도 증가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지난 9월 6억9400만달러를 투자해 임박한 원전의 폐쇄를 막았다고 한다.
하지만 안전성과 별개로, 원전의 경제성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VC서머 공장에 신규 원전을 건설하려는 계획의 경우, 천문학적인 비용이 계속 치솟으면서 결국 2017년 중단됐다. 아직도 추진되고 있는 유일하는 프로젝트는 조지아주의 보그틀 플랜트(Plant Vogtle)뿐인데, 그나마 이 또한 비용이 설계 당시의 2배인 280억달러로 늘어난 상태다.
현재 전 세계에 설치된 대형원전은 모두 442기로, 미국이 93기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프랑스(56기), 중국(52기), 러시아(38기), 한국(24기) 등이 설치돼있다. 2060 탄소중립을 발표한 중국은 2035년까지 원전 150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SMR의 세 강자...뉴스케일, 테라파워, 롤스로이스
FT에 따르면, 아무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대형 원자로에 수백억 달러를 쓰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첨단 원자력 기술에 대한 기대는 높다. SMR은 300MW급 이하 소형 원전이다. 기존의 1000~1400MW급 대형원전의 10분의 1 이하 크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50년이면 전 세계에 SMR이 400~1000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추정 시장 규모는 400조원 정도다. 현재 SMR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은 3곳으로, 미국의 뉴스케일 파워, 빌게이츠가 추진하는 테라파워, 영국의 롤스로이스 등이다. 최근 미국 뉴스케일파워는 유럽 루마니아에 SMR 건설 계획을 세웠다. 테라파워 또한 미국 최대 석탄생산지인 와이오밍주 캐머러에 차세대 원전 ‘나트륨’을 2024년 착공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에는 프랑스의 억만장자 석유회사인 페로도 일가가 롤스로이스의 SMR 발전소 계획을 지지하고 나섰다. FT에 따르면, 석유와 가스 투자로 39억파운드(6조1800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축적한 페로도 가문(Perrodo Family)은 최근 영국 롤스로이스의 소형모듈원전(SMR) 건설계획을 후원하는 개인 후원자 중 한명으로 부상했다. 페로도 일가가 소유한 런던소재 투자사무소인 BNF캐피탈의 숀 벤슨 이사는 FT에 “우리는 원자력 발전 없이는 에너지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우라늄 투자에 집중해오고 있으며, 롤스로이스에 대해서도 투자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영국 롤스로이스는 2030년 초까지 440MW급 차세대 SMR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원전을 탄소중립 수단으로 포함시키는 것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안전성과 함께 사후 핵연료 및 폐기물 처리에 관한 비용이나 방법론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여서, 경제성 면에서도 ‘숨은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