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1973'?...오일쇼크 사례로 보는 오늘 날의 에너지 대란
미국의 대표적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처럼, 1973년에 발생한 오일쇼크는 오늘날의 에너지 대란과 많은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굴욕적으로 패배한 아랍 국가들은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를 통해 이스라엘을 지원했던 미국과 다수의 유럽 국가에 석유수출제한조치를 취했고, 대대적인 원유 감산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오일 쇼크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현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감행하면서 서방세계와 극심한 대립을 겪고 있다. 천연가스 생산의 40%를 차지하는 러시아는 이를 무기로 가스 수출을 제한하면서 에너지 대란을 초래하고 있다.
오일 쇼크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서방세계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고, 에너지와 운송섹터는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과거의 흐름은 오늘 날의 에너지 대란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석유 의존도를 줄여라... 다양한 규제를 시행한 서방세계"
1970년대, 각국의 석유 의존도는 지금보다 훨씬 컸고, 이로 인한 오일 쇼크의 경제적 파장은 엄청났다. 때문에, 서방국가 정부들은 극단적인 정책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사태 극복을 꾀했다.
일례로, 프랑스는 밤10시 이후 상업시설의 전력을 강제로 차단하고, 밤 11시 이후 방송 송출을 금지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또한,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일요일 차량운행을 전면 금지했으며, 영국은 주3일 근무제를 실시하며 3일 연속 상업용 전기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 시절 제정된 에너지 절약 정책의 일부는 아직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 전역에서 제정된 '실내난방온도 제한법'은 겨울철 실내난방 최대온도를 20도로 제한했는데, 현재는 해당 기준이 완화되어 제한 온도가 22도로 설정되어 있다. IEA의 분석에 따르면, 온도 제한을 19도로 강화할 경우, 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약 20% 가량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3 오일쇼크로 인한 美 자동차업계의 몰락과 원자력에너지의 부상
오일 쇼크로 인한 일부 정책 변화는 산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연료소비 감축을 위해 다양한 규제를 도입했는데, 그 중 하나가 기업평균 연비규제(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CAFE Standard)다. 이는 신규 생산되는 차량에 연비 규제를 적용해, 평균 연료효율이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대량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도입은 미국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바꿨다.
과거 포드, GM, 크라이슬러 등 미국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트럭, SUV 등의 대형 차량 생산에 주력했는데, 이 차량들은 연료 소모가 많고 연비도 좋지 않았다. 반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중소형 승용차 중심의 제품군을 보유 했고, 연비 규제에 발맞춰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미국 소비자들 또한 높아진 유가 부담에 중소형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급변했다. 이로 인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 업체의 판매량은 200% 이상 상승한 반면, 미국 업체의 판매량은 약 30% 가량 감소하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는 하락세를 걷게 됐다.
에너지 업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석유를 대체할 자원으로 원자력에너지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1960년대 13GW의 원자력에너지 도입을 계획했던 프랑스는 오일쇼크 이후 해당 계획을 대폭 확대해 80년까지 50GW의 원전을 추가적으로 건설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전력분야 원전 비중은 73년 8%에서, 90년대 75%까지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 또한 에너지 자립을 선포하며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감행했다. 오일 쇼크 이전, 미국은 22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했고, 전력 생산에서의 원자력 비중은 2.4%에 불과했다. 하지만 1973년에만 41기의 원전건설 계획을 세우는 등, 원자력 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렸다.
"오늘 날의 에너지 대란, 1973년과 비슷한 상황 재현될까"
오늘 날의 에너지 대란은 1973년의 오일 쇼크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2050 탄소중립 어젠다와 에너지 대란이 맞물리면서, 각국 정부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 특히, 탄소국경세, 디젤차 운행금지 등의 정책을 내놓으며 화석연료사용 감축을 꾀했던 유럽은 지난 8일, "REPowerEU" 에너지 자립 전략을 수립하며, 적극적인 정책 입안을 예고했다.
또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7일, 논평을 발간하며, 에너지 대란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정부 정책을 제언했다. 여기에는 에너지 효율 강화, 냉난방 최저ㆍ최고온도 제한 등 비교적 온건한 제도부터 에너지 배급제와 같은 극단적 정책까지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에너지 난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각국 정부가 오일 쇼크 시기처럼 극단적인 단기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도 있다.
IEA는 이번 에너지 대란이 전세계의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오일쇼크 이후 원자력 에너지가 급부상한 사례를 예로 들며, 친환경 에너지 분야 또한 비슷한 흐름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IEA는 "친환경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 2050년에는 재생에너지의 전력비중의 70%에 달하고 전기차가 대규모로 도입되어 화석연료가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각국 정부는 친환경 분야의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7일, 독일 정부는 향후 4년동안 2000억유로(268조원)을 투자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탈탄소화를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의 경우, 5500억달러(670조원) 규모의 친환경 인프라 투자안이 포함된 더나은재건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이를 반대했던 조 맨친(Joe Manchin) 상원의원이 청정 에너지 투자안에는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빠른 시일 내 관련 법안의 제정이 예상된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산업계는 서로 다른 대응 방식을 보이고 있다.
해운업계를 예로 들면, 세계 1위 업체 머스크가 "2040년까지 화석연료 및 LNG를 친환경 연료로 완전 대체하겠다"고 선언한 반면, 미국 업체 매트슨은 "기후변화 이슈가 자사의 사업에서 중대하지 않다"고 일축하며 기존의 화석연료 사용을 고수하고 있다.
화석연료 업계에서는 BP가 화석연료 좌초자산을 매각하고 그린수소, 탄소포집 등의 친환경 기술에 대거 투자하고 있는 반면, 힐코프는 화석연료 자산을 저가에 매집하며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의 에너지 대란이 1973 오일쇼크와 마찬가지로 산업계에 급진적 변화를 불러 올지, 친환경 전환이라는 어젠다와 맞물려 '탄소중립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