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탐사대】전세계 최초라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왜 후퇴했나
지난 6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벌써 두 번씩이나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제도의 시행 시기가 6월에서 12월로 유예됐고, 지난 9월에는 시행규모가 전국에서 세종·제주로 축소됐다.
제도 도입이 결정되고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간 환경부의 준비가 한참 미흡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한편, 아직까지도 일회용컵 보증금제에는 수많은 정책적 과제들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환경부,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앞두고 2보째 뒷걸음질만
일회용컵 보증금제란 음료를 일회용컵에 받을 때 보증금 300원을 내고, 일회용컵을 다시 매장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02년 처음 도입됐지만 낮은 회수율 등의 문제로 2008년 폐지됐다. 하지만 일회용품 쓰레기에 관한 경각심이 다시 고조되면서, 2020년 6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의 개정으로 다시 부활했다. 당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2022년 6월 10일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발표됐다.
그러나 지난 5월 20일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시행을 2022년 12월 1일까지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2년 전에 결정된 제도의 시행을 불과 3주 앞두고 미룬 것이다. 당시 환경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침체기를 견뎌온 중소상공인에게 회복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시행을 유예한다”라고 밝혔지만, 애초에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가 미흡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지난 9월 23일 환경부는 기존에 전국을 대상으로 시행할 예정이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세종·제주에서만 우선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앞선 5월의 시행 유예까지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번의 시행규모 축소는 벌써 두 번째 뒷걸음질이다. 이는 환경부가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도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가 매우 미흡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과연 이 과정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었을까?
첫 번째 뒷걸음질, 가맹점주 반발에 ‘시행 유예’…입법권 침해 위헌 논란
시행 유예가 이루어진 주된 원인은 가맹점주들의 이유 있는 반발이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매장 수가 100개 이상인 커피·제빵·패스트푸드·아이스크림·음료 판매점에 적용된다. 그런데 가맹점주들은 제도 시행을 앞두고도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는 "2020년 법이 통과될 때는 우리가 협회 지도부임에도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제도 시행을 넉 달 앞둔 올 2월에 처음 이런 제도가 시행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와의 논의에 대부분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들이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가맹점주들은 생업으로 인해 간담회와 같은 논의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프랜차이즈 본사에서라도 제도의 내용과 시행시기를 가맹점주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했어야 하는데, 이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야 가맹점주들이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관해 알게 되면서 반발이 시작됐다.
더군다나 가맹점주들이 일회용컵의 회수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더 큰 반발이 일어났다. 소비자가 반납하는 컵이 보증금 대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붙이는 ‘반납 라벨’은 개당 6.99원으로 가맹점주가 직접 사서 붙여야 했다. 여기에 보증금 카드수수료(개당 3원)와 회수한 컵의 처리 비용(개당 4원)까지 더하면, 가맹점주들은 음료 한 잔을 팔 때마다 약 14원의 손해를 봐야 했다.
이러한 가맹점주들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원장 등이 비판에 나섰고, 결국 지난 5월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시행을 6월에서 12월로 유예했다. 이후 비판을 수용한 환경부는 제도가 적용되는 매장들에 반납 라벨비(개당 6.99원), 보증금 카드수수료(개당 3원), 표준용기 처리지원금(개당 4원) 등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일부 환경단체들은 환경부의 시행 유예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으므로 위헌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자원재활용법의 부칙에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공포 후 2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 제도는 올해 6월 10일에 시행됐어야 한다. 그런데 환경부는 별도의 법률 개정 없이 제도의 시행일을 미뤘다.
이와 관련해 기후단체 플랜 1.5의 박지혜 변호사는 지난 9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토론회에서 “상위법령에 규정된 것을 하위법령에서 제정하지 않고 (시행일을) 미루는 건 삼권분립과 법치행정의 관점에서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녹색연합 허승은 녹색사회팀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환경부의 시행 유예가 ‘행정작용은 법률에 위반돼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행정기본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두번째 뒷걸음질, 해결 못한 문제 많아 ‘시행규모 축소’…쏟아지는 비판
지난 9월 23일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세종·제주에서만 우선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전세계 최초로 시행되는 만큼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비해 세종·제주에서만 먼저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세종시는 주거 인구 중 공무원 비율이 높아 제도 안착 성공률이 높고, 제주도는 국내 대표 관광지로서 일회용컵 사용률이 높아 선도 지역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환경부의 시행규모 축소에 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환경부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시행규모 축소를 통보했다는 점 ▲이로 인해 일회용컵 수거·운반업체들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 ▲향후 시행 확대에 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부재한다는 점으로 크게 세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먼저 환경부가 아무런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규모 축소를 통보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환경부는 지금까지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관해 전국 실시를 기준으로 논의해오다가 갑자기 독단적으로 시행규모 축소를 결정했다. 이에 관련 논의를 해오던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움과 함께 비판을 제기했다.
