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계의 '탈화석연료' 움직임, 오히려 탄소중립의 '독'이 될 수 있어
투자계의 탈화석연료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2014년 탈화석연료를 선언한 금융기관은 182개, 자산규모는 500억달러(한화 약 60조원)에 불과했으나, 기후변화대응이 주요 국제 어젠다로 떠오르면서 선언 기관의 숫자는 약 1500개, 자산규모는 40조 달러(한화 약 40경 7000조 원)로 급등했다.
화석연료 투자중단은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집약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수단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화석연료 투자중단을 통해 고탄소배출 자산을 매각할 때 해당 자산에 대한 소유권 이전이 발생할 뿐 실질적인 탄소배출감축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화석연료 투자중단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화석연료 투자중단은 소유권 이전을 야기할뿐...
오히려 정보 투명성 약화될 수도
ESG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 넘버원(Engine No.1)의 전무 마이클 오 리어리(Michael O' Leary)는 "투자자가 자산을 처분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이를 매입한다는 뜻"이라며 "기업의 환경영향 관리에 불만을 가진 주주가 자산을 매각한다면, 환경문제에 별관심이 없는 다른 이가 자산을 매입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화석연료 투자중단이 오히려 탄소중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투자자들의 압박으로 인해 로얄더치쉘, BP 등의 석유가스업체들이 화석연료 자산을 매각하면서 해당업계의 탄소중립이 가속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상장기업과 사모펀드가 시장에 나온 화석연료 자산을 적극적으로 인수해 자원채굴을 지속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 가장 큰 비상장 석유가스회사 힐코프(Hilcorp)는 화석연료 자산 인수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실제 이들은 BP의 알래스카 화석연료 자산 전부를 56억달러(한화 약 6조7000억원)에 인수했으며, 코노코필립스(ConocoPhilips)의 산후안 분지 유전과 가스전을 30억달러 (한화 약 3조6000억원)에 인수했다. 이로 인해 최근 수년간 힐코프의 온실가스 배출은 급상승했고, 미국에서 가장 많은 메탄을 배출하는 기업이 됐다.
또한 비영리단체 사모펀드 이해관계자 프로젝트(Private Equity Stakeholder Project)가 지난 10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0대 사모펀드의 에너지분야 투자포트폴리오 80%는 화석연료 사업이다. 이들은 2021년에도 화석연료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사모펀드 KKR은 40억달러(한화 약 4조7500억원)을 들여 아부다비 국영 석유회사의 지분 40%를 인수했고, 에너지 인프라투자업체 EIG를 중심으로 한 투자자 컨소시엄은 약 120억달러(한화 약 14조3000억원)를 들여 아람코 오일 파이프라인 컴퍼니(Aramco Oil Pipline Company)의 지분 49%를 확보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삼성자산운용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비상장기업과 사모펀드가 환경 정보공시 의무에서 비교적 지유롭고, 주주의 영향 또한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이 화석연료 사업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면, 온실가스 배출 및 환경적 리스크에 대한 정보 투명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사모펀드 및 비상장 석유가스기업의 대부분은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지 않고 있으며, 온실가스배출 감축에 대한 정보도 매우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모펀드 이해관계자 프로젝트의 연구 디렉터 알리사 자키노(Alyssa Giachino)는 "화석연료 업계가 탄소중립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 사모펀드들은 해당 자산을 인수해, 은밀하게 화석연료 채굴을 지속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화석연료업계의 탄소중립 위해선 주주관여, 대출 제한 등의 적극적인 행동 필요해"
전문가들은 금융기관이 단순히 포트폴리오에서 탄소배출이 높은 자산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을 통해 기업들이 온실가스배출을 감축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를 위해 ESG 행동주의 투자기관들이 적극적인 주주관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례로 ESG 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넘버원은 적극적인 주주관여활동을 통해 미국 석유업체 엑손모빌의 이사회에 기후변화 전문가 3명을 할당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특히, 채권시장에서 고탄소배출사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강력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금융기관들이 화석연료 투자중단을 선언한 것과 별개로, 채권시장에서는 여전히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대출이 차질없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21년, 미국 금융계는 화석연료 사업에 약 2500억달러(한화 약 300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으며, 이로 인해 화석연료 사업 개발에는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때문에, 채권시장에서 '탄소 프리미엄'을 부과해 고탄소배출 사업에 대한 이자율을 높이거나, 채권 신용등급에 탄소배출 정보를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너지 연구기관 록키 마운틴 연구소(Rocky Mountain Institute)의 기후금융 선임 연구원 위트니 만(Whitney Mann)은 "우리가 모든 총력을 다해 친환경 투자를 하더라도, 기존 고탄소배출 섹터의 변화 없이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며 "민관 금융기관들의 주도로 고탄소배출 섹터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야할 때"고 투자계의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