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폐기물 제거 연합(AEPW)을 둘러싼 의혹 팩트체크

2022-12-29     박지영 editor

올해 9월 ‘정교한 그린워싱’ 저격을 받았던 플라스틱 폐기물 제거 연합(AEPW)가 또 한 번 의혹에 휩싸였다. AEPW 전신이 미국 화학협회라는 플라스틱 생산자를 대표하는 업계 로비단체이며, 플라스틱 제거를 위한 노력 또한 생산이 아닌 재활용에 머물러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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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PW에는 엑손모빌, 셸과 같은 빅오일과 바스프, 다우와 같은 화학기업, 베리(Berry), 실드에어(Sealed Air)와 같은 포장 및 용기 회사, 펩시코와 P&G를 포함한 소비재 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SKC가 있다.

블룸버그는 이 단체에 대한 르포를 통해 AEPW가 주장하는 플라스틱 감축 노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했다. AEPW 작업에 정통한 12명 이상의 사람들과 인터뷰와 보고되지 않은 내부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의혹 1, 미국화학협회(ACC)가 배후인가?

지난 9월 글로벌 금융 싱크탱크 ‘플래닛 트래커(Planet Tracker)’는 AEPW 회원사 대부분이 ACC 소속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블룸버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AEPW가 태어난 배경도 ACC 회원사들의 모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ACC는 미국에서 플라스틱세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등 플라스틱 관련 주요 정책에 반대하는 로비단체다. 이번 UN 플라스틱 협약에서는 주요 내용에 반대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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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플래닛 II는 해양 플라스틱 문제를 조명해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2018년 6월, 엑손모빌, 셸 등 ACC 회원들은 연례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브로드무어 리조트에 모였다고 한다. 2017년 말 국제적으로 논란이 된 다큐멘터리 ‘블루플래닛II’가 화제가 되면서다. 어린 바다 새들이 플라스틱을 먹고, 거북이 또한 플라스틱에 얽혀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ACC 회원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모였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셸의 화학담당 부사장이었던 그레이엄 반트 호프는 "엑손모빌 대표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며 대형 석유화학 회사 지도자들이 화학 산업의 지원을 받아 별도의 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에 ACC 이사회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는데 노력하는 글로벌 기업 연합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표했으며, 소비자 제품 및 폐기물 관리 기업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구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부문은 이미 ACC 일원이었기 때문에 소비자 회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쟁점이었다고 한다. P&G는 가입했지만, 유니레버와 네슬레 같은 몇몇 대기업은 그들 스스로 또는 다른 파트너십을 맺겠다며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AEPW에 참여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ACC(미국화학협회)의 회원사다. 

참여 기업을 모은 ACC는 기업의 인맥을 활용해 싱가포르에 AEPW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회비 청구 등 백오피스 업무를 관리했으며, AEPW 2019년 세금 신고서에 따르면 130만달러의 창업 비용도 ACC가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EPW는 이후 ACC에 그 돈을 갚았으며, AEPW 조슈아 바카 플라스틱 담당 부사장은 "ACC는 동맹 출범에 관여하는 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의혹 2, 플라스틱 생산자 주머니에서 나오는 자금?

블룸버그 그린에 따르면, AEPW의 큰 손은 석유화학기업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엑손모빌은 AEPW에 약 1250만달러(약 158억원)를 출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펩시코는 750만달러(약 95억원)를 냈다. AEPW에 정통한 사람들에 따르면, 엑손모빌은 가장 큰 공헌자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다른 어떤 회원사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보도자료부터 정책 설명회까지 AEPW의 모든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는데, 이는 다른 기업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한번은 엑손모빌의 대표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에 대한 논의를 제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엑손모빌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해결하고 재활용률을 향상시키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AEPW 또한 "석유화학 회사들이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하고 있어도, 어떤 기업도 다른 기업보다 우선시되지 않으며 어떤 부문도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AEPW는 집행위원회의 구성이나 후원 리스트와 금액은 웹사이트나 연간 경과보고서에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플라스틱 생산업체인 석유화학 기업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집행위원회의 경우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집행위원회인 15개사 중 엑손모빌, 셰브론, 바스프, 셸 등 9개사는 석유화학기업이며, 플라스틱 포장업체도 2개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의혹 3. 진정 플라스틱 감축을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인가?

AEPW의 목표도 논란이다. AEPW는 2019년 출범 당시 5년간 1500만톤의 플라스틱을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2021년 기준 AEPW가 제거한 플라스틱은 3만4000톤, 당초 목표의 0.2%에 해당하는 수치다. 게다가 제거했다고 주장하는 3만4000톤 또한 실제로 재활용된 것은 아니다. 재활용하기에 너무 얇거나 오염되어 있어, 매립되거나 소각된 것이다.

