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의 EPA 권한 박탈과 다음 타깃 지명된 SEC 

2022-07-01     송준호 editor

미국 연방 대법원이 지난 30일(현지시각) 미 환경보호청(EPA)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 권한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보수 성향의 대법관 6명이 찬성하고,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이 반대하여 결정됐다. 

EPA는 대기오염방지법에 따라 석탄 및 가스 화력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대법원은 광범위한 중요성과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의회의 명시적인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중요문제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판결의 근거로 제시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다른 정부 기관의 기후 관련 권한을 축소할 것이며, 다음 타깃은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PA 권한은 의회 승인 받은 적 없다…6대3으로 박탈 결정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EPA의 권한을 제한하는 판결을 주도했고, 5명의 보수성향의 대법관이 이에 동조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EPA는 미국인들의 에너지 수급 방법을 결정하는 국가 정책 고려사항의  균형을 맞추는 일을 의회가 암묵적으로 맡겼다고 생각하지만, 의회가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할 근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장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해서, 전국적으로 전기 생산을 위한 석탄 사용을 중단하는 일은 당면한 위기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일 수는 있으나, 의회가 EPA에 이와 같은 규제 계획을 스스로 채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와 같은 중대하고 중요한 결정은 의회나 의회가 권한을 명확히 위임한 기관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EPA 권한에 대한 법정공방은 미국 연방주의에 대한 권한 약화 혹은 행정국가와의 전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픽사베이

반대의견을 제시한 일레이나 케이건 대법관은 “오늘, 대법원은 의회가  EPA에 이 시대의 가장 긴급한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부여한 권한을 박탈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후 정책의 의사결정자를 의회나 전문기관이 아닌 대법원이 임명하고 있으며, 이보다 더 두려운 일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라고 우려했다. 대법관은 “찬성측 의견이 판례를 따른 결과라고 했지만, 대법원은 ‘중요문제원칙’이라는 용어를 이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고 짚었다. 

 

EPA 권한 박탈을 의미하진 않아…퇴행적 판결이라는 의견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법원의 판결이 EPA가 발전소의 온실가스배출을 제한하기에 더 어려워졌을 뿐, 권한을 모두 박탈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마이클 제라드 콜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산하 사빈 기후변화법률센터장은 “이는 아주 제한적인 판결”이라며 “이 판결은 EPA가 자동차(온실가스 최대 배출원), 공장, 석유 및 가스 생산에 대한 배출량 제한 권한을 제한하지 않으며, EPA는 석탄 화력발전소의 오염을 통제할 수 있는 다른 도구들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기관 클린 에어 태스크포스의 제이 더피 변호사는 EPA가 여전히 배출량 감축에 상당한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더 비싸고,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피 변호사는 “EPA는 탄소 스크러버와 같은 오염물질 통제 기술에 기반한 엄격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이 있으며, 이 기술들은 배출량을 니어제로로 줄일 수 있으며 산업에 오염 정화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이 더피 클린 에어 태스크포스 변호사/클린 에어 태스크포스

다니엘 스웨인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소속 기후과학자는 “전기부문, 특히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는 기후변화 완화의 성과를 가장 쉽게 내는 방법”이라며 “만약, 우리가 가장 쉬운 감축 방법으로 짧은 기간 내에 빠르게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향후 수십 년 동안 낙관적인 기후 목표에 도달하기에 좋은 징조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각) 판결이 “미국을 후퇴시키려는 법원의 또 다른 파괴적인 결정”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공중보건 보호와 기후변화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권한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은 “퇴행적이고 극단주의적인 대법원은 총기 안전에서 시작하여, 낙태, 이제는 환경까지 미국을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 타깃은 SEC…기후위기=금융위기 공식 깨질까

미국 금융규제 강화를 요구해온 로비 단체, 베터 마켓츠의 데니스 켈러 CEO는 “연방대법원 판결의 근거는 모든 규제 기관에 적용되며, SEC를 포함한 다른 금융기관들의 많은 조처가 이른 시일 내에 미국 경제계의 타깃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SEC 기후 공시 의무화 법안에 대해서 “잠재적으로 초기 타깃이 될 것이 명백하다”라고 덧붙였다. 

SEC의 기후공시 의무화 법안이 위협 받으면서, 기후위기가 금융위기를 의미하는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픽사베이

켈러 최고 경영자가 내놓은 전망을 증명하는 듯한 움직임이 정재계에서 관찰되고 있다.

패트릭 투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30일(현지시각)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대법원의 판결이 다른 기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에 SEC 기후공시 규정을 꼽았다.

투미 의원은 “SEC가 의회가 승인한 아무런 권한도 없이, 이 모든 기후변화 공시체제를 시행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도 지난 6월 성명을 통해 SEC의 공시 규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힌 바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직 SEC 변호사들은 이 판결은 SEC의 기후공시 의무화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욱 대담하게 법정 공방을 시작할 수 있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로펌 모지스앤드싱어의 하워드 피셔 변호사는 “SEC는 이전에도 기관의 기후 부문에 대한 권한을 문제 삼는 사법적 회의론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기후위기가 곧 금융위기라는 SEC의 주장은 대법원에서 공감받지 못하는 듯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