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회사법 개정해 "이해관계자 고려" 요구 대대적 캠페인
영국에서 자본주의와 기업의 목적을 개혁하자는 대대적인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기업에서부터 대기업 등 1000개 이상의 기업들이 ‘더 나은 회사법(BBA, Better Business Act)’ 연합을 구성해 영국 회사법 제172조를 이해관계자와 사회ㆍ환경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 캠페인을 후원하는 기업들은 슈퍼마켓 브랜드 아이슬란드, 음료 제조사 인노첸트, 식품 제조사 퀀 등이 있다.
BBA 연합은 보리스 존슨 정부가 오는 5월에 열릴 영국 여왕 연설에서 회사법 개정안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고, 다음 국회 회기 동안 입법 의제를 제시할 것을 제안했다.
회사법 제172조는 기업 이사들이 주주들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고려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BBA 연합은 회사법 개정을 통해 회사의 목적을 주주를 포함해 사회와 환경 이익까지 폭넓게 포함하고 이해관계자들을 주주와 동등한 지위로 고려할 것을 요구했다.
BBA 연합은 "이 캠페인은 미래의 시대정신을 혁신해나갈 것"이라며 "주주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우선권을 계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FT 등 외신들은 “BBA 운동은 일부 기업 뿐 아니라 정치인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며 “회사법이 개정된다면 영국이 전 세계 녹색 산업혁명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회사법 개정안 초안 작업에 참여한 영국 법적행동단체 '베이츠 웰스(Bates Wells)'의 루크 플레처(Luke Fletcher) 변호사는 "우리는 기업의 새로운 법적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회사 목적과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것을 추구한다"며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제한적인 개정일 수 있지만 광범위한 영향력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르완다, 미국 등의 일부 기업에서는 자발적으로 더 넓은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헌장을 채택한 선례가 있다. BBA 연합은 이와 달리 모든 영국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회사 목적의 범위를 넓힐 것을 제안했다.
이 캠페인은 최근 영국 해운회사가 직원 800명을 해고한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발이 일어나면서 더욱 큰 지지를 얻었다. 해운회사 P&O페리스는 지난 3월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을 통해 직원 800명을 집단해고했다. 기업은 코로나 이후 인건비 등 명목으로 영국 정부로부터 긴급지원금 1500만 파운드(약 239억원)을 받았으며, 이는 직원 급여의 최대 80%를 보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회장은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캠페인은 2만 명 이상의 기업 이사들이 가입한 영국 이사협회(UK’s Institute of Directors)의 지지를 받았다. 비영리단체 B랩이 공개한 대중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분의 3이 "기업들이 사회 및 환경에 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캠페인을 지지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주주들의 관심과 집중이 낮아지면 기업의 투자 수익률을 낮출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FT 전 편집자 서르 제프리 오웬은 칼럼에서 "주주들에게 엄격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은 자본의 효율적 분배를 보장하는 것뿐"이라며 "캠페인의 법적 변화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BBA의 캠페인 책임자인 크리스 터너(Chris Turner)는 "우리를 지지하는 FTSE 100 기업의 지도자들은 BBA 연합과 원칙을 개인적으로는 지지하지만, 주주 압력으로 인해 공개적으로는 지지 표명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FTSE 1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은 이 캠페인에 가입하지 않았다.
보리스 존슨의 전 보좌관이자 영국 토리당 의원인 대니 크루거는 "여당 내에서도 이 캠페인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는 자본주의의 근본 목적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재정의'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