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4조 영업손실난 국내 4사 정유사들, 에너지 전환 점수는?

4대 정유사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드러나 기후리스크 인식 사업 전환과 혁신, 어디가 앞서가나

2020-08-06     박지영 junior editor

글로벌 석유기업은 이해관계자들의 압박이 거세짐에 따라, 넷제로 선언 및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원유를 직접 생산하는 업스트림(Upstream)에 종사하는 글로벌 석유기업들에게 주어지는 압박은 원유 수송·정제·석유제품 판매 등 다운스트림(Downstream)에 종사하는 국내 정유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내 정유사의 경우 정제뿐 아니라 석유 제품을 만드는 종합화학회사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석유가 좌초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세계적 흐름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국내 정유 4사는 ‘창사 이래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 1분기에만 정유 4사 합산 4조원이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분기도 적자 행진이었다. 

석유개발에 힘쓰는 SK에너지와 석유화학 중심인 SK종합화학, 윤활유 사업을 맡은 SK루브리컨츠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1조7751억원, 2분기 4397억원 등 상반기에만 2조2148억원의 영업적자를 봤다. 주력사업이 비슷한 나머지 정유사들도 상반기 적자 규모가 작지 않다. S-OIL은 1조1716억원(1분기 1조73억원, 2분기 1643억원), 현대오일뱅크는 5500억원(1분기 5632억원, 2분기 영업이익 132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 실적발표를 하지 않은 GS칼텍스는 1조3318억원(추정치, 1분기 1조318억원, 2분기 시장추정치 4000억원)으로 집계된다. 

 

휘발유·경유 등을 화석연료로 쓰는 내연기관차에 대한 규제도 커지면서 정유산업의 미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각국 정부가 나서 내연기관차를 친환경차로 전환을 추진하며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정유사들은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GS칼텍스, S-Oil, SK이노베이션의 2019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참고해 이들이 기후 위기와 이에 따른 석유산업의 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봤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2010년 이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차보고서를 참고했다. 

각 사간 비교를 위해 TCFD 프레임워크를 참고했다. ▲기후변화의 위험을 식별하는지 ▲기후변화의 위험을 관리하려고 하는지 ▲기후변화의 위험과 기회가 조직의 사업·경영전략·재무계획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는지를 기준으로 4개사의 기후변화 인식 정도를 비교했다.  

 

리스크 식별 정도

SK이노베이션> S-OIL>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3사는 기업에 놓인 중대한 과제로 기후 위기를 꼽았다. 다만 가중치는 달랐다. 

SK이노베이션 중대성 평가/2020 SK이노베이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기후 위기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긴 기업은 SK이노베이션이다. 중대성 평가에서 기후 변화 대응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상정하고, 그린 이니셔티브 강화와 함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SK이노베이션은 보고서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미비한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이 작다고 판단되며, 투자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S-OIL은 매트릭스 상 중요도가 높은 문제라고는 인식했지만, 산업 안전 보건 관리, 오염물질 관리, 환경에 미치는 영향 관리에 비해 낮은 가중치를 뒀다. 

GS칼텍스 중요성 평가/2020 GS칼텍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GS칼텍스는 기후변화를 1위부터 10위의 중대성 이슈 중 9위에 선정했다. 친환경에너지 투자 확대, 신성장 동력 확보 및 사업 다각화가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과 탄소 중립 경제 체제 전환을 위해선 인식 전환이 필수이며, 특히 정유산업은 엄격한 에너지 및 환경관리 활동이 필요하다”면서 기후변화 리스크에는 공감했지만, 중요도를 높게 두진 않았다. 

