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사의 이슈리뷰】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 논란을 보며

2021-12-24     hindsight

오늘(12/23)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어느 환경운동가의 칼럼(‘정부가 열어젖힌 지록위마의 시대’)을 보고 일견 그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답답함을 느낀다.

이 분의 논리는 명쾌하다. EU와 한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들이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에 포함시킬 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원자력’과 ‘천연가스’는 명백히 친환경 에너지가 아니며, “위험하고, 더러운” 에너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LNG에 ‘에코’니 ‘그린’이니 이름을 붙이는 것은 녹색을 참칭하는 ‘그린 워싱’에 다름 아니며, 정부가 그린 택소노미에 LNG를 포함시키려는 시도 또한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얼마나 명쾌한 지 당초 이달 22일쯤 원전과 LNG를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킬 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낼 것으로 예상됐던 EU 집행위원회가 유럽 국가들 간 이견 차가 커 논란 끝에 결국 내년으로 논의를 미뤘다는 외신 보도가 무색할 지경이다.

 

신재생에너지 비중 가장 높다는 독일조차 아직도 28%는 석탄화력

원전과 LNG 등 대규모 플랜트 건설에 파이낸싱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이 인류의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으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원전이나 LNG 발전소를 확충하려는 국가들은 에너지 정책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원전이 위험한 에너지라는 주장에 굳이 반대하고 싶지 않다. LNG는 명백히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원전과 LNG의 그린 택소노미 포함 여부를 고민하는 것은 탄소배출이 가장 높은 에너지인 석탄화력을 당장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열린 COP26 참여국 197개 중 석탄 화력발전 중단 합의에 참여한 나라는 의외로 46개국뿐이었다. 원전과 LNG까지 갈 것도 없이 석탄 화력은 세계가 한 목소리로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중국, 인도 등 석탄을 대량 생산하고 대량 소비하는 나라들은 모두 빠졌다. 지난 4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리더십을 보여줬던 조 바이든의 미국마저 동참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또한 탈원전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들은 여전히 석탄화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전 22%였던 석탄화력 비중(2010년)이 현재 30%대로 늘어났다. 올해까지 원전을 전면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이미 50%를 넘어섰다는 독일조차 아직도 전력 생산의 28%를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탈원전, 탈석탄을 표방한 우리나라도 약 40%를 석탄화력에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생한 천연자원 수급 불균형으로 촉발된 에너지난은 감소 추세였던 석탄 수요와 생산을 반등시켰다. 중국과 미국의 석탄 생산량이 오히려 늘어나고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가인 인도네시아와 호주는 석탄 생산과 수출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다.

 

문제는 에너지 전환 속도… 그린워싱 못지않게 무익한 원론적 주장

‘친환경’의 개념을 엄밀하게 적용하자면 사실 석탄뿐 아니라 천연가스, 원자력, 태양광, 풍력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완전무결한 친환경 에너지는 없다. 화석연료들은 예외 없이 탄소를 배출하고, 원자력은 사고가 날 경우 위험하고, 태양광과 풍력도 어느 정도는 자연환경 훼손을 피할 수 없다. 현재까지 인류가 개발한 가장 친환경적인 에너지로 평가되는 수소 연료조차 아직까지는 경제성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언젠가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고효율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최소한 그 시점이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2050년 이전에 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화석연료와 원자력의 사용을 전면 중단할 수는 없다. 온실가스 발생과 환경훼손을 최소화할 고효율 친환경 대체에너지가 그 자리를 대신할 때까지는 불가피하게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사용해야 한다. 단, 이를 어떻게 줄여나갈지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줄여나갈 수 있을지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한겨레 칼럼을 쓴 환경운동가가 비판하듯 호주에서 가스전을 개발하면서도 탄소중립을 표방하는 어느 기업의 모습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그린워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과도하다. 한편으론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한편으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왜 그린워싱인가?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에선 가장 앞서가는 독일조차 탈석탄에선 아직 모범생이 아니다. 오히려 원전 비중은 높지만 프랑스가 석탄에선 더 자유롭다. 우리나라도 탈석탄과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단기간에 과도하게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과도기적으로 부득이 LNG발전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정책이다. 

환경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환경운동가로서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실용적인 대안이 없더라도 환경을 훼손하는 그 어떤 에너지 사용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다. 정책 담당자나 기업들은 환경단체의 목소리도 참고해야 한다. 하지만, 단지 ‘원전의 위험성과 LNG의 탄소배출’이라는 원론적인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은 그린워싱 못지않게 탄소중립을 위해서 무익하긴 마찬가지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얼룩져 있는 탈원전 정책에 대해 몇 차례 칼럼을 쓴 적도 있지만, 에너지 문제에서는 원론보다 실용적인 접근이 절실하다. 


※하인사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