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ETS, 재생에너지, 순환경제에서 정부가 할 일은?
대한상공회의소는 14일 ‘제3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행사는 세 개의 주제별 세션으로 구성됐다. 세션 1,2,3은 각각 탄소중립을 위한 ‘배출권거래제’, ‘RE100’, ‘순환경제’의 역할을 주제로 학계, 정부, 산업계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눴다.
이창훈 한국환경연구원 원장은 ‘탄소중립 이행 위한 환경정책 혁신 방안’이라는 기조 강연을 맡았다. 이창훈 원장은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탄소중립 투자 규모가 2030년 5조 달러(약 69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탄소중립은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원장은 "우리 사회의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서는 배출권거래시장과 전력시장을 정상화해서 적정한 탄소가격과 전기요금을 통해 사회 전체의 탄소 감축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TS, 유상할당은 BM 방식 확대…이트모 활용 기준도 마련해야
오형나 경희대학교 교수는 배출권거래제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자발적 탄소시장의 활용 방안에 관해 설명했다.
탄소가격제는 탄소세, 배출권거래제(ETS), 연료세가 포함된다. 오 교수는 “세 가지 제도에 포함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은 우리나라가 1위이며, ETS에 적용되는 배출량 비중은 약 80%로 독일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탄소 가격은 연료세를 포함하면, 독일과 영국, 프랑스보다는 낮지만 G20 평균보다는 높은 편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3기 배출권 시장은 가격의 변동성이 크며, 비적용 배출량과 비교해서 온실가스 감축량이 더 많지만 저감정책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는게 국내외 평가”라고 꼬집었다.
배출권 거래제의 온실가스 감축 기능은 강화하고 배출권 수요를 동시에 창출하는 방안이 몇 가지 제시됐다. 오형나 교수는 “배출권거래제는 국내 배출량의 약 80%를 포괄하므로 NDC 달성을 위해서는 감축 기능을 강화해야하고, 배출 상한은 국가 감축 목표를 반영해서 더 높게 책정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배출권 가격은 적정 수준이 유지돼야 감축 기능과 시장 기능이 모두 활성화된다. 저감 투자 재원인 기후대응기금은 배출권 판매 수익이 주요 자금 조달원이다. 가격이 너무 낮으면 기후대응기금이 모이지 않아서 저감 투자 및 지원이 어려워진다. 반면, 가격이 너무 높으면 기업들이 배출권 판매 이익을 얻지 못해 거래 수요가 줄어든다.
오형나 교수는 유상할당 비중을 확대하고 무상할당은 BM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출효율 기준 할당방식(BM, Benchmark)은 해당 기업의 기준연도 중 생산·용역량, 열·연료 사용량 등 활동 자료량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할당량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온실가스 배출 효율이 좋은 업체는 더 많은 배출권을 할당받고 배출 효율이 낮은 업체는 적게 받는 제도이다.
오 교수는 “형평성과 효율성의 균형을 맞추는게 중요하므로, 비용과 수요를 조정하기 위해 탄소 가격은 높게 책정하되 이를 보완할 탄소차액계약과 상용화계약, 경매를 통한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개도국에서 발생한 저감 실적을 인증과 상응조정을 거쳐서 발행되는 이트모(ITMOs)를 거래할 수 있다. 오형나 교수는 “이트모가 품질에 대한 기준은 갖췄으나 각국에서 활용되는 기준은 부재한 상황”이라며 “정부는 K-ETS와 ESG공시와 연계된 지침이 필요하며 상쇄 배출권, RE100, 지속가능보고서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생에너지 비싸서 RE100 달성 어려워…제도 간 융합이 핵심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이 RE100에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가 온실가스 관리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녹색프리미엄제, REC구매, 제3자 PPA, 자본 투자, 자가 발전, 직접 PPA라는 여섯 가지 RE100 이행수단을 갖추고 있다.
