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올해의 키워드 조직문화와 평등 꼽은 이유? 팬데믹 시대의 임금 격차

2022-01-26     박지영 editor

#1. 삼성전자 노조는 전 직원 연봉 1000만원 일괄 인상, 매년 영업이익의 25%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제시한 협의안이 부결되면서 임단협은 파행됐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1조원, 성과의 열매를 직원과 나눠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노조는 쟁의행위 돌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2.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900억원에 달하는 자사 주식을 매각해 개인적 이익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카카오페이 노조는 “카카오페이의 성장은 카카오페이 구성원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 낸 결과인데 결실은 특정 임원진에게만 집중됐다”며 “이번 사태로 구성원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며 류영준 대표의 카카오 공동대표 내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쟁의를 하겠다고 경고까지 했다. 이에 카카오는 대표이사 지명을 철회했다.

직원과 임원 간 임금 격차는 최근 떠오르는 시대정신인 공정과 맞물려 기업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올해의 키워드로 조직문화를 선정하면서 ‘평등’을 지적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벌어진 임원과 직원의 임금 격차는 근로자들의 근로 의욕을 저하하고, 이는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켜 아예 노동을 거부해버리는 현상도 나타나면서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퇴직(the Great Resignation)’ 현상은 임금 격차가 불러올 수 있는 새로운 파장을 잘 드러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미국 노동자들의 반란’이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팬데믹은 미국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고, 과연 이런 형편없는 일자리에 계속 매여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했다”며 “미국은 부유한 나라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대우를 해 왔고, 특히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보정하면 2019년 남성 근로자가 일해서 번 돈은 40년 전의 남성 근로자가 벌던 것보다 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의 임금 상승률은 마이너스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민간 부문의 시간당 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4.7% 올랐지만 물가가 7% 상승하면서 실질 임금 상승률은 –2.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반 근로자와 CEO간 임금 격차는 더 커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미국 내 최대 노동조합 단체인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가 발표한 연례 '경영진 보수감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평균 노동자 중위 임금의 차이는 299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년(2019년) 264배보다 격차가 확대된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에 포함된 기업의 CEO는 2020년 평균 1550만 달러(약 178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올해 ESG를 논하며 임금 공정성을 논해야 하는 이유다.

 

임원-직원 임금 격차

주주 반대에 노조 결성까지 부르기도 

지금껏 임원과 직원의 임금격차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돼왔다. 책임의 크기에 비례해 성과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이 같은 인식은 깨졌다. 다 같이 힘든데 임원만 성과급 잔치를 하다는 게 부당하다는 반론이 제기되면서다.

지난해 영화 제작사인 AMC 엔터테인먼트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 세계 950개의 극장 문을 닫고, 2만5000명에 달하는 직원을 해고했다. 반면 임원에게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500만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에 대처하는 경영진의 비상한 노력을 인정한다”는 이유에서였다. AMC 엔터테인먼트의 아론 CEO는 2090만 달러의 보수를 받기도 했다. 이는 전년(970만 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반면 AMC의 중간급 관리자는 단 5503달러만 받았다. 

이제와는 다르게 주주들은 이를 문제로 삼았다. “팬데믹 시기에 이사회에 주는 보수가 과하다”며 주주총회에서 3분의 1이 이사회 임원 보수 결정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AMC 뿐 아니라 AT&T, IBM, 스타벅스, 월그린스 등 많은 기업이 이사회 보수 안건에서 반대표를 받은 기록적인 한 해였다. 

임금격차는 스타벅스에 50년 만에 노조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스타벅스의 케빈 존슨 CEO는 지난해 총 보상금으로 거의 1500만 달러를 받았는데, 이는 스타벅스의 중간 관리 근로자보다 1200배 이상 많은 금액이었다. 반면 일부 매장 근로자들은 생활임금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벅스에서 10년 이상 일해 온 한 직원은 “코로나19 전부터 직원에 대한 처우는 명백히 나빠지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이는 뚜렷해졌다”며 “신입직보다 고작 시간당 1.20달러를 더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임금 격차와 직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이유로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스타벅스 2곳을 비롯해, 미국 뉴욕주 버팔로의 매장 3곳, 미국 애리조사주 메사 매장 1곳 등에서 노조 결성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임원-직원 임금격차 더해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까지 더해져

국내 임금 격차는 이중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임원-직원 간 임금 격차 뿐 아니라 대기업-중소기업 격차도 크게 벌어지면서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2020년 국내 500대 기업 중 294개 임직원의 급여를 전수 조사한 결과 등기임원들은 직원보다 최대 10배 이상 높은 연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 1인당 평균은 8120만원인데 비해 미등기임원과 등기이사는 평균 3억5890만원, 8억7010만원을 받으면서 직원 연봉 대비 각각 4.4배, 10.7배까지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격차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더 벌어졌다. 2019년의 경우 직원 대비 미등기임원 연봉은 4.3배, 등기이사 연봉은 10.3배였다. 직원 연봉이 전년 대비 3% 오를 때 미등기임원은 4.7%, 등기이사의 연봉은 7.3%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에 격차가 커진 것이다.

