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의 내년 키워드는? ‘기후경제·글로벌 ESG 기준 대응’

2021-12-09     박지영 editor

금융위원회(금융위)는 내년 기후경제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기후변화·고탄소 산업 관련 자산가치 하락을 분석하는 스트레스 테스트 시범 실시에 나선다. 더불어 글로벌 ESG 기준이 단일화 되는 만큼, 국제적 기준에 국내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한다.

 

기후리스크 정의에서 ESG 정보공개까지... 기틀 잡은 2021년

금융위는 8일 제 4차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TF)’ 열고 올해 녹색금융 세부과제 추진현황을 점검하고 추가과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올해 금융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녹색금융과 합종연횡이다. 녹색금융의 기틀을 잡기 위해 기후리스크 관리 지침서, ESG 정보공시 가이던스 등을 발표하고, 금융권과도 기후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꾸준히 만났다. 

올해 5월 조직된 TF는 처음으로 기후가 금융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이를 ‘기후 리스크’로 정의했다. TF는 지난 1년간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금융사가 기후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지침서 마련 ▲금융권 기후리스크 포럼 ▲국제기구 및 국내외 금융회사와 기후리스크 인식 확대를 위한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성과를 거뒀다.

8일 금융위가 공개한 기후리스크에는 금융회사의 사업환경 및 전략, 지배구조, 리스크 관리, 공시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금융위는 “주요 해외 금융당국의 기후리스크 가이드라인 사례를 검토해, 금융권 기후리스크 포럼을 통해 금융회사의 의견까지 담았다”며 “국내 금융권 기후리스크 관리현황이 다소 미흡해, 규제적 성격은 최대한 배제하고 금융권이 기후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TCFD 공시 중 가장 어려워하는 시나리오 분석 기법이나, 스트레스 테스트 등은 추후에 반영한다. 또 손해보험사의 경우 자연재해보험을 꾸리는 방법 등 금융사 유형별 특이사항도 추후에 반영된다. 기후 리스크 관리가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금융권의 '기후리스크 관리 지침서' 활용을 유도하고, 이를 활용한 민간 금융회사의 우수사례를 업계와 공유할 예정이다.

금융사들이 요구했던 규제당국과 금융사의 지속적인 만남도 정례화됐다. 금융위, 금감원 등 규제당국과 금융연구원, 보험연구원 등 학계, 은행협회, 금융투자협회, 생명·손해보험협회, 여신전문금융사 등 금융권역별 협회는 ‘금융권 기후리스크 포럼’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나게 됐다. 금융위가 주도하는 기후리스크를 금융사가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현황과 애로사항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금융권 녹색금융 핸드북에 소개된 신한금융지주의 기후리스크 관리 사례. 고탄소 배출 기업 및 탄소집약도 상위기업을 자체적으로 분석해 집중관리에 임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금융권 녹색금융 핸드북'

여기서 모인 은행연합회 등 금융권역별 협회 5곳은 ‘금융권 녹색금융 핸드북’도 발간했다. 기후 리스크보다는 녹색금융에 초점을 맞춘 실무 지침서다. 실무에서 참고 할 수 있도록 ▲녹색금융의 주요내용 ▲가이드라인 ▲신한금융지주, KB국민은행, 교보생명, 삼성화재, NH투자증권, 한화자산운용, 현대카드의 실사례 ▲Q&A 및 실무 해석 예시를 담았다. 내년 3월까지 추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보완 후 책자 형태로 발간·배포할 예정이다. 공개 이후 업계 등 현장의견, 탄소중립에 관한 국내외 동향 등을 반영해 연 1회 개정·보완된다.

