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오일 투명성 높이기 위해 공급업체와 생산업체가 뭉쳤다

2022-01-27     박지영 editor

팜유는 모든 샴푸, 컨디셔너, 비누, 치약, 향수, 초콜릿 등에 필수적인 성분이다. 일명 ‘일꾼 재료’인 셈이다. 팜유가 없다면 슈퍼마켓에 물건을 팔지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원재료지만, 팜 오일은 어쩐지 악마 취급을 받고 있다. 쇠고기와 콩은 브라질 삼림 벌채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등 팜유에 비해 4배나 많은 나무를 희생시키고 있지만, 팜유보다 악명높진 않다. 

그렇다면 악명 높은 팜 오일을 단순히 배제하는 것이 방법일까. 팜 오일을 대체하기 위해 쓰이는 코코넛 오일과 대두 오일은 어떨까. 이 원재료들은 더 넓은 면적에서 더 적게 생산되기 때문에 오히려 토지와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작물이다. 문제는 악화될지언정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팜 오일의 오명을 벗기기 위해선 지속가능한 공급망 구축이 중요하다. 그 중심엔 투명성이 있다. 로레알과 유니레버 등에 팜오일을 공급하는 런던의 화학기업인 크로다사의 크리스 세이너 지속가능성 부사장은 “특히 팜 오일의 경우 다른 원자재보다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투명성 핵심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공급망 투명성 높이기 위해 

공급업체와 생산업체 뭉친 ASD

투명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업체와 생산업체들이 뭉쳤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컨설팅사인 BSR은 팜 오일 공급업체의 연합인 ASD(Action for Sustainable Derivatives)를 꾸렸다. 크로다, 샤넬, 에스티로더, 로레알 등 23개 대형 퍼스널 케어 회사들을 연합에 참여시키고, 그들의 공급자까지 참여시켜 팜 오일 공급망 지도를 만들었다.

지난해는 ASD가 발족된 지 3년이 되는 해였다. 작년 보고서에 따르면 ASD는 82만5000t에 달하는 야자 공장과 팜 오일 정유공장 등 230개 공급자와 유통업체의 공급망을 정리했다. 85~90%의 공급자와 유통업체들이 ASD에 투명성 측정기준을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ASD에 참여하고 있는 그룹들/ASD

야자는 농장에서 생산되고, 가공되고, 오일로 만들어지고, 유통업체로 전달되기까지 적어도 4개에서 많게는 10개의 공급망 연결고리를 거친다. 팜 오일이라는 원료가 샴푸라는 완성품으로 변화되기까지는 최대 두자릿 수 이상의 공급망을 통하기도 한다. BSR의 에드위나 맥케치니 부사장은 “매우 세분화되고 복잡한 공급망을 가진 야자라는 원자재의 특성은 고유한 문제를 일으킨다”며 팜 오일 공급망 대응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ASD는 야자유를 사용하는 소비재 생산자들을 한데 모아 공급망 그물에 얽힌 모든 기업이 복잡하고 불투명한 공급망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게 돕는다. 목표는 팜 오일을 사용하는 생산업체가 공급망에 어떤 기업이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해당 공급망의 지속가능성과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 관행을 조사하는 것이다.

BSR은 “팜 오일을 공급하는 업체 입장에서도 납품해야 하는 기업으로부터 지속가능성에 관한 요청들을 받고 있지만, 각각의 회사로부터 오는 다른 질문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공급업체와 생산업체가 함께 참여하는 협력적인 연합을 꾸리면서 공급업체가 다양한 최종 사용자의 요구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이 모든 기업이 한 그룹으로 묶이면서, 브랜드들은 하나의 회사가 단독으로 행동할 때보다 공급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생산업체 중 하나인 크로다(Croda)사의 세이너 부사장은 “크로다는 전 세계 14개 공장과 100개 이상의 공급업체, 300개 이상의 야자수 농장과 거래를 맺고 있다”면서 “상위 기업인 로레알이나 에스티로더 같은 기업은 우리 같은 기업 수백 개로부터 팜 오일을 공급받는다”고 설명했다. 공급망 지도를 그리는 일은 개별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RSPO 이니셔티브 맞춤으로

공급업체-생산업체 고충 덜어줘

ASD는 공급업체와 생산업체 모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속가능한 소싱, 인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 팜유 사용자와 공급업체가 공통으로 약속한 RSPO(Roundtable on Sustainable Palm Oil) 지침과 밀접하게 일치하는 지속 가능한 팜 지수(SPI) 평가 스코어카드를 사용한다.

또 팜유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한 공통된 질문 목록을 만들었다. 가령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는 누구인지 ▲팜유의 종류는 무엇인지(팜유(Palm oil)인지 팜핵유(Palm kernel oil)인지 ▲순도는 얼마인지 ▲공급망의 몇 퍼센트가 삼림 벌채 금지 약속을 가지고 있는지 ▲몇 퍼센트가 확인되었는지 등이다. ASD는 해당 정보를 사용해 관련된 공급망을 기반으로 위험을 평가하는 공급망 지도를 만든다.

ASD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지속가능한 개발 컨설팅 기관인 트랜지션은 방법론을 확인한다. ▲귀사의 공급망은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지 ▲어떤 관행이 있는지 ▲어떤 투명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종류의 고충이 있는지 ▲고충에 대한 해결책을 갖고 있는지 등이다.

로레알이 RSPO 이니셔티브에 보낸 성과보고서에 언급된 ASD/RSPO Annual Communications of progress 2019

ASD가 만들어지기 전 생산업체는 관계를 맺고 있었던 공급망에 각각의 질문을 보내 취합했어야 했다. 정보가 한 번에 취합되면서, 생산업체는 공급망 투명성을 더욱 쉽고 확실하게 보고할 수 있게 됐다. 

ASD는 이 모든 정보를 수집해 회원에게 배포한다. 집합된 정보는 생산업체가 공급자가 삼림 벌채 문제나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했는지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 고충이 발견됐다면 생산업체에서 직접 조사한 후 조치할 수 있다. 

다만 기업의 레시피 등 민감한 사안은 철저히 비밀로 부친다. 경쟁자가 브랜드의 재료 출처를 알게 되면 유사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ASD에서 모은 정보는 ASD 내에서만 공유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고 있다. 

또 어떤 공급업체로부터 구매를 해야 하고, 어떤 공급업체를 독점 금지 이유로 피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공급업체는 밝히지 않는다. 각 사가 맺고 있는 공급업체에 대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생산업체가 구매에 대해선 독립적으로 내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ASD가 관리하고 있는 공급업체 비율/ASD

ASD는 “관리되고 있는 야자의 총 소비량은 100만톤을 향해 가고 있다”며 “투명한 공급망을 만들기 위한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공급망에서 생산의 투명성이나 가시성은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지 목표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