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친환경 건물에 ‘녹색 프리미엄’ 가시화

해외는 상업용 부동산 중심, 국내는 대기업 사옥 중심으로 확산

2023-01-19     박지영 editor

#. 런던에서 창업한 조이 나자리 씨는 수개월 간 친환경 건물을 찾아다녔다. 오피스 빌딩은 비즈니스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고, 물려받은 지구에 관심이 많은 젊은 팀원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수개월 간 친환경 건물을 찾았지만, 매물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런던 시내 건물 중 친환경 건물은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겨우 입주했지만 재계약이 문제다. 친환경 빌딩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충족되지 않다 보니 임대료가 최소 50%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이 씨는 다음에도 친환경 건물에 입주할 것이라고 했다. “임대료와 지속가능성 중 단기적인 안목으로 전자를 택하는 게 오히려 그린 어젠다에 리스크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이 모양을 닮아 ‘거킨(Gherkin)’으로 불리는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 ‘30 세인트 메리 액스’ 빌딩. 친환경 건물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탄소감축을 위해 친환경 건물 전환을 추진하는 유럽에서는 친환경 건물이 시세보다 비싸지는 ‘그린 프리미엄’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에너지 진단과 성능 기준에 따라 개별 건축물의 단계적인 리모델링을 지원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벨기에의 주택증명서(Woningpas), 프랑스의 에너지효율증명서(Passeport Efficacité Energétique), 독일의 개별 건축물 리모델링 로드맵(Individueller Sanierungsplan) 등이다. 영국은 아예 최저에너지성능기준 미만(현재 E등급)의 건축물을 임대할 수 없도록 한다. 민간 임대용 건축물의 성능을 2030년 B등급까지 단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다.

에너지 및 기후 인텔리전스 유닛(Energy and Climate Intelligence Unit)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최대 기업 중 5분의 1이 넷제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며, 기업의 탄소배출량 중 대다수는 건물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감축을 위해 친환경 건물이 필요한 이유다.

MSCI 데이터에 따르면, 지속가능한 사무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친환경 건물 인증제인 BREEAM과 미국의 친환경 건물 인증제인 LEED에서 지속가능성 등급을 받은 빌딩과 그렇지 않은 빌딩 간 판매 가격 차이는 2022년 기준 26%에 달했다. 일종의 친환경 프리미엄이 붙는 셈이다.

친환경 건물로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선 비용이 들지만, 대다수 기업이 녹색 사무실에 투자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종합부동산 회사 JLL이 전 세계 13개국 1095명의 고위 부동산 의사결정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6%가 2025년까지 친환경 인증을 받겠다고 답했다. SBTi 등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친환경 건물에 프리미엄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직원 만족을 위한 측면에서도 친환경 사무실 선택은 필수가 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수십 년 만에 노동 수요가 공급을 넘어섰다. 영국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10월 실업률은 3.5%로 197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업은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입 직원들의 요구 중 하나인 친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영국 오피스 협의회 피터 크로더 부국장은 “거의 완전한 고용 환경은 직원이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나게 했다”며 “신입사원들은 사무실의 환경적인 역할을 더 궁금해한다”고 했다. JLL 조사에서도 부동산 의사결정자 중 80%가 “근로자들이 환경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더 기대할 것”이라고 답했다.

영국의 경우 정부 규제로 친환경 건물 프리미엄이 상승하기도 했다. 2023년부터 에너지성능인증 제도에서 E등급 미만을 받은 건물은 임대할 수 없다. 또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지난해 10월부터 기업은 정부로부터 난방 보조금을 받아왔다. 4월부터는 기업 요건에 따라 지원이 재평가되면서 지원이 끊길 수도 있다. 높은 난방비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피터 크로더 부국장은 “재정이 빠듯해지면서 지속가능성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면서도 “기후 긴급성이 높아지면서 지속가능성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지속가능성의 필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요구가 경제 상황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나진 않는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친환경 리모델링이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대기업 사옥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태양광 모듈을 설치한 LG사이언스파크./LG

LG그룹은 지난해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내 20개 연구동 중 18개 동의 옥상과 산책로에 태양광 모듈 8300여개를 설치했다. 400가구가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4㎿(메가와트) 용량의 에너지저장장치(ESS)도 갖췄다. 심야에 전기를 저장해 두고, 전력소모가 집중되는 피크타임에 꺼내 쓰는 방식으로 에너지 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태양광발전으로 사무실 조명에 사용되는 전력을 모두 대체할 수 있다./한화

한화그룹은 1987년 완공된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을 태양광을 사용하는 친환경 건물로 리모델링했다. 한화빌딩 남쪽과 동쪽 외관에 건물 일체형 태양광발전 시스템(BIPV)을 설치하고,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태양광발전으로 사무실 조명에 사용되는 전력을 모두 대체할 수 있다.

롯데 주요 계열사가 입주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는 연간 1만7564㎿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약 650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양과 맞먹는 규모다. 물과 외부 공기의 온도 차를 활용한 수열발전 시스템을 비롯해 풍력발전, 태양광발전, 중수 및 우수(빗물) 재활용, 연료전지 설치, 생활하수 폐열 회수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차양 시스템으로 태양 복사열 유입을 최소화하는 코오롱의 원앤온리타워./코오롱

GS건설 사옥인 서울 종로구 청진동 그랑서울과 강서구 마곡동 코오롱의 원앤온리타워도 친환경 리모델링을 실시했다. 그랑서울은 건물 외관에 커튼월 유리를 적용하고, 최첨단 빌딩 에너지 관리시스템(BEMS)을 갖춰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고 있다. BEMS 설치로 기존 대비 약 15%의 에너지를 절감했다. 원앤온리타워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개발한 강화섬유플라스틱으로 만든 차양 시스템으로 태양 복사열 유입을 최소화한다. 또 태양광과 지열 발전설비로 건물에서 사용되는 에너지를 자체 충당하고 있다.

MSCI는 “친환경 건물은 보다 효율적일 뿐 아니라 세입자의 입주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직원이 사무실로 복귀할 때 직원에게 보다 건강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