올해 초, ESG 정보 공개와 관련해 금융위가 내놓은 ‘ESG 정보공시 의무화’에 관한 논의도 진행됐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인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ESG 활동이 담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이번 회의에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현황을 점검한 결과, 올해 자율공시 기업은 70개사로 지난해 대비 32개사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ESG 정보 공시 전 기업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중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분석결과 및 시장참가자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자율공시를 촉진하기 위해 우수 기업을 선정하고, 시상하는 방안도 마련 중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쓰이는 지표도 살펴보기로 했다. 산업부가 K-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ESG 평가의 지표 해설과 체크 포인트를 도출했다면, 금융위는 국내외 ESG 평가체계를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도출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1분기 완료 예정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서스틴베스트·대신경제연구소의 평가체계가 다르기에, 이를 분석해 금융위가 제도적·정책적 개선점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올해 초 한국거래소가 공개한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에 소개된 지표도 내년 하반기 수정한다.

 

내년엔 본격적으로 기후리스크 측정

국제 ESG 공시 체계와 눈높이 맞추고,

녹색금융→ 사회적 금융으로 범위 넓힌다

내년 금융위가 실현할 목표는 본격적인 기후리스크 측정이다. 금융위는 “기후변화 · 고탄소 산업 관련 자산가치 하락 등 기후경제 시나리오 분석 및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과 협력해 내년 상반기 중 기후경제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모형에 따른 건전성 변동 등을 분석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반기 금융권에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기후 경제 시나리오에는 올해 확정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반영된다. 현재 기후 경제 시나리오 분석을 위해 기후경제 통합모형에 따라 기후리스크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기후리스크 관리 지침서가 금융권에 안착될 수 있도록 내년 2분기 갭 분석도 실시한다. 금융사별 내부 지침과 금융위가 배포한 기후리스크 관리치짐과의 차이점을 분석해, 간극을 메운다는 것이다. 기후리스크 영향이 큰 은행과 보험사를 중심으로 우수사례도 공유한다.

지금껏 금융위는 녹색금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도 들어왔다. 내년부터는 사회적 금융으로 범위를 넓힌다. 금융위는 “소외된 영역을 포함하는 포용경제 달성을 위해 사회적 금융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며 사회적 금융과 금융회사의 ESG 경영을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사회투자펀드 인센티브를 강화하거나, 사회적가치 평가체계 개선, 사회적금융상품 접근성 제고 등을 검토 중이다.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글로벌 기준에 따른 ESG 공시 확산 전략 토론회’/한국회계기준원 제공

ESG 정보 공시와 관련해서는 세계적 수준과 눈높이를 맞추겠다고 밝혔다.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글로벌 기준에 따른 ESG 공시 확산 전략 토론회’에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국내 ESG 공시제도도 IFRS 재단 내 ISSB가 제시할 글로벌 요구 수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선진화돼야 한다”며 “ISSB에 한국의 경제상황과 산업 특성을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한국 인사를 추천하고, 정부 재정을 지원하는 등 다각적으로 방법을 모색해보겠다”고 언그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ESG 정보 공시에 과도한 부담을 갖지 않도록 부처 차원에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 위원장은 “여러 부처가 개별적으로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중복적인 공시 부담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기업을 포함한 시장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내년도 금융위를 포함한 정부 부처의 숙제는 확대되는 EU나 ISSB 재단 등 국제적으로 획일화 된 ESG 룰을 만드는 룰 메이커들에 대한 대응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에 참여한 참석자들은 한국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획일화된 기준 대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안윤기 상무는 “당장 유럽연합(EU)이 만든 탄소국경세를 보면, EU가 설정한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수용하려는 분위기”라면서 “국가나 산업별로 상황이 모두 다를 수 있는데 다른 시장에서 설정된 기준을 우리나라에 동일하게 적용해서 평가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KB금융지주 ESG전략부 문혜숙 부장 또한 “지속가능성 보고서 기준을 하나로 정해놓더라도, 영향력 있는 투자자가 TCFD(기후변화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 등 다른 기준을 이야기하면 기업 입장에선 비용과 인력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IFRS 한국재단 이사인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글로벌 베이스라인이 마련됐다면 우리나라는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한 우리만의 기준을 고민해야할 시점”이라며 “국내 관련 기구들이 힘을 합쳐 이른바 ‘KSSB’를 만들기 위한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