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음지는 없다' 사모펀드에도 부는 ESG 정보 공개 바람

2022-03-31     박지영 editor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칼라일과 거대 연기금이 협력해 기업의 환경 및 사회문제 공개 기준을 수립하기로 했다. 사모펀드는 오염된 자산이 숨을 수 있는 일명 ‘지하세계’로 불려왔다. 이번 협업으로 그동안 시장에 공개되지 않았던 데이터들이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칼라일은 사모펀드 업계 최초로 ESG 성과를 측정하고, 보고하는 표준을 마련하기 위한 ‘ESG 데이터 통합(convergence)’ 작업을 추진한다. 이 보고 가이드에는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이사회 다양성, 산업재해, 신규 고용, 직원 참여 6개 영역이 들어갈 전망이다.

칼라일의 이규송 최고경영자(CEO)는 “사모펀드 시장의 참가자들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며 “공통 기준과 공통 메트릭스는 진척상황을 실제로 추적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기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에선 데이터가 핵심이다. 표준화된 종방향 ESG 데이터를 가공해 동종 기업의 상황과 기업의 건전성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ESG 보고 부담을 줄이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들어 그린워싱까지 방지하겠다는 목적이다.

멕 스타 칼라일 글로벌 임팩트 책임자는 “이해관계자나 업계마다 사용하는 ESG 프레임워크가 다르고, 여러 개가 결합된 길고 복잡한 보고서가 날아왔다”며 “또 투자자와 포트폴리오 기업 모두 이전에는 상장기업만을 대상으로 작성된 업계 평균에 혼란스러워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작업으로 더 의미있고, 보다 정량적인 ESG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SG 데이터 통합 프로젝트의 6가지 기준/칼라일

칼라일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프레임워크나 표준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점수나 순위를 매기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존 ESG 지표에 수렴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가공하고, ESG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드는데 투자자들의 자료를 이용하는 ‘정량적 작업’으로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칼라일에 따르면 정보를 제공하기로 한 사모펀드 기업과 연기금 참가자 수는 140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자산 총합은 8조7000억달러(약 105경3713조5500억원), 투자한 기업은 1400개 이상이다. 

네덜란드 연기금 PGGM, 캐나다 연기금 CPP,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기금인 캘퍼스도 참여한다. 이 세 곳만 해도 사모펀드 기업에 강력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 캘퍼스는 “우리가 받아드는 ESG 공개 보고서엔 모두가 행복해 보이기만 한다”며 “새로운 ESG 정보 공개 표준은 기업의 상태를 엄격하게 가늠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정보 공개 표준의 바탕이 될 데이터 수집은 4월 30일부터 시작된다. 멕 스타 칼라일 글로벌 임팩트 책임자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투자자를 위한 벤치마크를 만드는데 자료가 사용될 것이며, 정보는 익명 처리된다”고 밝혔다. 또 “데이터는 빠르면 2년 안에 추세를 드러낼 것이며, 5년이 지나면 의미있는 결과를 보여주기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칼라일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더욱 자세한 정보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사모펀드 기업도 ESG 정보에 목말라하면서 관련 시장도 생겨나고 있다. 포드 재단은 지난해 10월 사모펀드 기업의 ESG 데이터 서비스인 노바타(Novata)를 출시하기도 했다. 사모펀드 시장이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ESG 정보의 공백 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탄소 배출량, 자원 관리, 직원 다양성, 작업장 안전 등의 요인에 대한 기업의 성과를 수집하고, 보고하고, 벤치마킹하기 위한 중앙 데이터베이스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알렉스 프리드먼 노바타 CEO는 “노바타는 ESG 데이터를 저장, 공유, 분석하는 '허브(hub)'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사모펀드 업계엔 단일 표준이나 업계 전반의 벤치마크를 개발하지 않아 기업이 ESG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비교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포드 재단은 “지속가능성 회계 표준위원회(SASB)에 보조금을 출연하며 지속가능성 정보 공개를 위한 추진을 지원하기도 했다”며 “이를 거치며 공공 시장에서도 표준화된 ESG 측정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확인한 후, 민간 영역에서도 ESG 정보의 투명성을 개선하는데 진지한 추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출시 배경을 밝혔다.

 

사모펀드라는 '음지'로 숨은 화석연료 기업들

블랙록 래리 핑크 CEO "오히려 시장 비효율성 초래한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지난해 11월 COP26에서 민간의 ESG 정보 공백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핑크 CEO는 “사모펀드 시장에서 기업은 최소한의 정보 공개만 하고 있다”면서 “이는 오염자산이 숨을 수 있는 일종의 지하세계를 제공해주는 셈”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공공의 영역에서 친환경적인 전력으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몇몇 석유기업은 사업의 일부를 사모펀드로 옮기기도 했다. 핑크 CEO는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탄소가 사모펀드에 팔린 걸 지켜봤다”며 “공개된 시장에서 정보 공개가 불투명한 시장으로 옮겨가면서, 실제로는 세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개 시장에서 탄소집약적인 기업을 배제만 한다면, 오히려 사모펀드 시장으로 숨어들어 시장에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차익거래만 남길 공산이 크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자본을 녹색산업으로 옮겨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탄소집약적 사업을 무작정 반대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넷제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상장기업에게만 탄소제로의 임무를 맡길 수 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