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택소노미, 원자력과 LNG 결론 또 못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친환경 분류체계인 ‘택소노미(Taxonomy)’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하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고 유랙티브, 가디언 등 외신이 21일(현지시각) 전했다. 당초 EU 집행위원회는 올해까지 택소노미를 채택할 예정이었으며, 원자력과 천연가스에 대한 결론은 22일에 내리기로 했었다.
EU 집행위원회는 어떤 활동을 기후 친화적인 투자로 표기할 수 있는지를 규정하는 ‘지속가능 금융 분류법’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시킬 수 있는지를 검토해왔다. 414페이지에 달하는 투자 가이드를 중심으로 한 각 국가간 첨예한 로비가 진행됐다.
발단은 2020년 7월 발효된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EU 택소노미’로서, 원자력과 천연가스의 범주를 포함한 일부 규칙은 나중에 유럽위원회에 의해 결정하도록 남겨뒀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12월 EU는 두 차례나 정상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프랑스와 독일로 대표되는 친원전파와 반원전파의 대립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치솟는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각 정상간 합의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프랑스를 필두로 한 일련의 국가들은 원자력과 천연가스 발전을 재추진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프랑스, 핀란드, 체코, 폴란드 등 12개국은 원자력이 택소노미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 5개국은 원자력을 강력히 반대한다. 오스트리아는 “원자력이 택소노미에 포함되는 EU 집행위원회를 고소하겠다”며 위협하기까지 했다. 2022년 탈원전을 앞둔 독일은 보다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한 올라프 슐츠 신임 독일 총리는 “우리의 질문은 주로 금융에 관련된 것이며, EU 국가들이 탄소중립이 되기 위한 개별적인 경로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전력의 70%를 원전에서 얻고 있기에 원전의 택소노미 포함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면, 독일은 독일 자체는 탈원전을 하지만, 석탄 발전이 독일 전력원 중 27%로 1위를 차지하는데다 프랑스의 원전 전력을 수입해오는 처지다.
하지만 전문가그룹, 환경단체 등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EU의 집행위원회 TEG(기술자문그룹) 13명은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최고의 원전에서도 심각한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원자력은 녹색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청원서까지 제출했다. 택소노미의 자문그룹인 일부 전문가들은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포함된다는 이유로 해당 프로젝트를 떠나기도 했다.
PRI(책임투자원칙) 또한 이 다툼에 뛰어들어 “EU가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지속가능한 라벨로 붙이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현지 전문가들은 “원자력을 분류법에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원자력은 생산비가 예측을 훨씬 웃돌 정도로 비싸기로 악명높은 데다, 핀란드(올킬로오토3호기)와 프랑스(플라만빌3호기) 사례만 봐도 2009년과 2012년 착공하기로 했는데 둘다 아직 가동되지 않아 예상비용이 3배로 증가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천연가스 문제 또한 풀기 쉽지 않다. 천연가스 찬성파는 천연가스가 비록 화석연료이지만 석탄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작다는 점, 석탄 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당장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인 점, 탈탄소로 가기 위한 브릿지 연료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점 등 때문에 천연가스도 택소노미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게 해당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만약 EU가 천연가스에 투자한다면, 아프리카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아마 EU를 흉내낼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지구온도를 1.5도 이하로 낮추는 것이 정말 어렵게 될 수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결론은 2022년으로 넘어갔다. 유랙티브와 블룸버그 등 외신에서는 “가스와 원자력 모두 택소노미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예측하고는 있다. 하지만 최종 결말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