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난방 안돼요” 뉴욕, 도시 최초 화석연료 난방 퇴출
뉴욕의 신축 건물에선 가스 난방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뉴욕시의회가 지난 15일 대부분의 신축 건물에서 천연가스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의결하면서다. 대도시 전역에서 건물의 가스 난방 사용 금지가 시행된 건 최초다.
지난 2019년 유엔이 발간한 '글로벌 지속가능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활동과 에너지 소비, 탄소 배출은 전 세계 면적의 2%에 불과한 도시에 집중돼 있다. 특히, 전체 탄소 배출량의 75%는 도시에서 발생한다. 건물 난방 등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탄소 배출량의 40%, 뉴욕의 전체 탄소 배출량의 절반 이상이 건물에서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뉴욕시의회는 도시의 탄소 배출량을 절감하기 위해 2027년부터 새로 짓는 건물에 천연가스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의결했다. 이 법에 따르면 2027년 이후 신축 건물은 가스나 기름 대신 난로, 난방기, 보일러 등 전기를 사용한 난방 설비를 구축해야 한다. 7층 이하 일부 건축물은 2023년 말부터 이를 따라야 한다. 다만 병원, 화장장, 셀프 세탁소 등 특정 활동에 사용되는 신축 건물의 경우는 예외다.
이 법안은 또한 장기계획을 위해서 열펌프 기술의 활용을 검토하고, 법안이 뉴욕주의 전기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방안도 포함한다.
뉴욕시의회 코리 존슨 의장은 “우리는 기후위기에 처해 있으며, 기후변화와 싸우고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의결 배경을 밝혔다. 뉴욕주는 2019년에 2040년까지 무탄소 전원을 통한 전기만 사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연방 에너지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뉴욕주는 전력의 절반을 화석연료(가스 45%, 석유 4%)에서 얻었다. 24%는 원자력, 22%는 수력발전에서 나왔다.
이번 법안은 뉴욕의 2040년 전력 부문 탄소중립을 달성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도시 온실가스 데이터를 평가하는 환경보호단체 RMI는 도시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는 건물의 난방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2040년까지 연간 45만대의 자동차 배출량과 맞먹는 약 210만톤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뉴욕주 환경보호단체인 빌딩 탈탄소화 연합(Building Decarbonization Coalization Coalization Coalition) 리사 딕스 국장은 “미국 최대 도시가 이런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는 등 과감한 기후 리더십을 보일 때 다른 도시와 주, 국가가 이를 주목하고 같은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평했다. 미국 내 캘리포니아주의 최소 42개 도시 또한 건물의 가스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반면 이번 법안이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석유 및 가스 산업은 건물 난방을 위해 수소와 같은 청정 연료와 매립지에서 재생가능한 천연가스 등을 함께 사용하면 소비자 비용을 낮추고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로비단체인 미국가스협회(American Gas Association) 카렌 하버트 회장은 “탄소 배출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목표에는 공감하지만, 재생가능한 천연가스 등 다양한 무탄소전원의 활용은 어떠한 환경목표를 달성하는데도 필수적”이라고 반론을 펼쳤다.
시민 입장에서는 전기료가 오르는 부정적 영향도 있을 수 있다. 올 겨울 미국 북동부 지역의 경우 가스 난방비로는 평균 865달러를 지불했지만, 전기 난방비로는 1538달러를 지불하는 등 약 2배 이상 비싼 난방료를 부담했다. 이런 이유에서 텍사스주나 애리조나주는 “소비자들은 에너지원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며 따로 건물 난방에 가스 규제를 두지 않았다.
EU 그린딜, 그린 리모델링은 정책의 교차점
한국판 뉴딜 속 ‘그린 리모델링’ 로드맵은 아직
EU의 경우 그린딜 중 하나로 건물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유럽 리모델링 전략(Renovation Wave for Europe)’을 세웠다. EU 집행위원회는 “건물 부문은 에너지와 기후정책, 환경정책, 금융정책의 교차점에 있기에 탈탄소화가 가장 복잡한 분야 중 하나”라고 평했다. 건물의 탄소를 줄이기 위해선 재생에너지·에너지 효율 기술·순환형 건설을 위한 자본 등에 대한 각각의 정책이 맞물려 실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크게는 EU회원국이 모두 건물 부문 배출량을 40% 줄이는 노력분담규정(ESR)과 건물주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위해 건물 개보수율을 두 배로 높이는 걸 목표로 하는 리노베이션 웨이브 두 축으로 구성된다. 전자를 위해선 건물 배출권 거래 시장을 조성하고, 후자에선 2030년까지 총 3500만 개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 학교와 병원, 관공서 등 공공 건축물과 냉난방설비의 탈탄소화를 우선순위에 뒀다.
이외에도 ‘건축물 에너지 성능 평가지침(Energy Performance of Buildings Directives)’과 ‘에너지 효율화 지침(Energy Efficiency Directive)’ 개정을 통해 규제가 아닌 제도를 확충하기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우리나라 또한 한국판 뉴딜 사업 중 하나로 그린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NDC) 상향안에 따르면, 건물 부문 탄소 감축 목표는 2018년 대비 32.8% 감축으로 산업부문 감축량인 14.5%보다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다만 이를 실행할 그린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로드맵은 아직 없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부터 국비 4억5000만원을 투입해 추진하고 있지만, 공공건축물 826개만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NDC 상향안에서도 “그린리모델링 로드맵 등 이행계획 수립 및 민간 확산을 위해 법적 근거 및 지원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건물 부문 탄소 감축을 위한 세부적인 계획안이 필요하다고 명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