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세’ 도입의 바람직한 방향은?

에너지경제연구원, 해외 탄소세 운용 동향 보고서 발간 K-ETS에서 제외된 부문을 대상으로 제한적 세율로 운용할 수 있어

2022-01-26     김민정 editor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내건 탄소세에 산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탄소세가 현실화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연간 부담액이 세계에서 탄소세 세입이 가장 큰 프랑스의 3~5배에 달할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공약으로 탄소세를 신설해 t당 5~8만원을 부과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우리나라의 2020년 탄소배출량(6억5000만t)을 토대로 계산하면, 최소 32조원에서 최대 52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전 세계에서 탄소세 세입이 가장 큰 프랑스 세수의 3~5배에 달하는 수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 ‘해외의 탄소세 운용 동향 및 탄소가격에서의 시사점’에 따르면, 프랑스는 2020년 96억3200만 달러(약 11조5200억원)의 탄소세를 거둬, 탄소세를 도입한 전 세계 28개국 중 가장 많은 세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은 캐나다 34억700만 달러(4조700억원), 일본 23억6500만 달러(2조8300억원), 스웨덴 22억8400만 달러(2조7300억원), 핀란드 14억2000만달러(1조6900억원) 순이었다.

산업계에서는 우리 경제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다탄소 배출 업종을 포함해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구조인 만큼, 과도한 탄소세 부과는 산업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우리나라는 현재,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 탈탄소화를 향해 가파르게 나아가고 있다. 탄소세 도입 역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은 분명하다. 산업계에서는 탄소세를 도입하더라도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고, 산업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동규 서울시립대학교 조교수가 펴낸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해외의 탄소세 운용 동향 및 탄소가격에서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K-ETS만으로도 높은 수준의 탄소 비용 부담

보고서는 해외 각국의 탄소세 운용 동향을 통한 탄소세 적용 범위를 살펴 눈길을 끌었다. 이동규 조교수는 “대부분의 탄소세 도입국가들은 이중부담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탄소세를 운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탄소세를 별도로 도입해 추가적인 탄소 가격을 부과해야 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이미 한국 탄소배출권 거래제(K-ETS)를 통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0%가량에 대해 탄소 가격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탄소 가격으로 부과되는 총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탄소가격제도를 운용하는 대표적인 30개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것도 큰 몫을 한다.

이와 관련해, 이규동 조교수는 “우리나라는 K-ETS만으로도 연간생산성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에너지경제연구원 '해외의 탄소세 운용 동향 및 탄소가격에서의 시사점'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EU-ETS)에도 참여하고 있고, 탄소세를 ETS(탄소배출권 거래제) 참여 사업자들에게 중복해서 부과하는 핀란드보다도 GDP 대비 탄소 가격 부과율이 더 높은 상황이다.

이동규 조교수는 “굳이 지금 수준에서 탄소세를 추가로 도입해 탄소 가격으로 부담하는 비중을 더 높이는 것이 시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면서 “만약 탄소세를 부과한다면, K-ETS에서 제외된 부문에 대해 제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OECD 회원국과 주요 개발도상국 44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국가별 탄소가격 부과 수준’에 대한 결과를 통해, 우리나라의 탄소 가격 반영 수준이 낮지 않다고 설명했다.

출처. 에너지경제연구원 '해외의 탄소세 운용 동향 및 탄소가격에서의 시사점'

주요국의 탄소가격점수(Carbon Pricing Score・CPS)는 탄소 가격을 특정 수준 이상 부과하는 비중을 뜻한다. 예를 들면, 한 국가의 ‘CPS60이 70’이라고 하면, 이는 해당 국가에서 전체 탄소배출에 대해 ‘탄소 가격이 60유로(8만1154원) 이상 부과되는 탄소배출량이 70%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이동규 조교수는 “우리나라는 2018년 CPS60이 전체 44개국 중 상위 10번째에 해당했고, 2015년의 CPS60보다 2018년 CPS60의 증가분은 전체 분석대상국 중 1위를 차지했다”면서 “이것은 우리나라의 탄소 가격 반영 수준이 낮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국내 탄소세 도입 시 고려할 만한 세 가지

이동규 조교수는 국내에서 탄소세를 도입할 경우 참고할 만한 사항으로 세 가지를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가장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부과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탄소 가격의 반영수단은 탄소세뿐만 아니라 ETS의 가격, 일반 에너지세도 포함된다. 그리고 탄소세를 도입한 국가들 대부분은 ETS 참여자를 과세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세율을 감면해 준다.

이동규 조교수는 “이런 점에서, 탄소세를 국내에 도입하더라도 탄소세 대상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ETS에서 비(非)할당 부문은 수송, 건물 부문이나 소규모 사업장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중 수송 부문은 이미 기존 에너지세에 의해 상당한 수준의 탄소 가격이 부과되고 있다”면서 “현재 상황이라면 탄소세 과세대상은 건물 부문이나 소규모 사업장 정도가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과 대상만큼 중요한 것은 탄소세 적정세율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 것인가다. 여기저기서 더 강력한 탄소 가격을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보고서는 현실적으로 각국의 경제 상황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세율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규 조교수는 “우리나라는 석유화학, 정유, 철강, 시멘트 산업과 같이 탄소 다배출 산업의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세율을 지나치게 높게 결정하기는 쉽지 않으며 적절해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이미 ETS를 통해 GDP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의 탄소 가격을 지불하고 있음을 언급하며, “탄소세를 도입하더라도 세율은 제한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은, 기존 에너지세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기존 에너지세를 탄소세로 전환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보고서는 탄소세가 기존 에너지세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동규 조교수는 “탄소세를 도입한다고 가정하면, 기존 에너지세를 완전히 탄소세로 대체하는 것보다 기존 에너지세 세율의 일부를 탄소세로 대체해, 세금 총액은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기존 에너지세를 에너지 소비세와 탄소세로 단순화시키고 통폐합하는 방식이 좀 더 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탄소세를 기존 에너지세를 좀 더 단순명료화시키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개선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