정책 결정을 위한 협의체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9월 하순쯤 환경부에서 회의에 나와서 일부 지역만 먼저 시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라며 "이에 대해 논의한 적은 없었고, 일방적인 통보였다”라고 말했다.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또한 “환경부는 형평성을 고려해 커피를 판매하는 모든 업종에 확대해 적용함과 동시에 순차적 시행날짜를 제시한다고 약속했으나, 단 한 번도 논의하지 않은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자치시 두 지역에서만 선도적 시행을 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라고 밝혔다.
갑작스런 시행규모 축소, 일회용컵 수거 운반 준비하던 업체들 "손해배상 청구할 것"
갑작스러운 시행규모 축소로 인해 일회용컵의 수거·운반을 준비하고 있던 업체들은 손해를 입게 됐다. 지난 9월 29일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자활협회)는 제도의 시행규모가 축소되면서 수거·운반 시설과 차량, 인력 등을 구비해온 업체들이 손해를 입게 됐다고 밝혔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보증금센터)에 따르면 전국 84개의 업체 중 이번 시행규모 축소로 실제 수거·운반을 하게 될 업체는 세종 7개사, 제주 4개사로 총 11개사에 불과하다.
자활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한 번 유예한 것을 보고 준비를 미뤄온 업체들은 피해가 얼마 없을 테지만, 미리 준비해놓은 업체들은 적게는 수백에서 1억 원 넘는 손해를 보게 됐다”라며 “결국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한 업체들만 피해를 본 꼴”이라고 비판했다.
보증금센터 관계자는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라며 “다음 주부터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며 피해 상황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우에 따라 이와 관련한 손해배상도 이루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손해배상이 이루어지더라도 결국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으로 인해 불필요한 예산이 지출되는 셈이다.
한편 환경부가 시행규모를 축소하면서도 향후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가는 2008년 때와 같이 정책이 폐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환경단체는 시행규모 축소에 관해 지난 5월의 시행 유예에 이은 ‘두 번째 유예’나 다름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는 환경부에 선도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면 시행 시기, 제도를 시행하는 선도 지역 확대 방안 등을 요구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세종과 제주에서 우선 시행하고 향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면 그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는 건 사실상 제도가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는 뜻 아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아직 갈 길이 먼 일회용컵 보증금제, 남아있는 과제는?
...편의점, 개인 카페, 무인카페와의 형평성은?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온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아직까지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제도의 시행 대상에는 편의점, 개인 카페, 무인 카페가 빠져있다는 문제가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이에 관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회용컵 보증금제로 인해 가게가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사장 A씨는 “현재 전국 카페만 7만 개로 치열하게 경쟁 중인데, 손님들은 당연히 보증금이 없는 카페를 찾을 것”이라며 “보증금 돌려받으려면 그 컵을 잠시라도 보관하고 있다가 그 가게에 다시 가야 하는 데 누가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겠느냐”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뿐만 아니라 재활용 업체 선정, 브랜드 간 교차반납 허용, 회수한 일회용컵의 보관과 관리, 무인회수기 개발 등의 문제도 남아있다. 이처럼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아직까지도 수많은 과제들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 2년간 제도 시행을 위한 환경부의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미 논의되었어야 할 문제들이 시행을 앞둔 지금에서야 급하게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최초로 시행하려는 정책이다. 그만큼 정책 시행을 위한 시행착오가 많이 필요하겠지만, 성공적으로 시행되기만 한다면 재활용 정책의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다. 때문에 환경부가 앞으로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성공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곱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김병희 그린워싱 탐사대 청년기자
김병희 청년기자(유세이버스 15기)는 연세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환경정책과 그린워싱, ESG 경영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올바른 정책, 기업의 올바른 경영, 소비자의 올바른 인식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