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너지·경제 안정하려면? 금융 규제 강화 vs. 완화 엇갈려
영국에선 미피드2 포함 금융 규제 완화 기조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의 노드스트림1 파이프라인 무기한 폐쇄 방침이 지난 2일(현지시각) CNN 등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노드스트림1이 유럽 천연가스 수급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폐쇄보도 이후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급등했다. 유럽 경제에 타격이 큰 만큼 일부 국가에선 금융 규제 완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한편 독일의 전력 가격은 일주일 만에 다시 절반 수준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금융 규제 완화가 에너지 및 경제 위기 극복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거대 석유 기업 등의 석유 공급자는 에너지 가격 상승을 막지 못해 국제적으로 비난을 샀다. 앤 페티포어 영국 거시경제정책연구소장은 FT 기고를 통해 "석유 메이저들에 대한 비난을 잘못된 방향이다. 글로벌 자본 이동성과 규제완화 추세, 상품시장(commoditiy markets)의 금융화 등을 감안할 때, 상품 생산자들을 국유화하거나 횡재세를 걷는 것 등으로는 가격을 낮추지 못한다"며 "대신 글로벌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규제 완화 VS 규제 강화… 전 세계 금융 정책 향방은?
상품 가격을 결정할 실질적인 힘은 도매상이 아니라 상품거래소에 있다고 FT는 분석한다. 실제로 월가와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식품과 에너지 부문에는 자금이 몰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월가 은행들의 순이익은 급증했다고 FT가 보도했다.
석유나 가스 가격도 마찬가지다. 최근 독일의 물가가 하락한 사례처럼 석유의 수급이 가격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FT는 지적한다. 상품거래소가 석유 수출국과 화석연료 기업에 손실을 입힌 사례도 있다. 실제로 2020년 엑손모빌(Exxon Mobil), BP, 셸(Shell), 셰브론(Chevron), 토탈(Total) 등 5개 기업은 760억달러(약 104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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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과 식량·에너지 가격 상승은 저소득 국가의 혼란을 키운다고 FT는 분석한다. 전 세계의 수백만 명이 경제적 어려움과 빈곤을 겪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금융 시장에는 규제가 없었다.
때문에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유럽 연합은 미피드(MIFID, Markets in Financial Instruments Directive) 규정을 만들었다. 미피드는 EU가 2007년 도입한 일종의 ‘금융상품투자지침’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8년 '미피드2'가 도입됐는데 이는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 ‘시장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앤 페티포어 거시경제정책연구소장은 FT에 "현재의 혼란은 규제 완화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전 세계 상품 시장은 식품 및 에너지 생산자와 소비자 등 실제로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오는 12일 하원에 제출할 법안은 금융 시장에 대한 영국은행의 권한을 약화해 시장 변동성을 부추길 것으로 FT는 예측했다. 미피드(MIFID)2를 개혁해 시장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대형 보험사의 투자 장려를 위해 영국 외무장관이자 차기 총리 당선이 유력한 리즈 트러스(Liz Truss)가 미피드2 규제 개혁을 약속했다. 트러스 장관은 영국의 경제지인 시티AM과의 인터뷰를 통해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해 도시의 경제 성장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러스 장관의 친기업 정책에 영국 기업에선 환영하는 동시에 자금 마련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가 보험, 영업 비용, 법인세 인하를 지원하는 IOD(Institute of Director)의 정책 책임자인 로저 바커(Roger Barker) 박사는 “기업에선 경제가 신중하게 관리되기를 바란다”며 “정책이 신뢰를 얻으려면 정부에서 자금을 대거나 대체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금 마련 방안에 대해 트러스 장관은 취임 직후 긴급 예산을 즉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지도자들은 경제와 사업의 우선순위를 밝혀달라 요구했다. 유럽의 에너지난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면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금융 규제 개혁 방향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