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리파워(REPower) 에너지 프로젝트 범위 및 추가 자금 지원 확대
탄소 시장에 200억 유로 추가 자금 지원
유럽연합이 러시아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을 낮추기 위해 리파워(REPower) EU 정책에 200억 유로(약 27조원)의 추가 자금을 마련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고 지난 1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합의는 유럽 에너지 공급을 다각화함으로써 EU의 에너지 독립성을 강화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내년 발효 전까지 유럽의회와 이사회의 공식 승인을 받아야 한다.
리파워 EU 정책은 지난해 5월 최종 발표됐으며, 2030년 이전까지 러시아 석유와 가스 의존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녹색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자 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즉, 에너지 효율 및 에너지 저장 용량을 늘리는 데 투자해 EU 에너지 시스템의 복원력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번 추가 자금의 60%는 EU 혁신기금의 보조금, 40%는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금을 통해 마련될 예정이다. 자금 할당 비율은 회원국들의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 투자 가격 상승, 유럽 결속 정책(cohesion policy)을 고려해 반영된다.
8000억 유로(약 1114조원) 규모의 EU 혁신기금(Innovation Fund)은 EU 회원국들의 저탄소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으며, EU 탄소배출권거래제도(ETS)에서 탄소 배출권을 판매한 수익을 저탄소 기술이나 재생에너지에 재투자한다.
올해 유럽 탄소시장 거래를 통해 얻은 수익도 추가 자금원에 속한다. 유럽위원회는 당초 탄소 판매를 통한 수익으로 새로운 에너지 투자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최근 유럽 내 탄소 공급 및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가 더욱 엄격해지면서 탄소배출권 거래량도 증가했다. ICE 선물거래소의 유럽 탄소배출권(EUA)은 톤당 88유로(약 12만원)로 거래됐다. 동절기 에너지 사용이 늘면서 12월 탄소배출권 가격이 한 달 새 12.44% 증가하기도 했다.
이번에 마련된 200억 유로의 추가 자금은 건물 에너지 효율 향상, 에너지 저장 지원, 탈탄소 산업, 재생에너지 그리드 통합, 전력 저장 및 무배출 운송 지원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주로 사용될 예정이다. 바이오 메탄, 화석연료 없는 수소 등 재생에너지 인프라 및 설비에도 투자할 것이다.
루마니아 지크프리드 무레산 의원은 “이번 추가 자금의 30%는 국경을 넘는 에너지 프로젝트에도 할당될 것”이라며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국가들이 에너지 빈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리파워 수정안 결의해 에너지 저장소 범위 확대
유럽연합은 “러시아는 유럽 최대 가스 공급국이었지만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며 “기후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는 현지에서 생산된 재생 에너지와 에너지 절약으로 대체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리파워 EU 회원국들은 올 2월 1일부터 2050 탄소 목표에 대응하는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 개혁안과 탄소 시장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개괄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EU 회원국은 국민총소득(GNI) 6.8% 이상인 경우 대출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번 계획에 대해 회원국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이 제안이 탄소 시장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체코 대통령은 “이번 합의안은 EU에게 필요한 투자와 개혁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했다”며 “EU 에너지 부문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 위한 중요한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유럽은 러시아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면서 석유 인프라 적응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면서도 “자금 투자는 EU의 2030년 및 2050년 기후 목표에 대응해야 하며, 회원국들이 투자 자금을 받은 만큼 에너지 자립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EU의회는 리파워 재생 가능 에너지 프로젝트에 독립형 에너지 저장소를 확대하겠다는 수정안에도 의결했다. 기존에는 공동 에너지 저장소만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열 펌프, 전력, 열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원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발전소와 재생에너지 생산 발전소, 재생에너지를 난방 및 냉방 네트워크에 통합하는 저장소가 있었다.
이번에는 에너지 저장소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독립형 저장소까지 넣기로 했다. EU는 다양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촉진시킬 수 있도록 핀란드의 펌프 수력 및 공동 소재 배터리 저장소 등 에너지 저장소 구축을 국가 차원에서 자금 지원해나갈 것이다.
에너지 위기 대응해 LNG 장기 계약 추진 예정
한편 EU는 내년 더 많은 가스 거래를 추진하기 위해 천연가스(LNG) 장기 계약 및 공동 구매를 추진할 계획이다.
향후 2년 이내 가스 공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서 57% 줄일 예정이다. 유럽연합 기후 책임자 프란스 티머만스는 이집트에서 열린 COP27 정상회의에서 2030년 유럽연합의 감축 목표를 기존 55%에서 57%로 높였다.
싱크탱크 브루겔의 시니어 펠로우인 시몬 타글리아피에트라는 “2030년까지 총 가스 소비량은 30%, 즉 1000억 입방 미터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러시아의 가스 공급 대부분을 대체해야 하기 때문에 유럽이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이 가스 공급 계약에 발 벗고 나선 건 내년 가스 부족 사태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2일(현지시간) “유럽연합은 내년에 가스가 부족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며 “각국 정부가 에너지 절약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더 빨리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IEA는 “올해는 가스 저장 탱크로 위기를 넘겼지만 내년 에너지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가스를 많이 소비하는 건물을 개조하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난방을 히트펌프로 대체하고, 재생에너지를 대규모로 확장하기 위한 보조금과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IEA 추정에 따르면, EU는 내년 270억 입방미터(bcm)의 가스 부족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EU는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가스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가스 소비량의 대부분을 미국,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수입을 하고 있으며, 환경단체들은 이를 두고 유럽이 ‘에너지 식민주의’라고 비난했다.
천연가스 생산으로 인한 메탄 환경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최근 천연가스 주요 수출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집트는 수출용 LNG를 생산하기 위해 화석 연료 사용을 늘렸다. 2021년 후반부터 천연가스 생산이 증가했으며, 화석연료 사용량과 화물 수송량 모두 4-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천연가스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EU도 메탄이나 탄소 배출 문제에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 기독민주당(CDU)는 “유럽 정부들은 단기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면서도 더 큰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가스 부족 발생에 대비해 에너지 집약 산업의 생산을 축소하고 가계 및 주요 인프라에 우선 공급하는 등 가스 절약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