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채권 기준, 그린워싱 막으려 의무화될까?

2022-03-22     홍명표 editor
최근 홍콩공항은 활주로를 확장하기 위해 녹색채권을 발행해서 논란이 일어났다/홈페이지

녹색채권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그린워싱 문제 또한 크게 대두되면서, 유럽에서 녹색채권의 기준이 지금처럼 자발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의무화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파이낼셜타임즈(FT)가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기후 투자를 촉진하는 비영리단체인 기후채권이니셔티브(CBI, Climate Bonds Initiative) 에 의하면, 2021년 녹색채권의 발행액은 5174억 달러(약 632조원)로 2020년도의 2970억 달러(약 363조원)보다 74% 증가했다고 한다. 이 단체는 녹색채권의 발행이 올해는 처음으로 1조 달러(약 1222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세계 경제가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려면 2025년에는 녹색채권의 발행액이 5조달러(약 61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3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년 3500억 유로(약 470조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할 전망이며, 기타 환경목표를 위해서는 1300억 유로(약 174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독일이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로 결정하기 이전에 예측한 결과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도 전 세계 각국이 2050년 넷제로 약속을 실현하려면 9조2000억 달러(약 1경1243조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홍콩 공항 세번째 활주로 건설, 녹색채권 맞나?

하지만 이러한 녹색채권의 급속한 확장은 기업들이 투자자들로부터 손쉽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과장하거나 거짓으로 환경 관련 주장을 하는 그린워싱을 부추길 수 있다. 

한 예로 최근 홍콩에서는 공항에 세 번째 활주로를 건설하기 위해서 10억 달러(1조2200억원)를 녹색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전 세계 공항에서 비행기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인터넷 사이트인 에어포트 트래커(airport tracker)에 의하면, 공항은 매년 3개의 석탄 발전소를 합친 것만큼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홍콩 공항의 경우처럼 활주로를 확장하는 것은 기존의 공항 옆에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는 것과 같다고 이 사이트는 주장한다. 

홍콩 공항의 문제는 기후뿐만 아니라 홍콩 해양의 중국 흰돌고래들도 위협하고 있다. 이 돌고래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과 식물군(CIITS)의 국제무역에 관한 협약에서 최고 보호수준으로 등재되어 있다. 홍콩 공항에 세 번째 활주로가 건설될 경우 소음과 대기 오염과 함께 이 돌고래들의 서식지가 파괴될 수 있다고 환경 전문가들은 대거 반발하고 나섰다.

레크리에이션 파이낸스(Recreation Finance)의 이사인 루시 핀슨(Lucie Pinson)은 레클레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파괴적인 프로젝트에 녹색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생물다양성과 기후위험이 있으므로 순전히 그린워싱이라고 할 수 있다”며, “금융기관은 항공교통의 성장을 지원하는 어떤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공개적으로 약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녹색채권 그린워싱 막기위한 의무적 기준 검토 EU 의회에 요청

녹색채권에 관한 그린워싱의 사례는 홍콩공항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게 FT의 설명이다. 

임팩스자산관리(Impax Asset Management)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토니 트리즈킨카(Tony Trzcinka)에 의하면 “녹색채권을 발행하는 사람들이 환경 친화적인 이니셔티브를 돕기 보다는 일반적인 활동에 자금을 대려고 애쓴다”며, “그런 부적절한 녹색채권을 제거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고 FT에 밝혔다.

녹색채권은 현재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기후채권이니셔티브(CBI) 등 무역기구가 개발한 다양한 기준과 가이드라인에 따라 발행할 수 있다.  

녹색채권의 그린워싱과 관련, 미국 코네티컷대 경영대학원의 스티브 박 교수는 2018년 발표한 논문에서 "녹색채권 시장에서 정부의 규제가 많이 사라지자 민간부분에서 관리를 했지만 그린워싱에 취약할 수 있다"고 밝히며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민관이 협력하는 규제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린워싱 때문에 각국 정부와 규제 당국은 민간의 자발적인 기준이 적절한 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이 이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FT에 따르면, 유럽의회의 녹색채권 조사관인 폴 탕(Paul Tang)은 그린워싱을 막기 위해 의무적인 기준을 검토하도록 유럽의회에 요청했다. 탕은 채권 발행자가 녹색채권의 판매대금이 유럽의 지속가능한 금융분류법에 따라 승인된 프로젝트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공시와 보고기준을 개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부터 녹색채권에 투자해온 임팩스자산관리의 트리즈킨카는 의무적인 기준에는 반대한다. 트리즈킨카는 “현재의 자발적인 기준도 잘 작동하고 있다”며, “우리는 녹색채권의 발행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시간을 많이 들인 다음에 혁신을 제한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법률회사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Herbert Smith Freehills)의 파트너인 에이미 게데스(Amy Geddes)도 "엄격한 제한은 회사들이 녹색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억제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녹색채권의 기준이 유럽에서 자발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의무화되어야 하는지가 유럽연합 의원들의 협상에서 핵심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게데스는 예상한다. 거데스는 "규제가 유연하면 유럽의 기준이 사실상의 국제표준이 될 수도 있다"면서 "엄격한 요건과 유연성이 적절히 균형을 맞출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