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은 '기후식민주의'? 개도국 화석연료투자 중단의 딜레마

2021-12-09     송선우 editor

기후변화대응이 주요 국제 어젠다로 떠오르면서 화석연료 투자 중단을 선언하는 기관이 늘고 있다. 지난 10월 발간된 다이베스트 인베스트(Divest Invest)의 보고서에 따르면 화석연료 투자 중단을 선언한 글로벌 금융기관은 약 1500개나 된다. 석탄 사용 비중이 높은 한국, 중국, 일본 또한 해외투자에 대한 '탈석탄'을  선언했다. 

문제는 선진국들이 탄소배출감축을 위해 해외 화석연료 개발을 중단한 반면, 자국 내에서는 이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난 9월, 중국은 유엔 총회에서 해외투자에 대한 '탈석탄'을 선언했지만, 자국 내 화력발전소 설립계획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들의 행동변화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들이다. 주요 금융기관의 화석연료투자 중단으로 에너지 인프라 개발에 제동이 걸린 탓이다.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에너지 전환이 에너지 불평등을 가속화 시킨다" 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아프리카의 1인당 탄소배출량 16배 차이... 불평등 문제 불거져

2019년도 국가별 1인당 연간 탄소배출량. 아프리카 대륙의 탄소배출비중은 3.8%에 불과하다./OurWorldInData

옥스퍼드 대학교의 통계 사이트 '아워얼드인데이터(OurWorldinData)'에 따르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1인당 탄소배출량에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실제 아프리카 국민의 1인당 연간 탄소배출량은 1.1톤에 불과하지만 미국 국민의 배출량은 16톤에 달한다. 또한 미국, EU, 영국, 일본의 인구를 합치면 11억명 정도가 되는데, 이는 사하라 이남 지역의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의 가스발전 총량은 사하라 이남지역의 35배에 달하며, 석탄발전 총량은 무려 52배나 많다. 

특히,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국민 절반이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에너지 전환을 강요한다면 에너지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나이지리아의 부통령 예미 오신바조(Yemi Osinbajo)는 "나이지리아 등의 개발도상국은 극심한 에너지 부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에너지 전환이라는 개념을 전세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고 의견을 밝혔다.  

또한 미국의 에너지 분야 싱크탱크 '에너지 포 그로스 허브(Energy for Growth Hub)'는 "아프리카의 전력 소비가 현재의 3배 수준으로 증가하고, 이를 모두 가스발전으로 충당한다고 해도 세계 탄소배출 증가량은 약 0.62%에 불과할 것"이라며 이는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탄소배출보다도 적은 양"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이들은 에너지 전환보다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접근성 증진을 우선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미명 하에 '기후 식민주의' 벌이고 있는 선진국

중국은 콩고의 코발트 탄광에서 아동 노동 및 노동자 폭행 문제에 연루됐다./ Amnesty International

일각에서는 선진국들이 '기후변화 대응' 이라는 글로벌 아젠다 하에 약소국들의 자원을 착취하고 이들의 시장진입을 의도적으로 막는 '기후 식민주의' 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기후변화대응을 이유로 세계은행의 신규 화석연료투자 중단을 촉구했던 노르웨이는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가스 수출량을 대폭 늘렸다. 때문에 "자국의 수익 추구를 위해 개발도상국의 화석연료 개발을 막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노르웨이는 화석연료투자 중단으로 인한 개발도상국 에너지 접근성 약화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자, 고비용의 그린수소 사용을 추천해 전문가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무기로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필요한 니켈, 코발트, 리튬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개발도상국의 광물자원을 독점해 저가에 자원을 채굴하면서 아동노동, 폭행 등을 통해 노동자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암네스티 등의 인권단체는 '이들의 행태가 식민주의 시대의 비인도적 착취와 다를바 없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평등한 에너지 전환 위해 개도국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이 필수적

글래스고에서 기후 정의 실현을 위해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Getty Images

이러한 상황 가운데, 개발도상국의 이해관계자들은 국제 무대에서 충분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COP26 연합(COP26 Coalition)에 따르면, 지난 COP에 대표단을 파견했던 시민단체 중 3분의 2는 백신 부족, 비자, 격리 문제 등으로 인해 COP 26 참가를 포기했다. 이들의 대다수는 개발도상국 출신이다. 이에 대해 COP26연합의 출입국 디렉터 레이첼 오스굿(Rachel Osgood)은 "이번 COP26은 COP 역사상 가장 배타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행사"라며 "남반구 저개발국(Global South) 이해관계자의 불참은 회담 결과에 치명적 영향을 끼쳤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환에 대한 국제적 논의 과정에서 개발도상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에너지 포 그로스 허브는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접근성이 보장된 평등한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지기 위해 선진국 중심의 배타적 에너지 개발계획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개발도상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에너지 빈곤 해결과 에너지 전환의 균형을 고려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