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ESG ⑦】 석탄 투자가 내 통장까지 위협? 탈석탄 금고 선언 뭐길래

2020-09-11     박지영 junior editor

ESG를 아시나요?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ance)의 줄임말입니다. 기업 비재무정보의 핵심요소 세 가지입니다. 근래 전 세계적인 경영 트렌드를 ESG로 꼽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에게 아직 ESG는 생소합니다. 용어도 많고 기준도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IMPACT ON은 '줌인 ESG’ 코너를 통해 ESG를 둘러싼 다양한 프레임워크와 기준들을  알기 쉽게 소개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은행에 돈을 예금할 때, 선택하는 기준에는 무엇이 있을까. 연 금리, 최고 금리, 송금 수수료 면제 등이 있을 것이다. 최근 전국 56개 자치단체와 11개 시·도 교육청은 이 기준에 ‘탈석탄’을 추가한다고 선언했다. 지자체의 돈을 은행에 맡길 때, 석탄 관련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 은행에 돈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간 재정 규모는 148조8712억원에 달한다. 

'2020 탈석탄 기후위기 대응 국제콘퍼런스' 갈무리/ 충청남도 유튜브

 

자금으로 기후변화 압박 나선 지자체들

지자체와 교육청이 ‘탈석탄’을 외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충청남도가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탈석탄 금고 지정을 선언하면서 “기후변화에 중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뒤이어 서울시교육청도 “교육기관으로서 국내 금융기관들의 탈석탄 투자를 돕고,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해 장기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라며 선언에 동참했다. 지자체의 자금으로 금융기관에 압박을 넣어 기후위기 대응을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광역자치단체(7개) 대구/ 대전/ 울산/ 세종/경기/ 충북/ 충남

 

교육청(11개)

서울 / 부산/ 울산/ 광주/ 인천/ 대전/세종/ 충북/ 충남/전남/ 경남
기초자치단체(38개)

서울 도봉ㆍ강동 (이상 서울 2곳)/ 부산 동래(부산 1곳)/ 

인천 미추홀ㆍ연수(이상 인천 2곳)/ 

대전 서구ㆍ대덕(이상 대전 2곳)/

경기 수원ㆍ고양ㆍ화성ㆍ안산ㆍ광주ㆍ광명ㆍ하남ㆍ오산ㆍ

이천ㆍ구리ㆍ안성ㆍ포천ㆍ의왕(이상 13곳)/ 충북 보은(충북 1곳)/

충남 천안ㆍ보령ㆍ아산ㆍ서산ㆍ논산ㆍ계룡ㆍ당진ㆍ금산ㆍ부여

ㆍ서천ㆍ청양ㆍ홍성ㆍ예산ㆍ태안(이상 충남 14곳)/

전남 목포(전남 1곳)/ 경남 창녕(경남 1곳)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환경운동연합·그린피스 등은 화력발전소와 같은 석탄산업에 투자하지 않는 이른바 ‘탈석탄 금융기관’이 교육청 금고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청소년 등 미래세대다.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미래세대의 권리를 교육청이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위성호 신한은행장, 금고 입찰 프레젠테이션 위해 출장 도중 귀국

은행에겐 '사활' 걸린 사업

지자체 금고 시장은 국내 은행들의 가장 큰 사업 영역 중 하나로, 작년 기준 453조원 규모다. 금융권에선 지자체와 시교육청의 금고를 유치하면 운영수익 뿐만 아니라 기관 직원 등 우량 고객군을 확보하는 부수효과가 크다. 더불어 안정적인 자금 조달처 확보가 가능하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연간 10조원을 맡기기에 금고지기에 선정되면 향후 4년간 40조원 규모의 돈을 굴릴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은행과 구성원들은 생존 차원에서 지자체 및 기관 금고 유치에 올인한다. 실제로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필리핀 출장 도중 다음날 예정된 서울시금고 입찰지원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까지 한 바 있다.

