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배터리 핵심 리튬 규제하나
미국 IRA법안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은 배터리 리튬 규제에도 제동을 걸었다. EU위원회는 올해 6월 배터리의 주요 원자재인 리튬을 독성물질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럽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EU가 미국의 IRA법안과 경쟁하기 위해선 규제는 풀고 더 나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EU는 배터리의 주요 원자재인 리튬을 1A 독성 물질로 분류하겠다고 나섰다. 리튬이 임산부 및 태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만약 리튬이 독성 물질로 분류되게 되면, 리튬 채굴·가공·음극 생산·재활용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IRA법을 통과시키면서, 유럽 배터리 업계는 EU가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기는커녕 유럽에 투자할 동인을 줄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배터리 업계는 “리튬이 독성 물질로 분류되면 리튬을 취급하는 회사들은 추가적인 안전 조치의 대상이 되고, 유럽의 잠재적인 리튬 정제업체와 배터리 제조업체들에게 수백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꼴”이라며 “이것은 미국, 중국, 영국에 붙지 않는 비용”이라고 했다.
스웨덴의 노스볼트 또한 유럽 추가 투자 결정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스볼트는 스웨덴 북부에 기가팩토리를 두고 BMW사와 폭스바겐사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노스볼트는 “미국에서 IRA법이 시행되면 생산비용은 30% 낮아진다”며 “유럽에 추가 투자를 할 유인이 없다”고 했다.
이런 반응에 EU 집행부는 리튬 규제 결정을 새해로 연기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이달 초 전기차 공급망의 중요성과 IRA법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EU에 투자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 인센티브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EU의 이중적인 입장에 배터리 업계는 혼란스럽다. EU는 세계 최대 전기차 보급국이 되기 위해서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위한 중요 원자재법(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공표한 바 있다. △유럽 내 광물 생산 △폐배터리 재활용 등 순환경제 투자 △공급망 다변화 등의 목표를 담은 법안이다. 그러나 리튬을 독성으로 분류한다면 자국 내 원자재 공급망 구축과 폐배터리 활용 등 순환경제 구축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린 리튬 리피닝(Green Lithium Refining) 리차드 테일러 창립자는 “미국과 같은 나라들은 문을 열고 장벽을 허물고, 전략적으로 배터리 금속 공급망을 유치하고 구축하기 위해 납세자들의 돈까지 동원하고 있는 시기에 유럽은 기업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우리 기업도 IRA법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LG화학 신학철 대표이사 부사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비유적으로) 빙판 가장자리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게 아니라 충분한 공간을 유지하고 안전한 길을 가려고 노력 중”이라며 “스케이트를 타는 중에 빙판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부사장은 “고객사에 IRA를 준수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몇 가지 불명확한 시나리오가 존재한다”고 했다. 만약 미국 업체 소유의 광산을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 조립한다면 명확하겠지만 그 사이에 많은 시나리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결국 미국 정부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모든 세부 사항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IRA법이나 EU의 RMA법을 준수하는데 비용이 부과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전기차 구매 시 소비자에게 7500달러의 보조금 뿐 아니라 북미 소재 생산시설에 대한 세금 경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이런 인센티브가 비용을 상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IRA법에 한국을 비롯한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이 반발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IRA의 세부 사항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