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지속가능경영보고서 유감

2022-08-02     박란희 chief editor

매일 뉴스클리핑을 하다보니, 지난 6월부터 꽤 자주 접하는 기사가 있다. 각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는 소식이다. 대개 해당기업이 보도자료를 내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적는 단신성 기사가 대부분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다들 발간하니, 으레 그러려니 넘어갈지 모르지만 마음이 꽤 불편하다. 이렇게 가다가는 예전처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무용론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아마존에서 최근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내용에 대해, 블룸버그를 비롯한 몇몇 언론에서 ‘18% 온실가스 증가했다’는 내용으로 기사화가 됐다. 2040년 넷제로 달성을 하겠다고 하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의 지속가능경영 성과는 다들 궁금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주목의 대상이 된다. 아마존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재생에너지를 많이 구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매출이 느는 것에 비례해, 가치사슬 전체의 탄소배출량에 해당하는 스코프3(Scope) 배출량이 많다보니 쉽게 탄소감축을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유럽 기업들 중에는 탄소배출량이 줄어드는 기업이 꽤 많은데, 이들의 감축 역사를 보면 헛웃음이 날 때가 많다. 20년 전부터 감축을 해온 경우도 많아서다. 아마존의 경우 탄소배출량을 관리한 지 10년도 되지 않았을 것이고, 2019년 전후에서야 사회적 압박이 강해지면서 관련한 드라이브를 걸었으니 탄소 감축이 예상처럼 빨리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쓸모'란

중요한 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사회적 논의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 데이터에 관해, 이를 제대로 분석하는 연구기관, 비영리조직, 언론 등이 별로 없다. 언론사에서 왜 이런 걸 안하느냐고 묻는다면, ‘하고 싶지만 할 여력이 없다’고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기사를 써야하고, 속보경쟁이 심해지는 언론사의 환경에서 이렇게 시간을 들여 자료를 보고 분석해내야 하는 기사들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여력이 된다면 임팩트온에서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은데, 아직 여러가지 여건이 허락치 않는다. 국내의 ESG 생태계 저변이 넓지 않다보니, 이러한 연구기관도 별로 없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ESG라는 비재무성과가 아닌, 재무성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분기별 기업실적을 보여주는 실적보고서가 나오면 각종 언론과 증권사 리포트에서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쏟아진다. 기업실적이 주가에 바로 연동되는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만난 한 자산운용사의 ESG팀장은 “앞으로 공시가 의무화되고 ESG 데이터들이 비교가능해지면서 이것이 기업의 주가에 미치는 영향으로 나타나게 되면 변화가 있겠지만, 공시 의무화가 2030년 이후인 한국 상황에서는 아직 요원한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기업으로서는 어찌보면 공시 의무화를 앞둔 워밍업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기업 내부는 어떨까. 기업 내부에서는 과연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쓸모’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만약 현명하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CSO나 ESG팀의 임원이라면, 자사의 보고서에 등장한 ESG 데이터 추이를 통해 우리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현 상황을 분석하는 미니 리포트를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걸 CEO와 이사회에도 잘 해석해서 알려줘야 하고, 그 해석본을 갖고 전사적으로 내부 임직원들과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숫자 그 자체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해주기 전에는 현업에 바쁜 그 누구도 그걸 알 길이 없다.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남으로써, 우리 기업은 앞으로 어떠한 탄소가격 부담을 안게 되는지, EU로 수출하는 기업이라면 CBAM(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에 의해 얼마만큼의 원가 부담이 높아지는지, 향후 탄소배출권 가격이 높아질 경우 부담은 얼마나 늘어나는지, 이러한 탄소를 역으로 이용해 다양한 감축사업에 진출하거나 하는 기회요인은 없는지 이러한 내용을 ‘해석’해낼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걸 해석하려면 알아야 하는 정보가 너무나 많다. 시시각각 변하는 EU와 미국의 규제 정보와 트렌드를 다 쫓아가야 하니,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 게다가 환경(E) 분야 하나만 해도 온실가스, 물, 에너지, 폐기물, 생물다양성까지 정말 범위가 너무 넓어서 각각을 어떻게 해석해내야 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다. 환경은 그나마 다양한 자료도 많아서 가능하겠지만, 사회(S)와 지배구조(G) 부문은 이 데이터가 당장 우리 기업에 어떤 변화를 준다는 건지 해석하기란 박사급 전문가 몇몇은 붙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만큼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결국 ESG팀 혹은 지속가능경영팀에서 해내야 한다. 한해 두해 업력이 쌓이고, 각각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상호학습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상상도 된다. 

이렇게 어려운 길을 정면돌파하지 않고, ESG등급을 올리기 위한 결과에만 목을 매거나 아니면 외부에 반짝 일회성 보도자료를 내보낼 수 있는 ‘있어보이는 꺼리’에 몰두하면 그 기업의 ESG는 결국 해당 임원의 ‘무능함’ 혹은 ‘게으름’ 혹은 ‘부도덕함’ 때문에 뒤쳐지고 만다.   

 

숫자 그 이면의 스토리 전달해낼 수 있어야

그리고 더욱 훌륭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지닌 기업이라면, 이 해석본을 외부에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어야 한다. 보도자료여도 좋고, 유튜브 홍보영상이어도 좋고, 블로그여도 좋다. 우리 회사가 속한 지속가능경영의 현재 상황을 ‘숫자 그 이면의 스토리’로 전달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해관계자들 또한 이걸 통해 ‘판단’을 할 수 있다. 

얼마 전 휴대용 수력발전기를 개발한 소셜벤처 이노마드의 박혜린 대표가 한 영상에서 ESG에 관한 비유를 한 걸 듣고 무릎을 쳤다. 만약 내가 투자하는 A기업을 결혼 대상이라고 생각해보자. A기업의 스펙은 명문대 출신이고 고급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인물이다. 한데, 뜯어보니 고급아파트는 대출이 엄청 많고, 외제차 또한 리스를 하는 인물이라면? 결혼대상으로 적합해보였던 인물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A기업의 재무성과와 ESG성과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무성과 외에 ESG성과를 이렇게 설명할 줄 아는 건 매우 중요하고, 또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관련 보도내용은 실망스럽다. 억대의 돈을 들여 만들면 뭣하랴. 제 역할을 못하면 종이 낭비,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박란희 대표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