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헌장조약(ECT) 개혁 잠정 합의… 탄소중립 소송 봇물 막게 될까
소송 발목 여전 vs 일보 전진 기대, 유럽 일부 국가선 ECT 탈퇴 목소리도
유럽연합의 에너지헌장조약(Energy Charter Treaty, ECT) 갱신을 위한 수년간의 논의가 일단락됐다고 24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화석 연료에 관한 이해관계를 에너지헌장조약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잠정 합의에 이르렀다.
1994년 국제 에너지산업의 협력을 위해 체결된 에너지헌장조약이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EU의 2050 탄소중립 정책과 '화석연료 산업의 손해배상' 이슈와 관련이 깊다.
애초에 EU 27개국을 포함해, 약 50개국이 참여한 이 조약은 구소련 국가들이 에너지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서유럽의 자본과 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에너지 관련 자원의 생산, 분배, 수출 등의 자유무역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투자자들은 투자에 위협이 되는 정책을 펼칠 경우 정부를 고소할 수 있도록 했다. 구소련 국가, 중유럽 및 동유럽 국가, 유럽연합(EU)과 이외 선진공업국이 조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ECT는 화석연료 기업의 투자에 보호막으로서 기능하면서 EU의 탄소중립 정책과 줄곧 마찰을 겪었다. 그 예로 독일 에너지 공급업체 RWE는 지난해 조약에 따라 2030년까지 석탄 연료 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엠스하펜 발전소의 운영을 조기에 중단하도록 한 네덜란드 계획에 대해 보상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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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도 "ECT의 투자자-국가 중재제도가 화석연료 에너지기업에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대한 제소를 허용한 점이 EU의 기후정책에 반한다"며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스페인 또한 에너지정책 개혁 후 ECT 중재제도에 근거, 약 10여건의 소송에 휘말린 바 있다. 그외 독일, 헝가리, 폴란드, 체코 및 라트비아 등도 유사한 소송이 진행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EU 집행위는 협상을 통해 ECT 조약내용을 개정하도록 추진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조약을 탈퇴할 가능성도 열어둔다는 입장이었다. ECT의 일몰조항으로 인해, 설사 조약을 탈퇴한다고 해도 향후 20년간 중재소송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조약 개정이 최우선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었다.
기후 재앙 막을 향후 10년, 개정안은 탄소중립 동력될까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합의안에 따르면, ▲ECT 대상 에너지원의 종류를 수소, 무수암모니아, 바이오매스, 바이오가스, 합성연료 등으로 확대하고 ▲유연성 메커니즘에 따라 자국에서 생산된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 보호를 배제 가능토록 하고 ▲개정안 발효 이후 5년 간격으로 대상 에너지원 목록을 검토하도록 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부터는 이전에 포함하지 않았던 에너지원도 포함하게 된다. 에너지원과 함께 울, 암면(rock-wool), 미네랄 울, 단열유리 등 에너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품에 대한 거래까지 포함한다.
유연성 메커니즘은 화석연료 투자에 대한 보호를 해제하는 여부를 생산국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유연성 메커니즘에 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뒤따르고 있다. 기존에 진행해오던 투자에 대해서는 10년의 유예기간을 설정한 탓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의 투자는 개정안 발효 10년 이후에, 2023년 8월 15일 이후의 신규 투자는 9개월 이후부터 보호를 해제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어진 소송전이 향후 10년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분쟁 해결의 투명성 제고 방안으로 중재위원회를 설치하고 근거 없는 주장에 대해서는 신속히 기각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환경단체 클라이언트어스(ClientEarth)는 이번 개정안의 내용이 파리협약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클라이언트어스의 아만딘 반 덴 베르헤 변호사는 “인류가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한 행동의 핵심 창구가 될 10년 동안 EU 국가들은 진보적인 기후정책을 시행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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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합의로 변화를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EU 에너지담당 카드리 심슨 집행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협상이 “길고 어려웠다”면서도 “개정된 ECT는 #EU기후 야망에 부합하고 #청정에너지 기술에 대한 신규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CT 회원국들은 공식적으로 협상을 시작한 지 2년여 만에 EU가 “잠정적 합의”라고 밝히면서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개정안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맞물린 상황 속에서 스페인, 프랑스와 룩셈부르크는 EU 국가들이 조약에서 탈퇴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주 폴리티코는 스페인 에너지환경부 테레사 리베라 장관이 EU의 “합동 탈퇴”를 요구한 것을 보도했다.
EU는 11월 회의까지 반대가 없다면 이번 잠정 합의가 공식적으로 채택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이 채택된다면 유럽이사회의 동의와 유럽의회의 승인 절차를 남겨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