AEPW는 “수거된 플라스틱의 일부가 소각되거나 매립지로 보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우리 프로젝트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미래에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AEPW 프로젝트 초점이 생산이 아닌 하류 재활용(재활용, 회수)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은 3억5300만미터톤을 기록했으며, OECD는 2060년까지 이에 3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약 9%만이 재활용되고 있으며, OECD는 2060년까지 그 수치가 17%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생산자가 플라스틱 사용을 감축해야 하지만, AEPW는 이미 배출된 쓰레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AEPW가 제공하는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사용된 플라스틱을 처리하는 폐기물 관리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을 지원한다. 2019년 이후 약 50여개 프로젝트에 5년간 최대 15억 달러(약 1조9000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블룸버그가 현장에 가서 살펴본 결과, AEPW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몇몇은 소개하고 있는 바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엑스프레스 펄이라고 불리는 컨테이너선이 스리랑카 해안에서 불이 나 인도양에 가라앉았다. 누들이라고 불리는 수십억개 플라스틱 알갱이는 스리랑카 서쪽 해안에 쌓이게 됐다. /BBC

①2021년 5월, 엑스프레스 펄이라고 불리는 컨테이너선이 스리랑카 해안에서 불이 나 인도양에 가라앉았다. 이 선박은 누들이라고 불리는 수십억개의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를 싣고 있었으며, 이는 스리랑카 서쪽 해안을 따라 씻겨 내려오기 시작했다. UN은 이것을 역사상 가장 큰 플라스틱 유출이라고 불렀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AEPW는 ‘스위피 하이드로’라고 불리는 8대의 기계를 기증해 스리랑카 해변 복구에 나섰다. 그러나 1년 뒤, 스위피 하이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몇 인치 깊이까지만 청소하고 모래가 젖으면 막히는 등 잘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료와 예비 부품도 필요한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스리랑카에서 사용하기에 어려웠다. 결국 해변은 여성들이 직접 손으로 큰 직사각형 체를 들고 흔드는 방식으로 청소됐다. 

②AEPW는 태국에서 대형 석유화학 시설이 있는 동부 지방에 ‘라용 폐기물 감축’이라는 재활용 계획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AEPW의 웹사이트에는 지역 재활용 운동을 주도하고 주민에게 쓰레기 분리수거 방법을 가르치는 지역 지도자를 어떻게 돕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또 사람들에게 플라스틱 분류법을 교육하기 위한 나폴리팟 가이드북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블룸버그가 현지에서 만난 지역 리더인 나파팟씨는 AEPW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며 가이드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지역 재활용 센터에서 플라스틱 더미를 분류하고 라벨을 자르고 병을 색깔별로 나누고 있었는데, 그녀는 태국 정부의 환경 기금으로부터 약간의 현금을 지원받아 2019년에 재활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파팟씨는 “우리 스스로 이 모든 것을 시작한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이건 자원봉사지 이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AEPW는 이후 현지 파트너인 태국산업연맹을 통해 나파팟씨와 '계약'을 맺었으며, 나파팟씨에게 직접적으로 자금을 제공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③가나에서 AEPW는 지역 사회가 재활용을 통해 새로운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아사세 재단을 통해 순환 재활용 사업체인 ‘캐시잇(Cash It)’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설립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했다고 했다. AEPW 웹사이트에 따르면 수집된 플라스틱 폐기물은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있는 캐시잇 재활용 센터에 판매되어 분쇄되고 제품이나 건축 자재로 재사용되도록 재가공 되고 있다고 한다.

캐시잇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한다고 했지만, 플라스틱 수집소는 사실상 비어있었다./캐시잇 홈페이지

그러나 블룸버그가 방문했을 때 마을의 수집소는 사실상 비어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재활용 수백개의 쓰레기봉지는 가득 차 있었지만, 가공을 위해 이를 실어가는 모습은 목격되지 않았다. 캐시잇의 다나 모소라 창업자는 “발전소를 짓고 용량을 늘려야 해서 지금은 쉬는 상태”라고 말했다.

④필리핀에서는 현지 NGO 플라스틱 플라밍고(Plaf)를 통해 재활용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다만 플라스틱 폐기물을 버리는 고객에게 더 많은 플라스틱을 증정하는 인센티브가 제공되고 있었다. 가령 플라스틱을 가져다 주면 작은 향수나 로션 병, 손세정제가 든 미니어처 페트병 등 플라스틱을 증정하는 것이다. AEPW는 플라스틱 제품을 인센티브로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그린피스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재활용 비율은 버려지는 플라스틱 양을 절대 앞서지 못할 것이 증명됐다고 한다. 비영리단체 비욘드 플라스틱의 회장이자 미국 환경 보호국의 전직 관리인인 주디스 엔크는 "플라스틱 업계는 플라스틱이 근본적으로 재활용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짚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