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된 법무부, ‘기업과 인권 길라잡이’를 톺아보며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분주하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는 “처벌을 피할 고민을 하지 말고, 재해를 예방하라”는 주문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작년말 하청업체 근로자가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환경에서 근로하다 참담한 사고를 당해 사망한 일이 또 발생했다. 작년 11월 기준 대한민국에서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는 790명이다.
최근 법무부에서 발간한 ‘기업과 인권 길라잡이(이하 ‘길라잡이’)’는 기업이 현 상황을 진단하고 기업과 인권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발간되었다. 기업과 인권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주요 인권규범과 원칙을 존중함으로써, 기업 내·외부 이해관계자 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신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유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UNGPs)’은 국가에는 기업이 인권을 존중하도록 법과 제도를 구축할 의무를, 기업에는 인권존중 책임을 부과하며, 이를 위한 사법적·비사법적 인권침해 구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보호, 존중, 구제의 3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길라잡이는 두 주체 중 기업의 측면에서의 ‘기업과 인권’을 다루며, 이를 “국제인권규범을 근거로 한 기업 등의 인권 친화적인 경영활동으로서, ①인권선언 ②인권에 대한 영향평가 및 사전예방적 대처에 대한 성과 공개 ③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한 구제절차 제공”으로 정의한다.
‘친화적’이라는 단어가 애매하기는 하나, 국제규범상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은 ‘침해하지 말라’는 것과 ‘해당 기업이 연관된 인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해결하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연관된’이라 함은 직접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권침해에 기여하는 것도 안 된다. 즉, 발주자가 산재법 상의 책임은 피할 수 있을지라도, 인권경영의 관점에서는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또한 방지하고 해결할 의무를 진다.
이번 발간물 또한 해외 사업장, 협력사 등 공급망 및 기타 사업관계에 있는 기업이 인권침해나 차별을 범하고, 이러한 침해나 차별에 연관될 리스크 역시 실사의 대상이며, 해당 기업이 ‘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기계적으로 우선순위를 낮게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하고 있다.
기업은 이와 같이 포괄적인 인권 존중의무를 지고 있으며, 인권을 존중하는 기업문화와 관행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인권 리스크에 대한 실사와 문제 발생 시 적절한 구제책을 제공해야 한다. 이번 길라잡이에서 집중하고 있는 ‘인권 실사’는 기업이 끼치는 부정적 인권 영향을 식별하고 방지·완화하며, 이러한 노력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포괄적 절차이다.
인권실사는 대상 및 우선순위 선정, 실재적·잠재적 인권리스크 식별과 평가, 그 결과를 기업운영과 활동 전반에 반영하고 실천하는 과정, 취해진 조치의 효과성에 대한 모니터링, 그리고 이 모든 절차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일시적인 절차가 아니라, 연속적이고 일관되게 진행되어야 할 경영실천이다.
특히 인권영향평가라고 부르는 실재적·잠재적 인권리스크 식별과 평가 절차는 실사과정 전반(내재화, 모니터링, 정보 공개)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 때 식별을 위해 체크리스트를 활용할 수 있는데, 이는 기업활동이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도록 돕지만, 체크리스트 방식은 기업활동의 규모가 크고, 공급망이 넓으며, 이해관계자가 다수일수록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대안적 실사 방법으로, 인권실사의 주체 면에서는 인권실사를 위한 워킹그룹 형성, 외부 전문가 자문 활용하고, 방법 면에서는 매트릭스 방식의 평가,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의 인터뷰를 포함한 정성평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인권영향평가 결과는 담당 부서의 사업 추진과 조직운영 과정에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이를 통해 인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거나 방지해야 한다. 다만, 사정에 따라 심각한 인권 이슈 중 우선적으로 해결할 문제를 선별할 수 있으며, 인권이슈의 성격에 따라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기 힘든 경우에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로드맵을 만들어 공개해야 한다.
부정적 인권영향에 대한 부서별, 전사별 대처가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지 그 효과성을 모니터링해야 하며, 그 신뢰성을 기업들은 인권실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독립적인 제3자 기관을 통해 효과성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추세이다. 또한 인권실사의 전 과정을 문서화하고 이를 공개하여 부정적 인권 영향을 방지하고자 하는 기업의 노력을 이해관계자와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구제는 부정적 영향의 중대성과 규모에 비례하여 회복조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금전적 배상, 사과, 복구, 재활, 비재정적 보상, 제재, 재발방지 약속 등 기업이 사전에 마련해둔 구제절차를 통해 피해자가 신속하게 인권침해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 여건 및 피해자 상황에 따라 사법절차 등 외부절차를 이용할 때에도 기업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이러한 구제절차 또한 그 효과성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한 지속적 개선이 필요하다.
인권실사의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영역이 있지만, 산업의 특성에 따라 더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인권리스크에 대해서는 각별히 더 주의해야 한다. 이에 따라 발간물은 산업군별 주요 인권이슈 및 인권실사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기업의 규모와 여건에 따라 기업과 인권 단계별 로드맵을 3단계로 제시하는데,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의 경우 보다 공식적이고 광범위한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는 2단계 혹은 3단계에서 출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길라잡이는 기업과 인권이 유럽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강행적인 제도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에 자발적 실천방법론을 제시하고 향후 단계별 제도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편, 이번에 참담한 사고가 발생한 노동자의 원청은 작년 공공기관 중 가장 많은 사고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사고사망자는 1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다. 이번 사고에 대한 재발방지대책으로 소규모 현장에 대한 원청의 직접 안전관리 등 몇 가지 안전조치를 내놓았지만,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반복적인 산업안전 사고가 발생하는 데에는 인권경영이 내재화되지 못한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사안의 원청은 작년 12월 성숙한 인권경영을 실천한 결실로 인권경영시스템의 공식 인증을 획득했는데, 보고서에만 존재하는 인권경영에 대한 경계가 시급하다.
※ 지현영 법무법인 지평 ESG 센터 변호사
지현영 변호사는 법무법인(유) 지평의 ESG센터와 환경팀에서 환경정책, ESG와 관련한 연구, 비즈니스 자문 업무를 비롯한 관련된 제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과 녹색시민위원회 기후 대기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지방변호사회 환경보전위원회위원,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