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만명이나 서명...스페인 은행들, 점포폐쇄 계획 접고 ‘노인 금융 포용성’ 높이기로
스페인 은행들이 노인 금융 소외를 해소하기 위해 출납원 서비스 중단 계획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페인 은행들은 점포 운영비 등을 축소하고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점포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디지털 서비스로 전환하고자 계획중에 있다. 하지만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는 노인들은 점포 폐쇄에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고, 은퇴 의사인 카를로스 산 후안(Carlos San Juan)이 금융 디지털화 전환에 반대하는 내용의 ‘#SoyMayorNoIdiota(나는 늙은 바보가 아니다)’ 캠페인을 올초 시작해 주목을 받았다.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스페인에서 해당 캠페인은 노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64만명의 동의 서명을 얻었고, 2월 초 경제부에 전달됐다.
서명을 전달받은 경제부는 은행권과 '노인 금융 포용성' 방안 논의에 돌입했고, 21일 나디아 칼비노(Nadia Calviño) 경제부장관은 은행권의 점포 출납원 서비스 연장 발표와 함께 “은행지점에서 금융 서비스를 받았던 노인들은 앞으로도 출납원 서비스와 함께 우대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의 합의에 따라, 은행들은 숙련된 은행원을 점포에 배치해 노인 고객을 전담하고, 노인고객들이 ATM, 온라인 뱅킹 및 폰뱅킹 사용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원격 등으로 안내할 방침이다.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Pablo Hernandez de Cos) 스페인은행 총재도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은행이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방안이 실행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이 감독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은행노조와 소비자단체는 은행의 출납원 서비스 연장 계획은 신규 채용이 동반되지 않으면 근로자 피로도가 높아지는 등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정부는 금융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요구사항을 검토해, 서비스 지원 방안을 몇 주 안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금융 고객 보호기관을 설치하여, 디지털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금융권의 의무 준수를 감독하는 동시에 농촌 지역의 노인 디지털 포용성을 촉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디지털 금융 소외계층 이슈는 비단 스페인만 가지고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말 신한은행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 지점을 폐쇄하려다 고령의 지역 주민 반대로 직원 2명이 상주하는 출장소 형태로 바꿨고, KB국민은행은 전남 목포 지점을 올해 폐쇄하고 인근에 통폐합할 계획이었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혀 출장소로 전환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10월까지 폐쇄된 국내 은행 점포는 총 1507곳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 304곳, KB국민은행 225곳, 우리은행 165곳, 신한은행 136곳으로 4대 시중은행의 점포 폐쇄가 전체 60% 이상을 차지했다.
운영비용 절감과 고객 편의성 증대 목적으로 국내 은행들이 기존 점포를 폐쇄하고 디지털로 전환하는데 속도가 붙고 있지만, 점포 이용에 익숙한 노인계층은 금융 소외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더불어 점포 폐쇄는 고용 및 노동 문제로 직결돼 부작용이 제기된다. 근무하던 지점이 폐쇄할 경우, 은행원은 지방과 서울 등 권역 간 이동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지방과 서울을 오고가는 상황에 직면해 업무 피로도뿐 아니라 이직률 또한 높아지게 된다. 이같은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희망퇴직을 제시하는 은행 또한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