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 다농 소송과 영업권

2023-01-16     박란희 chief editor

연초부터 강력한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우선 프랑스의 유명 식품회사이자 에비앙, 볼빅, 액티비아 등의 브랜드로 알려진 ‘다농(Danone)’이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해 3개의 환경단체로부터 소송을 당했습니다. 소송 이유와 근거는 무엇일까요? 프랑스의 어마무시한 법률이지요. 2017년 제정된 ‘경계의 의무(duty of vigilance)’라는 법이 있는데, 에비앙이 이 법률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대기업은 자신들의 사업 운영이 환경과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악영향을 방지하기 위한 경계 혹은 주의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공급망 실사법의 프랑스 버전입니다. 영국미디어 더가디언에 따르면, 기후 소송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NGO들이 이 법안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브랜드 감사(brand audit)’ 조사에 따르면, 플라스틱 사용 10위에는 다농과 함께 코카콜라, 펩시코, 네슬레, 유니레버, 몬델리즈, 마스, P&G, 필립모리스, 페레로그룹이 포함돼있습니다. 다농은 2021년 포장용으로 75만톤 이상의 플라스틱을 사용했습니다. 

 

다농은 왜 소송을 당했을까 

소송을 제기한 곳은 ClientEarth, Surfrider Foundation Europe, Zero Waste France 등 환경 및 법률 캠페인 단체 3곳입니다. 다농은 강력 반발하며 “우리는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전 세계에서 12%(절대량 6만톤)를 줄이는 등 플라스틱 감소에서 이미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며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는 것이 한 회사에서만 이뤄질 수 없으며, 공공과 산업계 모든 참여자가 함께 해야 하고, 이것이 우리가 유엔의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을 채택하는 것을 지지하는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향후 파리사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궁금합니다만, EU의 공급망 실사법이 갖고올 엄청난 파괴력을 예상하는 신호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더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계의 의무법’은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라나 플라자 참사 이후에 도입됐습니다. 제가 이전 신문사 공익섹션 편집장을 맡았을 때 처음 기자를 해외 출장 보냈고, 당시 어떤 국내 언론도 보도를 하지 않았던 이슈에 대해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에 이 사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국내의 한 NGO가 캠페인 제안을 해와서 별 생각없이 오케이했는데, 막상 기자가 현장에서 보내온 사진과 기사를 보니 너무 슬프고 가슴 아파서 울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의 하청 의류공장이 모조리 라나플라자에 있었고, 불법 증축된 이 건물이 무너지면서 1100명이 넘는 이들이 건물더미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값싸고 빨리빨리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의 이면에 개발도상국의 저임금과 노동환경이 있었음을, 공급망에서 벌어지는 인권과 환경에 대한 생각을 처음 해보는 계기였습니다. 여하튼 이 사건 이후 프랑스는 일찌감치 ‘경계의 의무법’을 만들었으며, 올해 독일은 공급망 실사법을 실시하고, EU도 2024년부터 공급망 실사법을 이행하게 됩니다. 

 

기업의 영업권 박탈?

그런데 기업들로서는 이러한 소송이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3개 단체가 요구하는 것은 “플라스틱의 단계적 폐지를 포함한 새로운 계획을 6개월 이내에 발표하도록 강제하라”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뚝딱 요술방망이처럼 나오는 것도 아니요, 시간과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단기간에 몰아부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보고 영업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냐” “우리 회사 문 닫으라고 하는 것이냐”라고 반발합니다. 
네, 바로 그 지점입니다. 저는 유럽을 중심으로 점점 강력해지는 법규정과 캠페인, 소비자의 변화 등이 의미하는 방향이 바로 ‘영업권’ 혹은 ‘면허권’에 대한 개념의 변화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나오듯, 기업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면허권을 부여받은 법인격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면허권은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며, 언제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맥킨지가 쓴 보고서 중에서 ‘Does ESG really matter-and why?’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ESG는 회사의 온실가스 배출, 노동시장에 대한 영향, 공급업체의 건강과 안전 등 외부 효과를 해결하는 문제와 관련이 깊습니다. 문제는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파타고니아 나투라 등 ESG와 사업이 동시에 가능함을 보여주는 기업도 생겨난다는 점입니다. 결국 ‘소셜 라이센스(Social licence)’는 기업의 산소와 다름 없는데, 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 기업의 존재가 이익이라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플라스틱 때문에 우리가 못살겠다는데 이 기업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대중이 늘어나면, 해당 기업의 영업권, 즉 사회적 면허권을 박탈하려는 요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번에 소송을 한 단체들은 프랑스 법령을 따르도록 경고하며 프랑스에서 영업하는 네슬레 프랑스, 다농, 맥도날드 프랑스, 까르푸를 포함한 몇몇 식품 회사들에 반대하는 캠페인까지 시작한다고 합니다. 

 

도요타와 전기차 

사실 이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지 저도 확신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이 각 기업마다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입니다. 일본에서 지금 도요타가 초비상 사태라는 소식을 FT가 들려줬습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는 전기차 판매 목표치를 2년 연속 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요타의 첫 양산형 전기차인 bZ4X의 전망이 어둡고, 배터리 구동식 차량 출시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타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반면, 도요타는 전기차, 하이브리드 차량, 수소차까지 발을 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도요타 역사상 처음으로 전기차 리콜까지 발생해 생산과 판매가 몇 달 동안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연간 판매목표치인 5000대를 첫해에도, 이듬해에도 달셩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도요타는 새로운 기술팀을 작년에 만들었으며, 전기차용 공급망을 재편하고 생산공정을 처음부터 재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경쟁사인 테슬라, 폭스바겐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그룹인 소니까지 혼다와 함께 전기차 경쟁에 뛰어든 마당입니다.
소비자 혹은 사회의 변화를 재빨리 눈치채지 못하거나, 눈치채더라도 변화에 주저하거나, 변화 준비에 소홀할 경우 기업이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어제도 한 모임에서 ESG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중소기업의 ESG를 대기업이 도와야 하느냐” “ESG를 왜 모두가 해야 하느냐” 등등 언제나 그렇듯 고담준론입니다. 
하지만 저는 ESG라는 단어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ESG가 의미하는 사회적 함의, 즉 기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패러다임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지방대의 몰락이 서서히 다가오고 눈에 가시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급한 대책이 안 나오는 것처럼, 기후변화의 리스크도 비슷할 지 모릅니다.
9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의 유명 재보험사인 뮤닉리는 지난해 자연재해로 보험업계가 떠안은 피해보상 손실액이 1200억달러(약 142조원)이라고 합니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피해까지 포함하면 기후 재난으로 발생한 손실액은 총 2700억달러까지 불어납니다.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로 발생하는 보험손실은 16년 만에 비약적으로 급증했는데, 다만, 보상받는 국가들은 대부분 선진국에 치중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첫 아이 수능을 끝내 보니 왜 대학입시와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안 바뀌는지 이유를 알았습니다. 딱 1년만(재수하면 2년이겠지요) 내 문제이고, 그 전후는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부동산이나 다른 정책과 달리 교육은 방관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에서 보면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액을 보상 하느니, 하루빨리 기술개발과 예방 대책에 예산과 자금을 쓰는 게 훨씬 이득이겠지만, 그게 모두의 이해관계가 걸려있으니 좀처럼 변화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ESG라는 툴(tool)이 그런 변화를 위한 작은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박란희 대표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