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사용 증가도 정부·기업 책임" 소송 리스크 커진다

2022-03-15     박지영 editor

지난 2일 유엔환경총회에서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플라스틱 규제 협약을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플라스틱 생산자와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급증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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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환경계획은 플라스틱 규제 협약이 2015년 파리협정 이후 가장 중요한 다자간 환경협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협정은 정부와 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구속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협약을 전후로 세계에서는 플라스틱에 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필리핀에선 해양보존단체인 오세아니아 필리핀(Oceana Philippines)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필리핀 정부가 지난 20년간 플라스틱의 생산, 사용 및 폐기율을 줄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001년 필리핀에선 공공 폐기물 기관이 환경 친화적이지 않은 제품 목록을 검토하고, 공개하고 사용을 규제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된 바 있다. 오세아니아 필리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다”면서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는 사이 수백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필리핀 군도 구석구석에 쏟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소송에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어업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 플라스틱 오염으로 악화되는 홍수로 인한 피해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정부의 조치가 건강한 환경에 대한 개인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말 필리핀 대법원에서는 재판이 시작될 전망이다. 

미국의 국제환경법센터 캐롤 머펫 센터장은 “플라스틱의 영향을 받는 지역 사회에서는 기후 소송의 교훈을 배우고 그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산업과 행위자들을 주의깊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다른 사람들은 제각기의 방식으로 환경 오염의 영향을 받고 있고, 이는 잠재적인 소송 수단이 실질적이고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일회용 캡슐 커피 '큐리그' 플라스틱 분쟁 휩싸여

미국에서는 일회용 캡슐 커피를 만드는 '큐리그'가 플라스틱 분쟁에 휩싸였다. 큐리그사는 그린 마운틴 커피 제품에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삽입한 바 있다. 이에 소비자들의 이의제기가 빗발치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규제 기관에 수백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포장에 사용한 문구도 바꿨다.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환경단체인 어스아일랜드인스티튜트(Earth Island Institute)는 2020년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겠다는 의무를 만든 코카콜라, 펩시, 네슬레를 대상으로 3건의 별도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에는 코카콜라와 블루트리톤을 상대로 또 다른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업체가 플라스틱 오염 문제 심화에 끼친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어스아일랜드인스티튜트 수모아 마줌다 법무 자문위원은 “이들 업체들은 너무 오랜 기간동안 플라스틱 오염과 환경보호 비용을 사회에 떠넘기고 있다”며 “어스아일랜드인스티튜트 같은 비영리기관이 자선기금을 이용해 그들이 어질러 놓은 것들을 치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플라스틱 포장이 재활용된다는 주장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스아일랜드인스티튜트에 따르면 1950년 이후 생산된 플라스틱 83억톤 가운데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9%의 재활용된 플라스틱도 실질적으로 재활용 가능한 횟수는 한 번에 그치기에 결국 소각되거나 플라스틱 쓰레기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주장에 펩시 등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수집을 개선하고, 입법자들과 함께 정책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반론을 표했다. 

 

소비자에게 책임전가하는 기업도 '그린워싱'

환경법 NGO 클라이언트어스(ClientEarth)는 석유화학 기업인 이네오스가 벨기에에 플라스틱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클라이언트어스의 로사 프리차드 변호사는 “빅오일 기업의 사업영역 중 하나인 플라스틱 생산은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점점 더 주목을 받고 있다”며 “플라스틱 규제 협약은 파리협정이 정부와 기업에 책임을 지도록 강제한 것만큼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클라이언트어스는 업계의 그린워싱에도 강력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최대 식품 기업 중 하나인 '아홀드 델하이즈'를 네덜란드 금융당국에 고발했다.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주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플라스틱과 관련된 위험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아홀드 델하이즈는 “매년 플라스틱 사용 감소와 관련하여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있고, 포장 개선과 일회용 플라스틱의 단계적 사용 및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과 같이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클라이언트어스는 “화석연료 산업이 잘못된 기후위기 캠페인을 벌이는 이면에는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며 “이들은 플라스틱이 환경에 축적되면서 유해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국제환경법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Environmental Law) 캐롤 머펫 센터장은 “플라스틱에 대한 소송은 소규모지만 소 제기는 빨라지고 있다”며 “소송의 증가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플라스틱 조약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정치적, 대중적 논쟁의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며 “플라스틱 생산, 사용 및 폐기에 제한이 없는 시대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곧 그 현실을 해결해야 하며, 움직이지 않으면 새로운 소송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