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영국의 '녹색 보조금'에 법정 심판까지 간다
EU가 24일 세계무역기구(WTO)에 영국을 상대로 분쟁을 제기했다. 영국이 추진하는 해상풍력 사업에서 자국 기업에 유리하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제소는 2020년 12월 브렉시트가 확정된 후 EU와 이전 회원국 간 일어난 첫 번째 분쟁이다.
EU 집행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영국의 해상풍력사업 보조급 지급절차는 영국 제품과 공급업체에 유리하도록 구성돼 상대적으로 외국 경쟁업체에게 불공정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수입품이 국내 제품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WTO의 핵심 원칙을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WTO의 규칙상 수입품과 국내 생산 제품은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또 “차등 대우는 효율성의 저하와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더욱 어렵게 하고 더욱 비싸게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차액 계약 방식을 적용해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입찰자에게 계약가액의 몇 퍼센트를 영국에서 생산할 것인지 개략적으로 설명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재정적 지원 범위는 영국 내 생산에 대한 약속을 얼마나 준수하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EU 집행위원회는 “공급자들이 영국 내 생산을 하도록 만들어 수입품에 불공정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며 이 지점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EU는 영국에 우려를 제기했지만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EU의 주장에 대해 “엄격하게(rigorously)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국이 에너지 안보와 자국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EU가 이런 조치를 취해 실망스럽다”면서 “영국은 WTO 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EU의 도전에 강력히 항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EU가 만든 항소 메커니즘인 다자간 임시 항소 협정 회원국 대상이 아니다. EU가 곧바로 WTO에 제소한 이유다. EU와 영국은 60일 간의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기간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EU는 WTO에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WTO에 분쟁을 제소하면 통상 수년 후 결과가 나온다.
영국 국민 "재생에너지 정부 투자금, EU나 중국에게 혜택 돌아가"
EU 집행위원회 "EU의 경쟁력 떨어뜨리는 처사"
이번 WTO 분쟁 대상이 된 것은 영국의 해상풍력 확대 이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020년 해상풍력을 포함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50년 탄소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10GW 수준인 해상풍력을 2030년까지 40GW로 증설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약 200억파운드(약 300억달러) 투자도 약속했다.
GWEC(Global Wind Energy Council)에 따르면 2021년 영국의 해상풍력 설비는 28.9%로 중국(28.3%)을 제치고 전 세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2021년 풍력에너지는 영국 전력의 21.4%를 생산하기도 했다.
존슨 총리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해상풍력 분야에서 6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영국 내에서는 불만이 많다. 지출의 29%만이 영국의 공급자들에게 돌아가면서 실질적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도 미미하며, 제조업도 살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내에서는 “정부 투자금으로 EU와 중국을 포함한 외국 기업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에 존슨 총리는 “해상풍력 설비 공급자들이 영국에 일자리를 창출해 투자금의 60%를 영국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답했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한 영국 관리는 EU 연합국 또한 유사한 방법을 사용했는데도 이번 사안을 WTO에 제소까지 한 것을 두고 “당혹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서방이 단결해 푸틴을 물려쳐야 할 시기에 EU의 이런 질투는 잘못된 판단이며 시기적절하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영국과 EU는 법정에서 싸우는게 아닌 유럽의 재생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EU 집행위원회는 “재생에너지 기술과 그로 인한 효과는 EU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풍력 에너지 부문만 해도 연간 매출액이 360억유로(약 49조원)에 달하며, 50만개의 질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의 차별적인 무역관행은 EU에게서 투자를 멀어지게 하며, 풍력에너지에서 EU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쳐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