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아시아 ESG 투자 성장률 358% 기록한 일본의 ESG 현재와 고민
아시아에서 ESG 투자에 앞장 선 국가는 어디일까? 바로 옆 나라 일본이다.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마중물 삼아 일본 내 ESG 투자 규모는 급격히 증가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2018년 일본의 ESG 투자자산 잔액은 2.2조달러, 한화로 약 2700조원에 달한다.
증가 폭도 가파르다. 2년마다 글로벌 지속가능투자 규모를 발표하는 GSIA(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Alliance)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조사대상 국가 중 일본의 투자규모 증가폭이 가장 컸다. 일본의 성장률은 358.9%로 같은 시기 미국이 37.5%, 유럽이 16.9% 성장한 것에 비해서 엄청난 증가세다.
성장의 중심에는 기관투자자가 있었다. 2015년 전 세계 자산규모 1위인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가 UN PRI에 서명한 이후로 일본 내 ESG 투자는 일반 투자자들로까지 번져나갔다. GPIF는 2017년 총 운용자산 1조4000억달러(1702조원) 중 약 100억달러(12조원)를 ESG 펀드에 투자했다.
기업과 정부도 ESG 투자 활성화에 동참했다. 일본 기업의 ESG 채권 발행액은 2017년 이후 꾸준히 급상승해 작년 8454억엔(약 9조4575억원)에 달했다. 일본 정부는 기관 투자자와 기업들이 ESG를 고려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 및 기업지배구조 코드를 개정하기도 했다.
ESG가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시장이 확대되고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건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도입 역사가 짧은 만큼 ESG 투자가 시장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 겪을 고충도 만만찮다. 국내만 해도 기업의 낮은 인식과 함께 ESG 워싱(ESG가 아님에도 ESG처럼 위장하는 것) 에 대한 우려도 속속히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또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이에 일본은행은 올해 7월, ‘ESG 투자를 둘러싼 국내의 기관투자가 동향에 대하여’ 보고서를 발간하며 기관투자자들이 겪는 현장의 고충을 담았다.
ESG 투자 활성화 위해서는 '정보 공개' 활발해야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ESG 관련 정보의 제약 ▲ESG 요소 자체의 불확실성 ▲ESG 고려와 수익성의 관계 불확실 ▲과학·기술 등의 전문지식 활용 체계 미비라는 4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럽연합(EU)나 미국 등과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ESG 관련 정보 접근이 제한적이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다. ESG 신용평가기관들이 저마다 독자적인 지표로 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에 투자자도, 기업도 혼란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정확한 평가방법을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이 낮으며, 평가작업이 자의적일 수 있다”며 우려한다.
평가를 그대로 이용하기에는 신뢰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한 기업에 대해서도 ESG 평가가 다르기 때문에 한 기관의 자료만 참고해서 투자 결정을 내리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기업 또한 “평가 내용의 피드백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컨센서스를 활용한 기업별 ESG 분석’ 보고서를 발간한 신한금융투자 또한 동일한 지적을 한 바 있다.
이 외에도 표준화 된 ESG 요소가 없다는 점, ESG 등급 갱신 빈도가 낮아 즉각적으로 기업의 이슈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일본은행은 투자자들에게 “기계적으로 ESG 등급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유의점이나 한계를 파악해 각각의 투자방침에 맞춰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평가기관이 E·S·G 중 어느 항목에 초점을 맞춰 평가했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업이 ESG 정보를 공개하는데 있어서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애초에 공개되는 정보의 양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글로벌 기업들과 규모를 비교해 봤을 때, 특히 일본 기업들의 정보 공개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보 공개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점, 가이드라인의 부재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입장도 언급했다. 그러나 “정보 공개량이 적으면 ESG 신용평가기관이나 해외 투자자로부터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해 오히려 등급이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며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들도 해결해야 할 과제
ESG 요소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도 언급했다. 국가마다 갖고있는 문제가 달라 일괄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타 선진국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많은 산업들을 중심으로 경제가 구축돼 있고, 유럽에 비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단기간에 탈석탄으로 경제구조를 전환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럽을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어떤 속도로 이끌어나갈지 계획하는데 있어 불확실성이 높다.
ESG 요소가 경제 전반에 적용되기 위해선 저탄소 경제로 바뀌는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진전이 선행돼야 한다.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높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 발달된 국가일수록 리스크가 감소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또한 불확실성을 안고 있어, ESG 확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수익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일본 내에서는 ESG 투자가 기업 실적도 높인다는 긍정적인 연구 결과들이 많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은 부분이다. 그럼에도 일본 내 기업들은 비재무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높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행은 “비 재무정보를 어떻게 재무정보에 적용시킬지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며 “당장에는 ESG 대응이 불충분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보류하는 방식으로 금전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SG 활성화 이면엔 '아베노믹스' 있었지만
기업의 자발적 참여 늘어나고
인식 변화도 이뤄지는 실정
아시아에서 일본이 ESG 투자를 선도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베 정부의 ‘아베노믹스’ 정책이 있다. 2014년 아베정부는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경제를 살릴 뿐 아니라 규제 개혁 및 일본 경제의 체질 개선을 통해 근본적으로 성장동력을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통치 개혁 중 하나가 스튜어드십 코드다. 일본 정부가 전면으로 내세운 이슈가 ESG 였고,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ESG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았던 투자도 ESG로 편입하는 등 도입에만 급급했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그러나, ESG 투자가 확산되며 이를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은 변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ESG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우호적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단순히 투자자들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업가치 향상이나 새로운 사업기회를 위해 ESG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이어지고 있다. TCFD(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에 가입한 일본 기업은 276곳으로 참여국 중 가입 기관 수 1위다. 일본은 녹색금융협의체(NGFS)에서 주요 국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일본에서 ESG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을 시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은행은 “일본 금융시장에서의 ESG 투자는 서구 대비 비교적 역사가 짧은 분야라, 기관투자가 마다 대처 상황의 격차가 크고, 투자목적이나 운용방침 등이 충분히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세계적으로 ESG 투자는 활발해지고 있다며 “국제적인 경쟁력 관점에서도 ESG 투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