현대오일뱅크는 유가변동, 원유 다변화, 외환 리스크 관리에 대한 필요성은 언급했지만, 기후변화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리스크 관리 정도도 순위 변동 없어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 관리 방안에서도 기업 간 인식 차이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리스크 식별이 높았던 SK이노베이션은 “기후변화 협약은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 규제 차원을 넘어 경영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며 신사업 전환의 필요성을 밝혔다.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다양한 이해관계자 차원에서 해석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받는 화석연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의 엄격한 환경 규제 ▲NGO 및 지역 사회의 압력 증가 ▲기후변화 관련 정보 공개 요구 ▲기업가치 하락 리스크에 따른 글로벌 투자기관들의 대응 요구를 리스크로 지적했다. 덧붙여 “배출권 구매 비용 등으로 재무적 영향이 증가할 것”이라며 “환경 이슈를 선제적으로 의사결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S-OIL은 기후변화 리스크를 규제의 문제로만 해석해 다소 소극적인 문제 인식을 보였다. S-OIL은 “파리협정 발효로 전세계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구체적 이행을 남겨두고 있다”며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으로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예측범위를 넘어선 자연재해는 원유 수급과 공장 가동에 차질을 유발해 막대한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며 자연재해로 인한 물리적인 리스크를 언급하는 데 그쳤다. 

또한 “전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 노력은 중장기적으로 정유 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의 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신사업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변화의 방향성에 대해 모호하게 언급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GS칼텍스는 “환경 이슈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며 기업의 환경 책임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소비자들의 친환경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커지고 있다”며 기후 위기에 따른 시장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온실가스 감축 및 친환경 제품 개발 등 두루뭉술한 표현을 사용하는 등, 기후 위기 대응의 적극성 측면에선 부족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연차보고서에서 환경경영을 언급하며 주요 환경경영 활동의 하나로 기후변화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Green Balance 2030'

S-OIL '친환경 제품 생산'

GS칼텍스 '전기차 충전 사업'

현대오일뱅크 '저유황유 개발'

SK이노베이션의 'Green Balance 2030'/2020 SK이노베이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SK이노베이션은 구체적인 전략과 함께 사업 전환까지 시사했다. “규제의 틀을 넘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추구할 때”라며 환경 문제를 새로운 경쟁력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포부를 드러냈다. 환경을 주축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는 ‘Green Balance 2030’을 목표로 친환경 플라스틱 제품 개발 및 윤활유 개발을 넘어 태양광 발전설비와 수소 충전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화석 연료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맞춘 대응전략을 수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파트너십을 맺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할 수 있는 온실가스 감축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S-OIL은 탄소 배출량 감축과 친환경 제품 생산을 제시했다. 탄소 경영 도입으로 탄소 비용을 투자 의사 결정 과정에서 고려하고, 연료 전환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가가치가 낮은 잔사유를 고부가가치 기초 유분으로 전환하는 RUC/ODC 프로젝트로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생산시설 운영에서도 중장기적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GS칼텍스의 '미래형 주유소' 예상 이미지/2020 GS칼텍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GS칼텍스 또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언급했다. “국가온실가스 로드맵 및 환경변화를 분석해 배출량 추이를 예측, 모니터링 프로세스 구축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기존의 고유황유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하고 저유황유로 친환경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신사업으로 전기차 충전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에너지 원 단위 관리 및 공정개선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배출권거래제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 또한 저유황유 개발로 친환경 제품 개발에 선제적 대응을 하고 있다. 다만 중장기 전략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SK이노베이션, 석유화학 시대 종말 선언

3사, 신사업 개척 몰두

GS칼텍스와 S-OIL, 현대오일뱅크는 석유화학 분야의 신사업 개척에 힘쓰고 있다. GS칼텍스는 2022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올레핀생산시설(MFC)을, 현대오일뱅크는 중질유 석유화학 콤플렉스(HPC)를 건설 중이다. S-OIL은 지난해 1차 석유화학 프로젝트로 복합석유화학시설(RUC·ODC)을 완공해 상업 가동에 돌입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고 전기차 배터리, 소재사업 등으로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은 "석유 사업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친환경과 플랫폼 사업 두 축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하겠다"며 사업 전환에 대한 의지를 보이며 4사 중 가장 선제적 대응을 하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 석탄은 좌초자산으로 취급받고 있으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국가들의 화석연료 사용 규제는 보다 심화할 것이 명확하다. 사업 전환이 쉽진 않지만, 장기적인 대안 모색이 없다면 정유사들이 살아남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