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ㆍLG화학 친환경 선언 뒤엔 글로벌 공룡 있었다
애플, 재생에너지 사용 동참 협력업체 71곳 중 SK하이닉스ㆍ대상 포함 LG화학, 폭스바겐 및 테슬라의 탄소배출 감축정책 참여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탄소배출 감축에 대한 강력한 선언을 하면서, 협력업체인 한국기업들에게도 이 기준에 발맞추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
애플은 지난 21일(현지 시각) '2020 환경보호 성과 보고서(Environmental Progress Report)'를 통해 "2030년까지 자사의 제품과 글로벌 공급망에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다시 상쇄해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탄소배출을 75% 줄이고, 나머지 25%는 혁신적인 탄소 제거 솔루션을 개발해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애플은 이미 자사의 기업운영은 모두 탄소 중립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표한 것은, 제품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공급망(Supply Chain)에서 에너지 전환에 동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애플은 미중 녹색기금(U.S.-China Green Fund)와 제휴 협약을 체결하고, 애플 협력업체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해 1억 달러(1200억원)를 지원키로 했다. 애플의 협력업체 에너지 효율 프로그램(Apple’s Supplier Energy Efficiency Program)에 참여하는 기업 설비의 수는 2019년 92곳인데, 이 공급망에서 줄인 탄소 배출량이 연 환산 77만 9,000톤이다.
이뿐 아니다. 애플은 17개국 71곳의 협력업체들로부터 애플 제품을 생산할 때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8기가와트에 육박하는 재생에너지 규모다. 약속이 모두 실행된다면, 연간 1430만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어드는데, 이는 300만대의 차량이 운행을 중단하는 것과 같다.
애플 보고서에 등장한 71개 협력업체 중, 한국 기업은 네 곳이다. SK하이닉스와 대상, 코닝정밀소재, 니토덴코 코리아 등으로,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를 담당하고, 대상에스티는 애플에 휴대전화ㆍ디스플레이용 점착테이프를 공급한다.
애플은 협력업체들이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걸 돕도록 교육하고, 툴(tool)을 제공하기 위해 '협력업체 청정 에너지 포털(Supplier Clean Energy Portal)'도 운영해왔다. 작년에는 30개 이상의 중국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최초로 대면 트레이닝 행사까지 치렀다. 공급망 내의 탄소 중립을 얼마나 신경쓰는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편, 애플의 협력사인 SK하이닉스는 지난 2018년부터 친환경 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2022년까지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4년 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 ▲폐기물 재활용률 95% 달성 ▲해외사업장 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 내용을 담은 '2022 ECO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LG화학, 폭스바겐 및 테슬라의 재생에너지 정책 동참 요구받아
협력업체의 탄소중립 정책에 동참을 요구받는 국내 기업은 또 있다. 최근에 국내기업 최초로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선언한 LG화학이다. RE100은 기업활동 전체를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선언으로, BMW, 테슬라, 폴크스바겐, 볼보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참여했다. LG화학의 RE100 선언 뒤에는 폭스바겐, 테슬라 등이 있다.
LG화학으로부터 배터리를 납품받고 있는 폭스바겐은 협력사에 RE100을 의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부턴 기준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공급사에서 배제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이와 함께 RE100을 충족할 땐 이를 판매가에 반영해주고 있다. 반면 중국과 한국 사업장은 이 같은 정책적 지원의 부제로 RE100 추진이 곧바로 가격상승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테슬라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테슬라는 2019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재생 에너지 사용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100%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제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하반기부터 LG화학은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 테슬라가 LG화학에 배터리 생산과 관련된 이산화탄소 배출량 자료 일체를 요구했다는 보도도 최근 나왔다. RE100과 같이 재생에너지만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서 원부자재에 투입되는 탄소 배출량을 산출해달라는 요구다.
LG화학은 7월 6일 화학업계 최초로 2050년까지 전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탄소량을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탄소중립 성장’을 선언하며 전 세계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RE100 캠페인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선언한 RE100이라 그 의미는 크지만, 그 배경엔 글로벌 거대공룡들이 있었던 것이다.
BMW그룹 올리버 집세 회장 또한 최근 “5세대 배터리 셀 납품업체와 (제품 생산에) 친환경 전력만을 사용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제품 생산이나 기업체 운영에 필요한 전력 전부를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는 RE100을 선언한 BMW 그룹은 몇 년 전부터 부품업체에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BMW는 지난해 부품 조달과 영업 등 기업 활동 전체를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로 정했다. 이후 LG화학에 전기차 배터리의 재생가능에너지 생산·납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BMW의 방침은 국내 배터리 업체인 삼성SDI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삼성SDI는 내년부터 2031년까지 BMW가 생산할 전기차에 5세대 배터리 셀을 공급하는 29억유로(약 3조900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유니레버, "6만개 협력업체에 탄소배출 비중 보고하라" 요구
RE100캠페인에 참여한 기업은 애플, 구글, 아마존, GM 등 200여개에 달한다. 자동차, IT, 금융, 식음료 등 분야와 상관없이 많은 기업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RE100은 앞으로 ISO인증처럼 하나의 '국제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공룡인 대만 TSMC가 최근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해 풍력발전소와 손잡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에는 세계적 생활용품업체인 유니레버가 "2039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이겠다"고 선언하면서, 전 세계 6만여개의 공급망 협력업체에게 동참을 요구하기도 했다.
앞으로 유니레버에 원료나 부품을 제공하는 협력업체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탄소배출 비중을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니레버는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전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됐는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정보를 유니레버가 생산하는 제품 라벨에 공개할 것인지 아니면 웹사이트에만 게재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그 파급력이 꽤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유니레버는 파리기후협정에서 마련된 기한(2050년)보다 11년이나 빠른 2039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줄이는 목표를 설정했다.
ESG 중 기후변화(E)뿐만 아니라 사회(S) 이슈에 대한 공급망 평가기관들의 모니터링도 점점 깐깐해지고 있다. 영국의 공급망 평가기관인 ‘노더체인(KnowTheChain)’은 최근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의 공급망 내 노동자 인권 관리 노력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혔다.
노더체인의 2020 ICT 벤치마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ICT 대기업 49개사 중 37개 기업, 약 75%가 50점 미만의 하위 점수를 받았다. 월마트(46점), 노키아(45점), 아마존(43점), 소니(36점) 등이 이에 포함되었다. 최저점수를 받은 기업은 닌텐도(23점), SK하이닉스(14점), 캐논(14점), 파나소닉(13점), 브로드컴(10점)이며, 샤오미는 0점을 받았다. 이들의 총 평균 점수는 30점에 그쳤다.
제품의 생산주기 전 과정에 걸쳐,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공급망 협력업체에게도 탄소배출을 줄이도록 요구하는 기업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이 기사에는 박지영 editor (kitty2988@impacton.net)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