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 ESG, 이대로 몰락하나
ESG는 사라질 것인가.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반ESG 정치 전쟁’이 ESG를 공격하고 있다. 지난주인 10일(현지시각)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는 ‘반ESG법령’이 발효됐다. 올해 1월에 처음 도입된 ‘상원 법안 262(Senate Bill 262)’는 사업목적 상의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에너지 회사와의 거래를 거부하거나 사업관계를 끊는 것으로 확인된 금융기관에 대해 주 재무부서에서 ‘제한 금융기관리스트(Restricted Financial Institution List)’를 작성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모든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회사가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일단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웨스트버지니아주 재무담당관은 해당 금융기관을 주정부 은행의 계약 선정절차에서 제외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또 금융기관이 주정부 은행과 계약을 할 수 있으려면, 더이상 에너지회사 ‘보이코트’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해야 한다.
이 법안의 주요 지지자인 웨스트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인 루피 필립스(Rupie Phillips)는 이 법안에 대해 “‘오크 자본가(woke capitalist)’에 맞서서, 투자 결정이 비즈니스 의사결정의 정직한 분석에 의해 결정되는 진정한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다. 아이다호에서는 주 정부자금에 의한 ESG 투자를 제한하는 법률이 오는 7월 1일 발효될 예정이다. 애리조나주에서는 블랙록,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등 500개 이상 기관투자자들이 가입한 기후행동투자자그룹인 클라이밋 액션 100+(Climate Action 100+)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다.
또 하나는 ‘그린워싱’이다. 동시다발적인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 미 SEC(증권거래위원회)가 그린워싱을 이유로 BNY멜론에 대해 15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데 이어, 이번에는 골드만삭스를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골드만삭스는 2020년 6월 블루칩펀드를 US에퀴티ESG펀드(US Equity ESG Fund)로 리브랜딩한 바 있는데, 이처럼 특정 골드만삭스의 펀드를 면밀히 조사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도 DWS가 그린워싱 이슈로 검찰 압수수색까지 받으며, CEO가 퇴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세 번째는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방산업체, 에너지업체(석유, 가스회사)들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무기제조’ 혹은 ‘화석연료’라는 이유로 ESG투자에서 외면받던 업체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나왔다. 러시아의 공격을 막고 주권국가의 무장을 위해 방산업체에 투자하는 것은 ‘윤리적인 투자’인가 아닌가.
FT에 따르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딜레마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두 곳의 성명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뱅가드는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신규 투자중단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고, 블랙록 또한 “신규 화석연료 생산 금지를 추구하는 기후로비스트들이 제기한 주주결의안에 대부분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탈화석연료로 향하던 기차의 방향에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단기적인 고통일뿐,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독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탈화석연료의 방향과 속도를 바라보는 다양한 그룹이 ESG투자자들 사이에 포진하고 있음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ESG투자의 실적이 저조하면서 자금도 빠져나간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통 에너지주가 포진해있는 ‘MSCI USA 에너지 지수’는 올 들어 53% 폭등했으나, ‘MSCI USA ESG 지수’는 20% 하락세다. ESG 세계 투자금규모는 작년말 기준 2조7443억달러(3513조원)으로, 1년만에 66%, 팬데믹 이전 대비 228% 늘었으나, 지난달 미국 내 ESG투자펀드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5억달러가 빠져나갔다고 한다. 모닝스타 집계에 따르면, 신흥국 ESG ETF에서는 11억4000만달러, 미국 ESG ETF에서는 4억9000만달러가 각각 빠져나갔다. 엑손모빌 주주까지 갈아치웠던 지난해의 호기롭던 주주행동주의도 올해는 그 효과가 크지 않다.
ESG의 몰락은 '비정상의 정상화?'
그럼 이제 ESG는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ESG 또한 CSR이나 CSV(마이클포터 교수가 주창한 공유가치창출)처럼 유행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걸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ESG투자의 이와 같은 ‘반작용’은 어쩌면 ‘비정상의 정상화’일 수도 있다.
FT에 나온 이 그래프를 보면, ESG투자가 얼마나 급격하게 등장했는지 알 수 있다. ‘지속가능성’ 혹은 ‘지속가능경영’, ‘CSR’(사회공헌이 아닌, 포괄적인 기업의 사회적책임) 등의 용어가 이미 10여년 넘게 시장에 존재했지만, 그 어떤 기업이나 투자자들도 크게 신경을 써오지 않았다.
그러다 ESG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ESG’ 라벨은 어떻게 적용해도 좋을만큼 폭넓어서 유용하지 않았을까. 네거티브 스크리닝(담배나 국방 등의 죄악주 투자 배제), 포지티브 스크리닝(청정에너지 등 ESG위주 투자)부터 ESG통합(ESG평가점수를 각 포트폴리오에 통합)까지 거의 모든 전략에 ESG라벨을 붙이면 통하던 시기를 2~3년 가량 보냈다. 오죽하면 ESG시장을 미 서부 금광을 캐러 달려가던 ‘와일드웨스트(Wild West)’로 비유했을까.
DWS를 내부고발했던 데지레 픽슬러 전 지속가능투자책임자는 “나는 여전히 지속가능한 투자를 믿고 있지만, 관료와 마케터들이 ESG를 인수하면서 ESG는 무의미한 상태로 사라졌다”고 말한다.
최근 읽은 보고서 중 가장 흥미로웠던 보고서가 유명 기후싱크탱크기관인 2도투자이니셔티브(2DII)가 금융부문의 ESG전문가 및 학계, 공공섹터, NGO 등 169명을 대상으로 한 ESG평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였다. 이 설문결과는 ESG평가등급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얼마나 다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게 ESG평가(ratings)가 ‘지속가능성 리스크(sustainability risks)’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지속가능성 발자국(sustainability footprint 혹은 performance)’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학계와 NGO는 ESG평가등급을 지속가능성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봤지만, 금융부분에서는 ESG평가등급이 지속가능성 리스크를 보여줘야 한다고 봤다.
어떤 이들은 ESG 평가에서 테슬라 같은 기후 혹은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되는 기업들에게 최고점을 줘야 한다고 보고, 어떤 이들은 제 아무리 테슬라같은 친환경기업이라도 그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리스크가 크면 ESG 평가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ESG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보편적이고 통일된 프레임워크가 없으면, 제2의, 제3의 테슬라 사태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ESG라는 용어는 사라져도 별 상관 없다. 사실 ESG의 몰락도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몇 년 후면 기업의 ESG 데이터가 다 공시되고, ESG에 관한 리스크가 실물경제에 하나씩 반영될테고, 기업의 ESG지표는 재무지표 못지 않은 막강한 팩터(factor)로 작용할테니까.
오히려 이제부터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해봐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1.5도 상승한 지구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준비는 되었는가? 기업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해오고 있는가? 투자자들은 진짜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것인가? ESG펀드는 마케팅 전략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금융상품인가? 기업의 넷제로 혹은 지속가능전략은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