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ESG⑩] 시각장애인 점자촉각놀이교구 개발·보급 ‘담심포’
점자촉각놀이 키트 보급, 국내 주요 기업 사회공헌 활동으로
국내 시각장애인은 약 3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점자를 해독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의 비율은 5%에 불과하다. 어렸을 때부터 점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점자 학습 기회가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점자 교과서가 있어도 장애인도서관, 맹아학교 등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에 잘 보급되지 않는다. 2020년 기준 점자책의 보급률은 1.6%로 매우 저조한 편이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맹학교와 도서관의 이용이 제약돼 시각장애인들의 교육 불평등은 심화됐다.
사회적기업 담심포의 박귀선 대표는 점자 문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점자촉각놀이 교구재를 처음 만들었다. 주 대상은 영유아부터 초등학교 1~2학년생이다. 점자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점자는 손가락 끝에 있는 촉지로 익혀야 하는데, 10세를 넘어가면 촉지가 무뎌져 점자를 배우기 쉽지 않다.
단순히 일반 교과서를 점자로 옮기기만 하면, 10세 미만 아동들은 책으로만 점자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쉽게 흥미를 갖지 못한다고 한다. 박귀선 대표는 시각장애 아동들도 일반 아동처럼 다양한 교재로 학습하고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놀이교구재를 개발했다.
박귀선 대표는 2005년 공방을 운영하면서 봉사활동으로 시작했고, 약 10여 년 동안 국내 20여개 문맹학교에 점자교구재를 무상공급했다. 사회적기업 설립 이후에는 교구재를 키트 형태로 만들었다. 국내 기업과 기관의 임직원들은 봉사활동으로 점자촉각놀이교구재 키트를 직접 만들고, 담심포를 통해 맹학교에 보급하는 일에 동참한다. 현재까지 교통안전놀이, 숫자놀이, 점자달력, 단어카드, 윷놀이 등 8가지 교구재 키트가 개발됐으며, KT, 코리아나, 공감 아이앤씨, 근로복지 공단 등 매년 국내 130개 기업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복지관, 도서관, 학교 등 참여 기관들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담심포는 ESG 지표 중 ‘사회공헌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대표사례로 선정됐다. 한 개인이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떻게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담심포 박귀선 대표를 만나 사회공헌 활동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시각장애인 아동을 위한 교구재를 만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담심포는 처음에 봉사활동 모임으로 시작됐다. 공방을 운영할 당시 시각장애인 아동을 위한 교구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촉감이 부드러운 천이나 원단으로 만든 교구재는 아동들이 쉽고 재밌게 학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봉사활동 차원에서 사람들끼리 만들어서 맹아학교에 보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계속 보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활동을 이어오다가 2019년에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Q. 어떤 점에서 반응이 좋았나.
예를 들어, 윷놀이는 일반 사람들은 말을 던지면 어떤 말이 나왔는지 볼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잘 모른다. 더욱이 비장애인과 같이 참여한다고 하면 더 소심해진다. 그래서 윷놀이 주사위를 개발했고, 주사위 안에 딸랑이를 넣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청각이 매우 발달해서 주사위를 던져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든 윷놀이로 아이들이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많이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업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어느 기업은 상·하반기 봉사활동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에서 우리 프로그램이 1위였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봉사활동 프로그램 완성도가 높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Q.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잘 운영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수요조사다. 교과서가 아니라 교구재를 만들게 된 것도 시각장애인, 부모님, 선생님들이 교과서보다는 교과서와 연계되고 매일 활용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줬기 때문이다. 점자 학습만을 위한 교재보다는 놀이와 학습을 자연스럽게 연계해 친근하게 점자를 접할 수 있는 놀이를 개발한 것이다.
두 번째는 제품 퀄리티다. 제품 개발부터 보급까지 늘 수요조사를 하고, 수요와 의견을 반영해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제품 퀄리티가 높다. 시제품을 학교에 보내 시각장애 아동, 부모님, 선생님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제품 수정을 거친 다음에 최종 개발한다. 시각장애 아동들에게 맞춤화된 제품이기 때문에 활용도가 굉장히 높다. 키트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피드백을 늘 받는다. 바느질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제는 키트 안에 미리 바느질 구멍을 다 뚫어놨다. 실만 연결하면 되기 때문에 제품 불량률이 5%도 안된다. 사람들이 만든 제품을 우리가 먼저 받아서 제품 검수와 수리를 마친 다음에 완성품만 보낸다.
키트는 폐페트병으로 만든 원단으로 개발했고, 키트 실과 손뜨개질 실도 다 순면이다. 전에 만들었던 우리 제품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생각에, 포장지를 제외하고 모두 친환경 재료로 바꾸었다. 우리 제품이 서울산업진흥원 (SBA) 우수 상품으로 소개됐는데 친환경 코드가 없어서 직접적인 인증을 받지는 못했지만, 원단 제조 회사가 안전 검사를 통과했다. 보급한 이후에도 맹아학교에 필요한 수량을 늘 체크하기 때문에 수요자들에게 필요한 데이터를를 항상 갖고 있다. 기업들이 만족하고 신뢰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Q.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이용하려면 키트 확장성을 높여야 한다. 어떤 노력을 하나.
여전히 교구재의 다양성이 부족하다. 영유아에서 13세까지를 위한 교재를 만든다고는 했지만, 고등학생이어도 우리 제품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우리도 제품 개발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키트 자체는 무척 단순하지만 하나 만드는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 장애아동 대상 자체가 시각장애에 국한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이면서 지적장애, 발달장애 등 장애가 복합적으로 엮여 있는 경향이 있어 대상자들에게 맞춤화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신, 보급률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맹아학교에 교구재를 보급하는 것 외에 복지카드, 병원 진료 등 증빙서류만 있으면 개인들에게도 다 지원한다.
선택과 집중도 필요했다. 이전에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공예 양성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강사자격증 프로그램이 12개 정도 된다. 코로나19 이후 이런 프로그램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내년에 시각장애 아동 부모 중 경력단절인 여성과 암 경험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Q. 담심포 자체적으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나.
양주시 사회적경제 협의회, 구로, 강남시, 경기도 자원봉사센터 등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백혈병 어린이 병동, 동방사회복지회, 서울대병원 등과 함께해서 사회공헌 활동을 운영하기도 한다. 장애인들을 위한 북콘서트를 열었고, 긴급 상황이 있을 때는 현물 지원도 했다. 우리는 제품 개발도 하지만 보급에 집중하기 때문에, 국내에 기부 자원을 보급·기증할 곳을 찾아 기관 풀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에도 국립암센터에서 동화책, 애착인형 등으로 플리마켓을 열 예정이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장애인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외에 난민 아동을 위한 창작 동화책을 만들어 해외 난민들에 보급했고, 암 경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 암 환자 대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윤슬 케어 사회적기업과도 협력했다. 암 치료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손 뜨개실, 도안집 책 등을 만들었다. 난민 아동 동화책은 글작가, 그림작가, 디자인, 인쇄 등 우리 수익의 일부를 재투자해 지원했다.
Q. 사회공헌 활동 외에 사회적기업으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매년 사회적기업 경영 공시에 참여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우리 사업과 활동을 주기적으로 공개한다. 사회적기업은 유리상자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활동을 하는지, 어떤 기업, 몇개 기업이 참여했고, 어떤 키트를 개발했는지, 보급 이후 어떤 결과와 성과가 있었는지 등을 세부적으로 공개한다. 기업 CSR 담당자들과 주로 일하다 보니 데이터를 잘 기록해서 정확한 수치와 활동 내용,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내년에는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 계획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