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PRI, 5개 기관 탈락...서명기관 요건 대폭 강화한다
프랑스 우체적 금융자회사 민간은행부문 BPE 등 5개기관 탈락 "전체자산의 90%를 책임투자 해야".. 까다로워진 기준, 국민연금에도 영향 미치나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은 최근 책임투자에 관한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 5개 기관을 탈락시켰다고 로이터통신이 단독 보도했다.
유엔 PRI는 2006년 전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코피아난이 주도해 만든 전 세계 기관투자자들의 책임투자 네트워크로, 현재 서명기관만 3000곳에 달하며 이들의 자산을 합치면 100조달러(11경6000조원)이 넘는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네덜란드공무원연금(ABP), 캐나다연금(CPP) 등 세계 최대 연금들과 HSBC, JP모건, BNP 바라바, 골드만삭스 등 책임투자에 관한 큰손들이 모두 서명기관으로 가입해있다. 한국은 국민연금을 포함, 대신경제연구소, 프락시스 캐피털파트너스, 브이아이자산운용, ESG모네타, 안다자산운용, 후즈굿, 서스틴베스트 등 8곳이 가입해있다.
이번에 탈락한 5개기관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BPE로, 프랑스의 우체국의 금융자회사인 ‘라방크 포스탈레(La banc postale)’의 민간은행부문이다. 5억달러(58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곳이다. 네덜란드 최대 노동조합 기금 ‘GFB’, 인도네시아의 ‘코르피나 캐피털(Corfina Capital)’, 미국의 ‘프라이머리 웨이브(Primary Wave) IP 투자운용’, 프랑스의 ‘델타 대체 운용(Delta Alternative management)’ 등은 자산 40억~310억달러(4조6000억원~36조원)에 달한다고 PRI는 밝혔다.
일부 탈락한 기관들은 성명을 내고 “서명기준을 충족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BPE는 성명을 내고 “PRI의 6대 기본원칙 중 하나를 준수할 수 없었지만, 현재 PRI 기준에 맞추기 위해 이 법적 구속조건을 해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GFB의 대변인은 PRI의 결정에 매우 실망했다고 설명했고, 나머지 기관들은 논평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로이터 통신이 밝혔다.
책임투자 기준 충족 못하면 2년간 재평가, 부족하면 탈락
이번 탈락이 이뤄진 계기는 최근 몇 년 동안 유엔 PRI에 쏟아진 요구와 지적 때문이다. PRI 서명기관들 중 일부가 투자 의사결정에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소를 포함시키지 않는 등 책임투자 원칙에 부합하도록 노력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PRI 대표인 피오나 레이놀즈는 “일부 서명기관들은 PRI 브랜드에 올라타서 다른 서명기관들이 하는 일의 혜택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에 이뤄진 첫번째 서명기관 탈락은 주로 규모가 작은 회사들에게 영향을 미칠 뿐, 실제 기후변화에 관해 책임투자자로서 행동하지 않는 일부 대형기관들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부 비평가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고 평했다.
PRI가 제시하는 책임투자 원칙은 총 6개 항목으로 이뤄진다. 투자분석과 결정과정에 ESG 이슈를 적용하고 투자대상에게 ESG 이슈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 투자산업의 원칙수용과 이행 촉진 등이다.
PRI에 서명하면, 매년 1월~3월의 기간 동안 지난해 원칙 이행에 대한 현황을 PRI에 보고해야 한다. 보고에 따라 PRI는 A+부터 E까지 6단계로 점수를 매겨 책임투자 이행수준을 평가한다. 만약 해당 보고가 불성실하거나 충분하지 못한 경우 UN PRI는 서명자에게 2년간의 재평가 기회를 준다. 이 과정에서도 다시 보고 내용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PRI는 해당기관을 서명자 리스트에서 탈락시킨다.
PRI의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서명기관들은 모든 관리자산의 최소 절반 이상에 대해 책임투자 정책을 시행해야 하며, 이를 이행할 담당직원 및 임원레벨의 감독책임자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 탈락한 기관들이 어느 기준에 미치지 못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PRI에 따르면, 165개 기관이 2년 동안 많이 개선되었지만, 새로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경고를 받았다. 경고를 받았던 기업 중 23곳은 다양한 이유로 서명기관 가입에서 빠지는 것을 택했고, 나머지 4곳은 이의를 적극 제기해 서명기관 요건을 충족했음을 성공적으로 증명했다고 밝혔다.
유엔 PRI는 향후 서명기관 자격요건을 더욱 강화할 방침임을 밝혔다. 오는 10월 21일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협의를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변경사항에는, 서명기관의 책임투자 정책이 전체 자산의 90%를 차지하도록 요구하고 그 정책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자산 운용과정에서, 관여(Engagement)와 투표(Voting)를 실시하는 것 또한 의무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 까다로워진 자격요건에 따라, 국민연금 또한 서명기관 유지에 영향을 받게 될 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