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원회, 해외 기업 인수와 공개입찰 참여 막는 법안에 합의
유럽연합(EU)이 정부 지원을 받는 외국기업의 공개 입찰 참여와 유럽기업 인수를 제한하기로 30일(현지시간) 합의했다.
유럽위원회는 2023년 중순부터 이 규정을 적용할 예정이며, 외국 정부로부터 5000만 유로(약 675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외국 기업이 주요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이들 기업은 연 매출액 5억(약 6752억원) 유로 이상의 유럽 기업을 인수할 수 없으며, 공개 입찰 가격이 2억5000만유로(약 3392억원) 이상에 해당하는 공공조달 참여에도 제한을 받을 전망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 인수 혹은 입찰 참여 시, 의무적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 외국 기업은 사업의 일부를 강제로 매각하거나 매출액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유럽위원회는 이번 계기로 보조금 조사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이번 규정이 발효되는 시점 이전으로 최대 5년 간 지급된 보조금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번 규정의 한도 금액을 초과하지 않거나 거래 규모가 작아도 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비(非)유럽 기업들 중 유럽 시장의 공정성이나 투명성을 해치는지 등 외국 기업의 적폐 여부를 자체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유럽 시장의 공정성 확보 목적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은 법안을 규정한 배경에 대해 "이번 조치는 EU 시장의 개방성과 공정성을 모두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유럽 국가들이 보호무역주의를 취하기 시작했으며, 중국 등 외국 기업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고 EU 사업이나 기업을 인수하는 건수가 증가했다. 유럽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세에 이른 것도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EU 성명서는 "이번 법안은 외국 기업의 EU 시장 진출을 제한하기 보다는 시장의 공정성 및 공평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반독점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 외국 기업들이 EU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시장의 공정성에 어긋나게 되면 유럽 기업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안을 주도한 크리스토프 한센 의원은 "EU기업은 새로운 규정에 엄격한 규제를 받는 반면 외국 기업은 상대적으로 규제 강도가 느슨하다"며 "EU 시장에서 공정경쟁을 재정립함으로써 EU 및 외국 기업간 규제 격차를 해소할 뿐 아니라 글로벌 무역과 개방경제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U, "유럽 시장 보호와 거래 활성화 독려하겠다" 최종 합의
이 법안은 지난 4월 찬성 627표, 반대 8표, 기권 11표로 처음 통과됐으며, 지난달 말 EU 국가와 의원들은 6시간 협상 끝에 최종 합의를 이뤘다. 협상 과정에서 '유럽 시장을 보호하자'는 EU 회원국과 '유럽 시장의 거래를 활성화'하자는 EU 의원들 간의 의견 격차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U 국가들은 당초 인수 및 공개입찰 참여에 대한 거래량 한도를 높이자고 주장했다. 반면 EU 의원들은 한도를 설정하되 유럽 시장 내 거래를 장려하기 위해 한도 수치를 낮게 설정하고자 한 것이다. 유럽위원회는 이 외에도 외국 자본 투입, 대출, 재정 인센티브, 비과세, 채무 탕감 등 유럽 기업들을 지원하겠다는 논의도 했다.
한편 일부 외신들에 따르면, 유럽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은 중국 기업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과거 독일 정부는 중국 기업이 제조, 그리드 전력망 등 독일 업체를 인수하려고 했으나 국가 안보를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2020년 12월 중국 국영 미사일 제조업체인 중국항공우주산업그룹(CASIC)의 자회사가 독일 위성·레이더 기술업체 'IMST' 인수를 시도했으나 독일 정부는 국가안보와 경제전략을 이유로 기업 인수를 막았다.
IMST는 위성통신, 레이더, 라디오 기술을 보유하고 네트워크 인프라를 개발하는 독일 기술개발 업체로, 독일 연방군에 IMST의 제품과 서비스를 납품하고 있다.
당시 독일 경제부 대변인은 "IMST는 독일의 국가 보안 차원에서 중요한 기업"이라며 "중국 기업에 인수된다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어 투자와 인수합병을 거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