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 삼성물산, 유럽 연기금 압박받는 이유는?
블룸버그 이야기부터 해보자.
블룸버그가 지난 30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이다. 영국 최대 연기금 운용사 중 하나인 ‘리걸&제너럴’의 투자자회사, 노르웨이 최대 연기금 운용사 KLP, 핀란드의 대형은행인 노르디아 은행이 삼성물산에 베트남 석탄발전소 건설에 참여하지 말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이들이 문제 삼는 곳은 베트남에서 새로 지을 계획인 붕앙2호기(Vung Ang2) 발전소다. 총 사업비가 22억4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2조6000억원이 드는 투자프로젝트다. 한국전력이 지분 40%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전력이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결정을 내리면, 삼성물산은 설계, 구매, 시공을 일괄 수행하는 사업자로 참여하게 되는 구조다.
이들은 붕앙2가 지어지면 연간 660만톤, 30년 동안 2억톤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향후 5년간 ‘그린뉴딜’로 감축하겠다고 한 온실가스 1229만톤의 16배가 넘는다.
왜 한국전력 아닌, 삼성물산에 압박 가할까
그런데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한국전력이 아니라 삼성물산에 압박을 가하는 것일까. 그걸 알려면 지난 몇 달간의 글로벌 환경단체의 움직임을 보아야 한다. 지난 6월, 호주 환경단체와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시위' 청소년들이 시드니 삼성전자 매장 앞에서 불매운동을 벌였다. 환경단체와 청소년들은 "삼성 계열사들이 아다니 사업에 투자하는 한 스마트폰과 TV를 포함한 삼성전자 제품을 사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삼성증권이 투자한 '아다니 애봇포인트'(Adani Abbot Point, 이하 AAPT)라는 대규모 석탄 항만시설 때문이다. 삼성증권, 한화투자증권 등 우리나라 금융사들은 지난 2년간 이 터미털로부터 약 2500억원 규모의 대출채권을 인수했는데, 최근에 AAPT가 다시 2100억원 규모로 대출채권 리파이낸싱을 시도하자 현지 단체들이 투자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그 결과 삼성증권은 아다니 석탄사업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뒤이어 한화투자증권도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여기에 고무된 환경단체들은 다음 목표를 베트남 붕앙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할 계획인 삼성물산으로 잡았다고 외신은 보도하고 있다. 지난달 21~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영국 런던 옥스포드 스트리트에 있는 삼성전자 플래그십 매장 앞에서 삼성물산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 사업 참여를 반대하는 시위를 잇따라 벌였다.
지난 17일에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국제 환경단체들이 삼성물산을 겨냥한 전면광고를 실었다. 베트남의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참여를 철회하라는 내용이었다. B to C 사업을 해야만 하는 삼성전자의 특성상, 평판 이슈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연기금이 석탄 발전 못하게 나서는 이유
그러면 두 번째 의문. "석탄투자를 하지 말라"는 압박을 왜 환경단체가 아니라, 연기금들이 나서서 하는 것일까. 사실 리걸앤드제널럴은 삼성물산 지분을 0.02%, KLP와 노르디아은행은 합쳐서 0.01%를 각각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유럽연합의 기후변화 정책 때문이다. 205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하겠다는 '그린딜(Green Deal) 정책에 따라, 유럽연합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개발도상국에 석탄화력발전 중단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유럽투자은행(EIB)은 지난해 11월 석탄 등 화력연료 사업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당장의 수익성 악화와 기업 경쟁력 상실이 우려돼 2021년 말까지 2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 그리스는 2023년까지, 영국은 2024년까지, 독일과 동유럽은 참여가 더딘데 북유럽과 서유럽은 탈석탄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카트린 구트만(Kathrin Gutmann) 비욘드콜(Beyond Coal) 유럽이사는 "EU는 이미 143개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공식 발표했고, 180개소는 조만간 폐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EU에서 석탄발전은 이미 좌초자산(stranded assets)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폴란드 오스트로테카(Ostroteka C) 석탄화력발전소의 경우, 소송과 외부자금 조달이 어려워 건설중인 2억유로(1조7000억) 규모의 발전소 투자가 중단됐다. 2015년에 지어진 독일 무어부르크(Moorburg) 석탄발전소는 건설비가 30억유로(4조1800억원)가 들었는데, 10억유로(1조4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독일정부에서 2038년까지만 석탄발전소를 운영하고 모두 퇴출시키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가동연한이 한참 남아있는데도 문을 닫아야 한다.
그리스의 경우, 현재 660MW(메가와트)급 석탄발전소 프톨레마이다(Ptolemaida V)를 건설 중인데, 이 발전소는 딱 8년까지 운영하고 문을 닫아야 한다. 그리스 정부가 2023년까지 석탄 퇴출을 선언했기 때문인데, 현재 지어지고 있는 이 발전소는 예외를 적용해서 2028년에 문을 닫기로 했다. 14억유로, 우리 돈으로 2조원의 투자비용이 날라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많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상당수 개발도상국이 EU의 녹색정책에 대해서 "신보호주의"라고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석탄 의존도가 높은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의 반응 또한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자의 공개 요구는 기업들로 하여금 기후변화 대처에 나서게 하는 압박수단이 된다(블룸버그 통신)고 전했듯이, 앞으로 석탄발전에 투자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 평판리스크까지 손상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