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수소 산업의 과제, 상용화 전에 '누출' 이슈 잡아야
수소 자원의 친환경 이점, 누출 위험에 무색해진다
전 세계 정부와 에너지 기업들이 친환경 미래 연료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녹색 수소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편 녹색 수소 산업에서 대기 중에 수소를 누출하면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지난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대기 중에 수소가 누출돼서 발생할 수 있는 온실효과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으로, 새로 떠오른 녹색 수소 산업의 맹점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밝혔다. 수소를 생산, 운송, 저장하는 과정에서 대기 중에 10%가 누출되면, 사실상 화석연료 대신 녹색 수소를 사용하는 환경적 이점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올해 나왔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한편 여러 국가에서 녹색 수소 산업에 대한 재정 지원은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에선 녹색 수소 산업에 대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액 공제를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에 포함했고, 유럽연합(EU)에선 52억 유로(약 7조원)의 녹색 수소 프로젝트 보조금을 승인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각종 탄소 저감 기술을 장려하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중 수소환원제철(수소로 철을 생산하는 기술) 방식에 대한 지원도 포함됐다.
과학자들은 수소가 대기 중으로 누출되면 온실가스를 파괴하는 분자 간 밀도를 줄여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고 로이터 통신은 밝혔다. 한편 누출된 수소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는 기술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은 각 기관에서 투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수소 누출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한 연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콜롬비아 대학의 글로벌 에너지정책센터 연구원인 앤-소피 코보(Anne-Sophie Corbeau)는 “수소 누출에 대한 정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수소 누출을 측정하기 위한 설비를 개선하고 누출 측정을 의무화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콜롬비아 대학에선 오는 2050년경 수소 사용이 보편화되면 누출되는 비율은 최대 5.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노르웨이의 기후 연구 기관인 키케로(CICERO)에서도 수소 누출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오는 2024년 6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키케로의 연구책임자인 마리아 샌드(Maria Sand)는 “수소 누출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에 답해야 한다”며 “수소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수소 전환 이전에 파악해야 할 요소가 남아있다”고 밝혔다.
수소 누출 측정, 자원 가치와 직결된다
현재 정유, 화학, 비료 산업에서 사용되는 수소는 천연가스 사용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통해 생산된다. 한편 녹색 수소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기 분해로 물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 없이 생산된다.
수소의 가치는 수소 연료를 사용하면서 나오는 부산물이 화석연료의 부산물보다 오염이 적다는 데 있다. 단점으로는 생산 비용이 많이 들고, 누출되면 폭발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점이 있다. 이처럼 누출의 위험은 녹색 수소를 상용화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라고 로이터 통신은 분석했다.
수소 산업 연구진은 수소 분자가 메탄 분자보다 작고 가벼운 탓에 통제가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수소 누출의 위험이 녹색 수소 산업을 폐기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수소 연료가 지닌 친환경의 이점은 사라질 것으로 분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계획 또는 실행된 녹색 수소 프로젝트는 약 300개 정도인데, 그중 시범 시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컨설팅 기업인 DNV는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수요 가운데 녹색 수소가 약 12%를 충족해야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DNV는 현재 녹색 수소 기술의 개발 속도가 유지되면 오는 2050년 녹색 수소의 비중은 약 4%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정유, 화학, 비료 산업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 기반의 수소 자원을 대체하려면 전 세계 모든 풍력 터빈과 태양광 전지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약 두 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각국 정부에선 녹색 수소를 점차 늘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EU는 수송 부문의 녹색 수소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수소연료 차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구멍 난 파이프…수소 운반책도 개선해야
로이터 통신은 수소 사용이 늘면 화석연료 업계에선 기존 가스관이나 천연가스 터미널 등의 인프라를 이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천연가스는 대부분 메탄으로 구성되는데, 메탄 누출량을 분석한 결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지금까지 수소 누출은 정밀하게 측정되지 않았지만, 수소 누출은 더 각별히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키케로의 연구책임자인 샌드는 “수소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점이 많다”며 “수소가 메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녹색 수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업에선 수소 누출에 관해 신중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소가 파이프라인에 들어가면 금속 파이프가 약해져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BP는 오는 2025년부터 영국 등에 위치한 시설에서 ‘하이그린 티사이드(HyGreen Teesside)’라는 녹색 수소 프로젝트 가동할 계획이다. BP는 수소 누출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밝혔다.
BP의 수소 및 탄소 포집 부문 펠리페 아르벨라에즈(Felipe Arbelaez) 부사장은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에서 수소 누출을 얼마나 낮게 유지할 수 있는지 측정하는 노력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