전국 지자체와 교육청은 행정안전부와 교육부의 금고 지정 기준에 관한 예규에 따라 일부 배점을 임의로 부여할 수 있는데, 통상 △총자본비율 △지자체에 대한 예금ㆍ대출금리 △주민 편의성 등 수납시스템 구축 △지역사회 기여 및 협력사업 항목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탈석탄 선언 및 석탄 감축 이행계획 수립 여부’ 등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지자체 금고를 노리는 은행이라면 기본적으로 이들 항목에서 엇비슷한 경쟁력은 확보한다. 당락을 결정짓는 건 1~2점차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기여에 속하는 은행 출연금 항목은 배점이 100점 만점에 최대 4점에 불과하지만, 나머지 항목의 점수가 워낙 대동소이해 낙찰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은행사 간 경쟁은 매우 치열해, 지방은행들은 과당 출연금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며 정부에 지자체 금고지정기준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은 탈석탄 항목에 5점, 충청남도는 2점을 부여했다. 금융권이 ‘탈석탄 금고 선언’에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더불어 올해 하반기 금고 재선정이 몰려있다. 연말까지 금고 계약이 만료되는 지자체는 63곳, 교육청은 5곳이다. 아직까지 국내 시중은행 중 ‘석탄 투자 중지’를 실천한 곳은 없는 만큼, 탈석탄 선언을 한다면 단숨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지자체가 금고를 선정할 때 ESG 투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착한 금고 선정법안’까지 발의돼 은행들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고 선정시 사회적 책임과 환경을 고려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자 공적자금을 관리하는 지자체의 마땅한 책무”라며 법안을 발의했다. 

 

손쉽게 이윤 얻을 수 있는 석탄발전

시중은행 석탄 투자 잔액 6000억원에 달해

전방위적 압박을 받지만 은행들이 석탄발전을 포기하기엔 쉽지 않다. 5년 안에 수익성이 없어질 것은 알고 있으나, 손쉽게 단기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시준은행의 석탄발전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잔액은 총 6012억원에 달한다. 신한은행(1414억원), 우리은행(투자 잔액 1369억원)과 하나은행(1027억원), IBK기업은행(967억원), KB국민은행(864억원), NH농협은행(371억원) 순이다. 모두 지자체 금고를 관리하는 은행들이다. 대구, 경남, 부산, 광주은행도 석탄발전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전국 지자체의 회계구분별 금고 941개 중 562개(59.72%)를 운영하고 있는 NH농협은행의 경우, 은행만 놓고보면 371억원에 불과하지만 100% 지분관계로 연결된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의 제반 석탄금융(한전자회사 회사채 인수, 민자석탄 대출, 석탄열병합 대출과 사채 인수) 규모를 합하면 2018년 8월 기준으로 4조2616억 원으로 국내 금융기관 중 가장 큰 규모다.

 

석탄발전이 내 통장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석탄이 좌초자산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탈석탄과 기후변화와 관련한 이슈에서 금융의 역할에 일찍부터 주목해왔다. 세계 석탄발전 시장의 큰손인 미쓰이스미토모 금융그룹도 석탄 관련 투자를 유예하거나 중단했다.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등 150개 이상의 연기금과 HSBC, 알리안츠, 소프트뱅크 등 주요 금융기관 등은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환경적 이유뿐만 아니라 시장 경쟁력이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석탄사업의 재무적 위험성” 때문에 일찌감치 석탄 투자에서 손을 뗐다.

국내도 석탄을 좌초자산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교직원공제회·대한지방행정공제회·사학연금·공무원연금 등이 탈석탄 금융을 선언했으며, DB손해보험과 한국투자증권 등도 “석탄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석탄발전이 자산으로서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은행들의 자산 가치도 덩달아 하락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BIS 기준 총자본비율 감소로 이어져 개인 예금을 위협할 수도 있다. 2011년 말 삼화저축은행, 부산저축은행,  솔로몬저축은행, 보해저축은행 등이 줄파산하며 예금을 찾지 못했던 이유도 이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각종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무분별하게 투자해 부채를 떠안게 된 게 주요 원인이었다. 

8월 31일 기준 국내 은행의 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14.53%로 규제 기준인 10.5%보다는 높아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기업대출의 증가, 시장 변동성 확대 등의 영향으로 위험가중자산은 증가한 바 있다. 전세계적으로 석탄산업을 좌초자산으로 분류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진다면, 석탄산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할 위험이 있다. 은행사들의 석탄 투자가 내 통장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지금 투자 규모로만 따지자면 개인투자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석탄투자를 중지하지 않는다면 결국 개인에게까지 리스크가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석탄 투자 이외에도 고탄소 배출 기업 대출도 자제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이 사무국장은 “앞으로 고탄소 배출 기업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따라 많은 규제를 받게 될 것”이라며 “이런 기업에 계속 대출을 해주다보면 은행 건전성도 악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BIS 총자본비율

BIS 총자본비율이란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비율로, 수치가 하락된다는 해석은 위험가중자산이 자본보다 빠르게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가중자산이란 대출금, 미수금, 예치금 등 자산 유형별로 위험가중치를 적용한 자산이다. 

BIS 총자본비율이 클수록 은행의 재정 건전성이 좋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