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가장 취약한 업계는?
금융감독원ㆍ이화여대, 그린금융 주제로 국제컨퍼런스 기후위기 대응 안하면 BIS 비율 낮아져 줄도산 등 경제 위기 맞을 수도
8813건, 1028억원.
올해 역대급 장마가 이어지며 보험사에 접수된 차량 피해 현황이다. 2003년 태풍 매미 당시 911억원, 2011년 집중호우 당시 993억원 등 역대 최고 피해금액들을 훌쩍 넘겨 처음으로 1000억원 대를 뛰어넘었다. 최근 태풍 하이선의 피해액까지 고려하면, 보험사의 피해는 역대급으로 커질 전망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경제는 침체기에 들어설 것이다.”
금융감독원과 이화여대가 ‘그린금융’을 주제로 22일 개최한 'Future of F·I·N 국제컨퍼런스'에 참여한 연사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한 얘기다. 이 자리에서 황재학 금융감독원 선임조사역은 “기후변화에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2028년 국내 은행들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최저 4.7%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통상 BIS 자기자본 비율은 8% 이상을 유지해야 안정적이라고 보는데, 이 비율이 반토막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탄소배출 감축비용을 신기술 개발노력 없이 탄소배출권 구매 등으로 충당하는 경우와 신기술 개발 등을 가정한 경우를 나눠서 스트레스트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 결과, 2026년까지는 신기술 개발 노력이 없어도 은행의 BIS 보중주자본비율에 영향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국내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도 급락했다. 특히 2029년에는 국내은행 BIS비율이 4.7%까지 떨어져 최소의무비율 4.5%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BIS 자기자본 비율이 낮아질 경우, 은행 줄도산은 물론 다시 경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실제로 2011년 말 삼화저축은행, 부산저축은행, 솔로몬저축은행, 보해저축은행 등이 줄파산하며 예금을 찾지 못했던 이유도 이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선제적 대응이 이뤄진다면 11.7%로 안정적인 수준에서 관리될 것으로 추정됐다.
황 연구원은 "물론 4.7%라는 수치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라면서도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경제가 점차 경기침체에 빠져 BIS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지표가 나빠지면서 어려운 시기에 돌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다만 금융권과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황 연구원은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후위기에 취약한 업종들을 발표했다. 금융감독원은 기후위기가 금융권에 미칠 영향을 조사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TF를 꾸리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테스트 모형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가장 취약한 업계는 ▲철강 ▲전력발전 ▲수송 ▲금속 ▲화학 업계로 나타났다. 이 업종들은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용이 대출 잔액보다 높다. 타 업종에 비해 많은 탄소 배출을 하기 때문이다. 신기술 도입 등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자기자본 비율을 유지하지 못해 장기적으로 건전성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못한 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면, 한국 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황 연구원은 “이제 탄소 배출이 수익성에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지금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물리적 리스크 넘어 이행 리스크까지
다방면으로 몰려올 기후리스크
기후변화는 이미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사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집중호우와 산사태 등으로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은 높아진다. 이는 보험사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지구온난화로 폭염이 이어진다면 농산물 피해가 커지고, 이에 따라 농·식품 업체에 내준 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한다.
금융감독원은 이를 인식하고, 대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기후리스크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윤 금감원장은 “금융시스템의 기후리스크 평가와 이를 건전성 감독과정에 통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흐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새라 브리든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 상임이사는 "5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가 금융기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지만, 앞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리스크는 모두 금융권이 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후위기는 물리적인 리스크를 넘어, 이행 리스크까지 불러일으키고 두 리스크가 조합되면서 예측할 수 없는 위기의 정도와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브리든 상임이사는 “기후위기는 엄청난 규모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며 “동시다발적으로 광범위하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은행 뿐 아니라 경제 전반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알라 코우다지에 IPCC 선임연구원은 “좌초자산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도록 공공자금 등이 투입돼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저탄소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석탄 발전 등을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이행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좌초자산에 광범위하게 투자했기 때문에, 이를 안전하게 매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신기후체제’ 이행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봤다.
연사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정보공개’라고 입 모아 얘기했다. 황재학 연구원은 “기업들은 어떻게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지, 사업에 어떻게 영향이 오는지, 어떻게 탄소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지 몰라서 기후위기 대응을 포기하기도 한다”며 “적극적인 정보공개를 한다면, 금융권 등이 함께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 영란은행 기후전략담당자는 “리스크가 측정되기 위해선 정보 공개가 필수적”이라며 “모든 단계는 21년까지 준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