이상준 연구위원은 “한국은 짧은 시간내에 제도적 틀을 잘 갖췄으나, 녹색 요금제에 편중된 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이 녹색 요금제를 선택하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고 편의성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해외시장이 PPA에 집중된 점과는 다른 상황이다. 이 연구위원은 “전 세계 전력 중 31.1기가와트가 PPA로 거래되고 있다”며 “다만, 이 중 3분의 2가 북미에서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유럽이나 아태지역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국지적인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PPA로 거래되는 재생전력이 50달러 이하인 경우가 많아서 일반 전기요금보다 저렴하다. 이상준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가격이 저렴하므로 기업이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유럽도 풍황이 좋은 북쪽은 풍력 에너지 비용이 저렴하고, 스페인 등 남부는 태양광이 저렴하며 가장 비싼 가격으로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반값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재생에너지 가격이 비싸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은 땅값이 비싸며, 토지를 확보하기 위한 높은 간접 비용, 수용성 문제, 높은 인구밀도와 같은 제약이 있기에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상준 연구위원은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RE100을 모두 선언하기 위한 재생에너지양은 충분할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라며 “물량은 충분하며 2030년까지 가상으로 계산해보면 부족할 수 있으나 RE100 선언이 시장 유발 효과를 가져오므로 물량이 부족할 일은 쉽게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제도와 RPS 제도가 조화롭게 융화하는게 필요하며, 정부가 경배제도를 시행하여 가격 경쟁력을 형성하고 금융, 법률, 보험과 같은 관련 시장이 함께 발달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RPS 제도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이다. 50만 kW(500MW) 이상 발전사업자는 반드시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원으로 발전해야 한다.
K순환경제, 자원효율등급제와 배터리 재활용 방법론 마련
조지혜 한국환경연구원 자원순환연구실 실장은 “우리나라 2050 탄소중립 핵심전략에 순환경제가 포함되어, 순환경제가 탄소중립 이행과 연관성이 있음이 공론화됐다”고 말했다. 조지혜 실장은 “산업통상부와 환경부가 작년 12월 ‘K순환경제 이행계획’을 마련하고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실장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절반이 제품과 관련됐으므로, 탄소중립 이행은 에너지 전환도 중요하지만 제품과 관련된 자원 이용의 순환과 효율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품 생산과 소비, 수거, 재사용과 재활용이라는 전 과정에서 탄소를 관리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순환경제는 자원의 전주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므로 이를 분석할 수 있는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도 제시됐다. 조지혜 실장은 “K 순환경제 로드맵은 41개 기관의 63명이 9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작업했는데, 단기, 중기, 장기 목표로 분류해 총 26개 과제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2050년 장기 과제로는 석유계 플라스틱 소재 대체, 바이오 플라스틱의 물성과 경제성, 기계적 플라스틱에서 열분해 등 새로운 재활용 방식의 범위 설정 문제들이 제시됐다. 조 실장은 “에코디자인 개념을 순환경제에 접목한 자원효율 등급제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자원효율 등급제는 에너지 효율 등급제와 유사하게 제품의 내구성과 수리 용이성 등을 정량화해서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제도이다. 조지혜 실장은 “이 제도는 지속가능한 제품을 설계한 기업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면서 시작하려고 한다”며 “자원 순환형 제품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혁신 제품으로 지정해서 수의계약을 통해 수익 창출을 도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조 실장은 국가 건설 기준에 재활용 품질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 폐제품의 안정성을 품질 인증 제도로 통해 보장하는 방안들을 제시했고 시범사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배터리는 전기차에서 탈거된 배터리만 재사용과 재활용의 대상이다. 조지혜 실장은 “리튬 이차 전지도 대상군으로 확대돼야 하며, 배터리 리스 사업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규 등록한 전기차의 배터리는 지자체 반납 의무가 없어서 재활용뿐만 아니라 폭발사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이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 실장은 “EU는 2020년 배터리 관련 규정을 냈는데 올해 유럽의회의 상향된 안이 채택됐는데, 우리 정부도 배터리 관련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지혜 실장은 “재생원료나 재사용 및 재활용 제품을 공공조달에서 우선 구매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전체 주기에 걸쳐서 탄소배출량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평가기법도 정부 주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