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투자자 칼 아이칸의 상반된 행보? 우크라이나 효과본 옥시덴탈은 매각하고, 맥도날드엔 동물복지

2022-03-07     유미지 editor
억만장자 투자자 칼 아이칸의 잇따른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 칼 아이칸 트위터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칼 아이칸(Carl Icahn)의 행보가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그는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최대 규모의 에너지 기업 ‘옥시덴탈 페트롤리엄’의 지분을 정리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이후 이 회사의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이익 실현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한 듯 보인다. 

지난달에는 맥도날드에게 돼지의 처우를 개선을 논하며 이사진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용해 1조원을 벌면서도, 돼지의 사육환경과 같은 '동물 복지'를 외치는 그의 상반된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석유회사 옥시덴탈 페트롤리움 지분 전량 매각한 칼 아이칸

지난 6일, 칼 아이칸은 옥시덴탈 페트롤리움(Occidental Petroleum) 이사회 측에 서한을 보내 남은 지분 10%을 매각했다고 전했다. 아이칸은 지난해 8월 옥시덴탈의 지분 6.94%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3월 초에는 지분율이 3.44%로 축소된 바 있다. 매각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이 회사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이익 실현 차원에서 지분을 매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칸은 이날 옥시덴탈에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며 본인이 내세운 이사 2명도 함께 사임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아이칸은 2019년 아나다코(Anadarko) 투자를 결정한 CEO비키 홀룹(Vicki Hollub)의 사퇴를 요구하며 1년 가까이 위임장 투쟁을 한 바 있다. 이후 아이칸이 지분율을 2.5%에서 10%로 올린 뒤에는 옥시덴탈의 전 CEO였던 스티븐 사젠의 복귀와 자신이 추천하는 이사 2명, 앤드류 랭험(Andrew Langham)과 니콜라스 그라지아노(Nicholas Graziano)를 포함해 이사진 3명의 교체를 요구했다. 당시 홀룹이 CEO로 남는 대신 이사진은 교체하기로 양측이 합의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칼 아이칸이 지분을 매각하면서 10억 달러(한화 약 1조2000억원)의 이익을 봤을 것으로 예상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순이익도 5억 달러(한화 약 6100억원) 정도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 아이칸이 돼지 처우에 대한 문제를 두고 이사진을 교체하겠다며 맥도날드에게 위임장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픽사베이 

 

 ‘돼지 임신용 우리’ 이슈를 두고 맥도날드와 위임장 투쟁 벌여

한편 맥도날드의 소수 지분을 지니고 있는 칼 아이칸이 돼지 처우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며 위임장 투쟁을 벌이고 나섰다. 아이칸의 이 같은 조치는 동물 복지 차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맥도날드는 지난 2월 아이칸이 2022년 연례 주주 총회에서 레슬리 사무엘리치(Leslie Samuelrich)와 메이지 갠즐러(Maisie Ganzler)를 후보로 지명했다고 밝혔다.

아이칸은 최근 몇 년 동안 맥도날드에 돼지에 대한 더 나은 처우를 요구해왔다. 특히 그는 임신한 돼지를 ‘임신용 우리(gestation crate)’에 가두어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산업 관행을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앞서 2012년 맥도날드는 이런 방식을 쓰는 생산 업체로부터 돼지고기를 구매하는 것을 2022년까지 중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아이칸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동물은 내가 정말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 중 하나다”라며 “자신과 아내가 3마리의 개를 키웠고 돼지를 특히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위임장 투쟁에 대해서 그는 “10년 전 한 약속을 맥도날드가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맥도날드가 ‘임신용 우리’를 거치지 않은 돼지고기를 구매하겠다고 약속한 데에는 아이칸과 동물 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humane society)’의 압박이 힘을 발휘했다. 아이칸은 채식주의자이자 휴메인 소사이어티에서 일한 경험을 지닌 동물 보호론자 딸 미셸 아이칸 네빈(Michael Ichan Nevin)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용 우리에 갇혀 있는 돼지의 모습/ 픽사베이

 

맥도날드를 압박하는 이유, 동물의 권리 보장

현재 미국 양돈 산업에서 600만 마리의 암퇘지는 임신기간인 4개월 동안 가로 60cm, 세로 210cm 정도의 쇠창살로 만든 작은 우리에서 꼼짝하지 못한 채로 갇혀 지내고 있다.

업계는 큰 우리에 수십 마리의 암퇘지를 함께 배치하는 ‘그룹 하우징 방식’으로 대체하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새끼를 낳을 때마다 ‘분만용 우리(farrowing crate)’에서 몇 주를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임신용 우리를 거치지 않은 돼지고기’라 하더라도 임신 및 출산기간 동안엔 우리에서 지내게 되는 셈이다. 아이칸과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맥도날드가 공급업체가 임신용 우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맥도날드는 “회사 역시 이 문제 해결에 협력하고 싶지만 현재 미국 돼지고기 공급 상황으로 인해 이러한 유형의 약속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게 아니라 맥도날드가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2020년부터 미국의 프랜차이즈 음식점 치포틀레(Chipotle)는 ‘임신용 우리’ 를 거치지 않은 돼지고기를 사용하고 있고, 홀푸드(Whole Foods)는 2003년부터 ‘임신용 우리' 없는 돼지고기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맥도날드의 결정이 업계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

현재 아이칸은 맥도날드 주식 약 200주를 소유하고 있다. 5만 달러(한화 약 6100만원) 상당이다. 그가 상당량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옥시덴탈, 제록스, HP에 비하면 훨씬 적은 금액이고 영향력도 미미하다.

그러나 지난해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 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 넘버원’이 엑손모빌의 이사회 교체를 이끌어낸 적이 있어 이번 맥도날드 위임장 대결 역시 주총으로 갈 경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또, 맥도날드가 하는 일은 전체 식품 시스템에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패스트푸드 산업도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맥도날드는 지난 2015년, 1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5년까지 공급받는 계란을 ‘동물복지란’으로 교체하겠다고 약속한 이후 광범위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맥도날드가 공급망에서 ‘임신용 우리’ 없는 돼지고기를 공급받게 된다면 경쟁자들 또한 따라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편 맥도날드는 아이칸의 이런 주장에 일관성이 없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아이칸이 돼지고기 및 가금류 산업에 포장재를 공급하는 기업, ‘비스카세(Viskase)’의 대주주인데 '왜 그 회사에게는 비슷한 약속을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