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ESG ⑨】 석탄발전소 폐쇄, 법제화 전에 보조금 지급부터?
“원전 및 석탄화력발전 비중 축소를 유도하겠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재입법 예고하며 2034년까지 조기 폐쇄하는 석탄발전소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현 정부의 탈석탄 정책기조와 일치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7일 ‘푸른하늘의 날’을 맞아 “임기 내(2022년) 석탄발전소 10기를 폐쇄하고, 2034년까지 20기를 추가로 폐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2034년까지 폐쇄 예정인 석탄발전소는 30기, 전체 석탄발전소 60기의 절반에 해당된다.
하지만, 탈석탄 정책을 둘러싼 세부 집행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찬반이 섞이면서 논란이 발생할 우려가 제기된다. 이같은 논란은 이미 독일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민 합의로 보조금 지급 결정됐지만
여전히 시끌시끌한 독일
독일은 탈석탄 법안을 추진하며 이미 보조금 지급에 대한 논의를 끝마친 상태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조금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업가치가 떨어져 보조금을 굳이 지급하지 않아도 석탄발전소는 폐쇄 될텐데, 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등 다른 투자처 대신 석탄에 세금을 쓰는 것은 ‘낭비’라는 주장이다.
독일은 2022년까지 탈원전, 2038년까지는 탈석탄을 실현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탈석탄법'이 통과되면서 2026년까지 경매를 통해 단계적 폐지를 추진하고, 2027년 이후에는 강제 폐지할 계획이다. 무조건적 보조금 지급 대신, 경매제도를 도입해 석탄화력발전 산업계에게 폐지 인센티브를 주는 구조다. 경매가 진행되면서 최대 보상가격을 줄여 발전사업자가 경매에 빠르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최근 보상금이 어떻게 계산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독일의 에너지 기업 RWE, LEAG에게 화력 발전소를 폐쇄한 대가로 40억유로(5조4700억원)을 주겠다고 밝혔는데, 협상 과정을 깜깜이로 진행했다. 환경단체들은 “최대 20억 유로까지 보조금이 부풀려졌을 수도 있다”며 책정 과정을 공개하라고 법원에 요구했지만, 이를 기각하면서 갈등은 커졌다.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IK)의 오트마르 에덴호퍼 소장은 "석탄 종료에 드는 비용이 불필요하게 비싸다"며 "환경을 오염시킨 원인 제공자가 책임을 지게 하는 오염자 부담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보조금 지급이 애초부터 불필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1월 독일 잡지 더 슈피겔은 LEAG 그룹이 석탄화력발전소가 저렴한 재생에너지에 비해 수익성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어 이미 폐쇄를 결정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수익성 때문에 사업 철수를 이미 결정했는데, 정부가 추가적으로 보조금을 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2018년 기준 독일의 전력소비량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38.2%으로 35%를 차지하는 석탄보다 높다. 꾸준히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증가하면서 석탄보다 더 저렴해지고 있다. 또한 EU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상당한 양의 배출권을 구매해야하는 석탄화력 업계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석탄화력 사업의 수익성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탈석탄 보조금 찬반, 전세계적으로 의견 엇갈려
전 세계적으로도 탈석탄 보조금 지급에 대한 찬반은 갈린다. 마르그레테 베스티거 유럽 집행위원회 집행위원은 “EU의 그린딜을 달성하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는 필수”라며 “이들에게 폐지에 따른 보상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국제 컨퍼런스에 참여한 알라 코우다지에 IPCC 선임연구원 또한 “좌초자산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도록 공공자금 투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석탄을 중심으로 에너지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드는 ‘전환비용’을 정부도 함께 부담하면 좌초자산을 안고 있는 민간의 부담이 경감돼 에너지 전환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안토니오 구테레스 UN 사무총장은 24일 열린 UN총회에서 “지구온난화에 기여하는 화석연료 산업을 지원함으로써 경기 부양 자금을 버리지 말라”고 발언했다. 안토니오 사무총장은 “대규모 투자자들은 석탄 보조금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며 보조금 지급대신 녹색 기술, 재생 에너지, 지속 가능한 운송 구축 등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 탈석탄 보조금 '전력기금'에서 쓰기로
전기요금 인상 아니냐는 의혹에는 선 그어
국내에서 이 문제는 아직 첨예한 갈등 국면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향후 민감한 사안으로 커질 잠재력이 크다. 전기요금 인상안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폐지에 따른 사업자 손실분을 '전력기금'을 통해 보전할 것임을 밝혔다. 여기에 탈석탄 보조금 비용까지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탈원전과 탈석탄을 보전하느라 기금 소모가 계속되면,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진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잇따랐다.
전력기금은 소비자들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3.7%씩 떼서 조성하는 '준조세' 성격의 기금이다. 2018년 기준 전력기금 재원은 4조1848억원 가량 된다. 한수원은 월성 1호기의 보전비용으로 설비보강 5929억, 4기 부지매입 비용(1000억원) 등 탈원전에 따른 정책비용으로 7000억원을 추산하고 있다고 한다. 탈석탄 보조금 규모가 어느 정도 될지 추산된 비용은 없지만, 석탄발전이 국내 발전량 1위인만큼 보조금 규모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전기요금 인상 등 추가적인 국민부담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산업부는 “30기 폐쇄 결정은 사업자의 자발적인 폐지의향을 토대로 반영된 것이기에 따로 비용이 들진 않는다”며 “향후 사업자 비용보전은 이미 조성돼 있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지출 한도 내에서 적법·정당 여부 등에 대한 비용산정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집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조금 지급 이전 탈석탄 법제화 추진돼야
사회적 공론화 과정 필요해
독일과 한국은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독일의 사례에서 몇 가지 논의 지점은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의 경우 2018년 에너지 전환을 위해 ‘석탄 위원회’를 발족했다. 석탄화력 사업자에게 어떻게 경제적 손실을 보전해줄 것인지에 대한 논의 외에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석탄광 지역 주민들의 고용 보장과 지역 산업에 대한 지원까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로 보조금 지급이 결정된 것이다.
또한 탈석탄법에 에너지 전환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지 않기 위해 ‘전력요금 상승은 없을 것’이라는 조항이 포함됐다. 온실가스 배출권 수익으로 전력공급 안정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독일의 보조금 지급은 ‘탈석탄법’ 제정과 함께 진행되면서 잡음이 크진 않았다. 재생에너지가 활성화 된 환경이어서 도입은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차이점도 있다. 한국에서 석탄발전은 2019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40.4%를 차지하는 등 아직 주요 전력원이다. 환경운동연합 이지언 에너지기후 국장은 "해외의 경우 탈석탄 로드맵 등 체계가 잡히며 보조금 논의를 했지만, 국내의 경우 법제화 움직임이 없다"며 "보조금 지급을 결정하기 전 조기 폐쇄의 기준이 무엇인지, 석탄화력발전 종사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유도하는지 등 선행조건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싱크탱크 카본 트레커 이니셔티브는 지금과 같은 석탄화력발전을 계속할 경우 손실액은 1060억 달러(약127조원)로, 세계 최대 금액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탈석탄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탈원전과 달리 아직 크게 공론화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 정부 주도로 탈석탄 정책이 시행될 경우, 전환비용은 전기요금 인상에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