최근 쟁의를 예고한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직원과 등기이사의 임금 격차는 42배에 달했다. 등기이사 6명이 지난 한 해 1인당 평균 53억7500만원을 받은 반면, 직원 평균 급여는 1억2700만원에 그치면서다. 카카오의 경우 30배 차이가 났다. 등기이사 34억9600만원, 직원 1억800만원을 받으면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최근 20년간 점점 더 벌어졌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평균임금 비중 변화 추이/중소기업연구원  ‘대-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격차 변화 분석'

작년 중소기업연구원이 발간한 ‘대-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격차 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60%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 상시근로자 5~499인 중소기업의 1인당 월 평균 임금은 337만7000원으로 근로자 500인 이상 대기업(569만원)의 59.4% 수준을 기록하면서다. 20년 전인 1999년의 71.7%보다 12.3%p 낮아진 수치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훨씬 커진 것이다.

 

미국, 임원-직원간 임금격차 더  빠르고 크게 일어나

미국에서는 임원-직원 간 임금 격차가 더 빠르고 더 크게 일어났다. 지난 8월 워싱턴의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가 미국 기업 350개사의 주식 상여금과 스톡옵션 현금화 등을 포함한 매년 실제로 받은 급여에 대한 분석을 실시한 결과 임원의 임금은 1978년부터 2020년까지 1322%나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비경영직 근로자의 소득은 같은 기간 평균 18% 증가했다. 경제정책연구소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직원 불평등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컨퍼런스 보드 조사결과, 특히 상위 회사에서 임원의 임금 상승률은 도드라졌다/FT

FT는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재밌는 조사를 진행했다. CEO가 연봉으로 100만 달러만 벌면 근로자들은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알아 본 것이다. 미국 최대 상장기업 중 22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CEO가 매년 100만 달러만 급여로 받고 차액이 재분배됐다면 2020년 중위권 근로자 임금을 10% 이상 인상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근로자들에게 최소한 400달러는 더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의 가장 극단적인 예시로 급여관리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페이콤을 들 수 있다. 페이콤의 채드 리치슨 CEO는 2020년 인센티브로 2억1100만달러를 받았다. 만약 리치슨 CEO가 100만달러만 받았다면, 2억1000만달러의 자금은 직원들에게 재분배돼 직원들의 임금을 59.5%까지 올려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컨퍼런스 보드의 마테오 토넬로 상무는 “소득 불평등은 주주들을 위한 단기 재무 결과 극대화에만 집착하면서 자사 직원을 포함한 다른 핵심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소홀히 한 결과”라며 “직원을 소외하면 결코 기업은 지속가능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임금 격차 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도

CEO와 직원 간 임금격차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미국에서는 최고 경영자의 과도한 보수에 과세하는 법안까지 나왔다. 기업 내 노동자 급여 중간값의 50배 이상을 CEO에 지급하는 기업은 0.5%의 법인세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CEO와 평균 급여 격차가 500배 이상으로 벌어지는 경우에는 5%의 법인세를 더 부담하게 된다.

민주당 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은 지난해 3월 '과도한 최고경영자 보수에 대한 과세'(Tax Excessive CEO Pay Act)’ 법안을 발의하면서 “중간 노동자의 보수보다 50배 이상 많은 급여를 CEO에 지급하는 회사에 고율의 세금을 물리겠다”고 밝혔다.

가령 2020년 CEO의 보수가 노동자들의 평균 보수보다 983배 높았던 월마트의 경우 8억5490만 달러의 세금을 더 징수하겠다는 것이다. 급여 컨설턴트사인 FCLT 글로벌은 “기업들은 임원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 단기적인 특전에 너무 자주 의존하고 있다”며 “단기 보너스 대신 장기 보수 계획 설계 구현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런던경영대학원 알렉스 에드먼드 재정학 교수는 “장기 상여금 제도를 없애고 스톡옵션 등에 제한을 거는 등 장기 보유할 수 있는 현금과 주식으로 보수를 지불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