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화석연료기업 '똑같이 규제할까', '기업 자율에 맡길까'
미국 백악관에서 러시아 수출에 대한 가격 상한제를 추진하면서 미국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석유 공급 요청을 위해 지난 15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에 방문했다. 한편 사우디 측에서 원유 증산을 거절하면서 이번 방문에 회의적이었던 분석이 현실이 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18개월 전 취임했을 때만 해도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가 집권하는 사우디에 방문하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유가를 진정시키려는 경쟁 속에 있는 시점이지만, 기후 약속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에너지 위기는 아무리 잘 짜인 계획이라도 뒤집는 방법이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휘발유 수요는 1996년 7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다. 휘발유 수요 감소 요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미국 내 석유·가스 생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존 화석연료의 투자자가 될 것인지, 화석연료 기업이 친환경 사업자로 변화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최근 세레스(Ceres), 킴메리지(Kimmeridge), 로듐(Rhodium)에서 각각 발표된 세 보고서는 현 상황의 문제의 범위를 짚고 업계의 자체적 행동이 가능한지 살펴본다.
화석연료 기업은 친환경 노선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을까?
석유, 가스 생산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기후 행동의 쉬운 목표다. 가스 누출을 막고, 플레어링(생산 시 발생하는 유증기를 즉시 태우는 것)과 환기의 방식을 바꾸고, 생산을 위한 전력을 친환경화하면 된다. 해결책은 분명하다. 쟁점은 산업 자체적으로 조치하도록 둘 것인지, 규제를 통해 의무화할지 여부다.
기후에 대한 투자자의 행동을 조정하는 비영리 단체인 세레스(Ceres)는 현재 메탄 배출이 감축 목표와 멀다고 밝혔다.
세레스의 발표에 따르면 300명 이상의 석유, 가스 생산자를 대상으로 한 심층 연구에서 배출 강도 상위 25% 기업의 메탈 배출이 하위 25%보다 평균 1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는 생산자별로 작업 수준 간에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바른 방향의 생산자도 있지만, 특히 소규모 개인 사업자는 아직 뒤처져 있다는 의미다.
세레스의 석유, 가스 전문가인 래티타 필슨(Laetitia Pirson)은 "작은 회사들의 탄소 배출이 대기업에 비교해 많은 것이 분명하다"며 "'서민의 비극'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외 없이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메탄 배출을 더 엄격하게 단속하도록 강제하는 새로운 규정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일각에선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관대하다는 비판도 있다.
화석연료 업계 주도 친환경 전환의 가능성?
미국의 환경 관련 법안 제정은 오랜 시간 지체되면서 투자자 주도의 탄소 배출 감축이 필요하다는 업계 책임론도 제시되고 있다.
에너지 분야 자산 운용사인 킴메리지(Kimmeridge)의 관리 파트너인 벤 델(Ben Dell)은 "수십 년 동안 화석연료 산업은 얼리어답터(early-adopter)로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는 변화에 이끌려 다녔다"고 말했다.
킴메리지가 발표한 보고서는 업계 자체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자본을 탄소 배출 감축에 재투자하는 모습을 보인 최근 업계의 양상은 기업이 원하면 스스로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미국의 석유회사인 코노코필립스(Conocophillips)의 2021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제시된 탄소 배출 감축에 관한 비용의 손익분기·추정치에 따르면 연간 약 60만 톤 이상의 탄소 감축을 기점으로 회사의 이익은 증가세를 보인다. 이는 화석연료 기업 자체적으로 탄소 배출 감축의 동기가 있다는 것이다.
킴메리지는 투자자금이 석유와 가스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큰 실수라고 주장한다. 친환경에 대한 투자 유치를 지속하고, 넷제로 전환에 앞장서는 기업에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델은 "ESG 관점에서 석유, 가스 회사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며 “ESG 커뮤니티에서 화석연료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화석연료 기업은 변화할 필요성이 없어지고 친환경 노선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눈 앞의 벽보다 넷제로를 위한 큰 그림이 필요한 시점
화석연료 기반 제품이 세계 경제의 필수품으로 남아 있는 한, 기후 변화는 화석연료 기업의 생산 방식을 친환경화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생산 단계에서 배기가스를 줄이는 것은 퍼즐의 작은 조각일 뿐이며, 더 넓은 조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로듐(Rhodium)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현 상태로 미국은 파리협약의 배출량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부족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2050년까지 경제 전반에 걸쳐 넷제로 달성을 위한 첫 단계로 2030년까지 2005년 배출량의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배출량을 바탕으로 볼 때 2030년의 배출량은 2005년의 24~35%, 2035년까지는 26~41% 감축할 것으로 보고서는 예상한다.
로듐의 보고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 관련 공약은 신기술에 대한 투자와 일부 규제 개혁 외에는 실패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