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내 ESG 공시기준 확정... 쟁점은?
정부가 올해 하반기 국내 ESG 공시기준을 확정하기로 했다. 2025년 ESG 공시 의무화를 위한 준비 작업이다. 공시 내용에 관한 검증과 국내 기업의 ESG 공시 지원 등을 포함한 ESG 공시 의무화 세부 방안도 하반기까지 내놓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21일 제1차 ‘민관합동 ESG정책협의회’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결정했다. 올해 중 ESG 공시를 의무화하기 위한 세부 방안과 공시기준을 마련하고, ESG 평가의 투명성과 공정을 위해 평가기관 가이던스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2021년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까지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의무화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적용대상 기업과 공시항목·기준은 미정인 상황이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급변하는 글로벌 ESG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이 뒤지면 수출, 투자, 국제 경쟁력 등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번 회의에서 국제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동향이 안건으로 올라온 이유다.
정부는 EU, 미국 등 글로벌 ESG 공시 논의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ISSB에 한국인 위원을 활동하게 하고, ISSB의 공식 자문기구인 SSAF(Sustainability Standards Advisory Forum)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현재 성균관대 백태영 경영 대학교수가 ISSB 초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ISSB 기준을 기반으로 ESG 공시 기준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조사 결과 자율적으로 ESG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은 증가하고 있다. 2019년 20개사에서 2020년 38개사, 2021년 78개에서 지난해는 128개사로 늘었다. 국내 기업의 경우 지속가능경영보고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공시하고 있다. 다만 TCFD, GRI, SASB 등 적용하는 국제 ESG 공시기준은 각 사마다 다르다.
지난 17일 금융위원회 주재로 열린 ‘ESG 금융 추진단’ 회의에서 "큰 틀에서 ESG 정책방향은 글로벌 스탠다드의 범위 내에서 검토하되, 세부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우리 경제의 상황도 고려될 수 있도록 보다 창의적인 접근이 요구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 한국회계기준원에 설치된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국내 실정을 고려한 ESG 공시 기준을 만들 예정이다. ESG 공시 세부 항목과 데이터 단위의 기준 설정 등 작업에 한국거래소 산하 한국ESG기준원의 연구 역량을 활용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국제적 정합성, 기업의 수용가능성, 투자자의 니즈(needs)를 균형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2025년과 2030년 두 단계에 걸친 개략적인 의무화 일정을 세분화해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KSSB 기준의 방향성 및 구체적인 포함 사항을 한국 실정에 맞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ESG 공시 의무화 도입 시 제3자 검증의무 도입 여부, 검증기관 규율체계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쟁점이 되는 부분 중 하나는 스코프 3다. ISSB와 유럽연합(EU)의 유럽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ESRS)은 스코프3 공시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스코프 3 공시를 의무화하지만, 제한적으로 적용한다.
공시 시기도 논의가 필요하다. ISSB 초안에 따르면 재무제표와 동일하게 3월에 보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현재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7월에 공시하고 있다. 또 ISSB와 ESRS, SEC은 제3자 검증 의무화를 두고 있으나, K-ESG 가이드라인에서는 제3자 검증기관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수준으로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공시기준 도입과정에서 업계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금융위는 “ESG는 그 자체로 가치 판단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때로는 이해관계자들 간에 상충되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며 “이해관계에 대한 균형있는 접근과 적극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는 “스코프3에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ESG 공시 시기에 기업 자율을 보장해달라”며 점진적 도입을 요청한 바 있다.
기재부는 산업계와 투자자, 민간 전문가 등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필요 시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ESG금융추진단회의’나 공개 세미나, ‘민관합동 ESG 정책협의회’ 등에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공급망 실사 대응·업종별 K-ESG 가이드라인 만들기로
이번 협의회에서는 정부의 업종별 ESG 가이드라인과 컨설팅 제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기업들이 공급망 실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 인력 부족 등의 애로가 있는 만큼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상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느끼는 올해 가장 큰 ESG 현안은 공급망 실사(40.3%), ESG 의무공시(30.3%), 순환경제(15.7%), 탄소국경조정제도(12.0%)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는 지난해 EU 공급망 실사 등에 대비하여 수출 중소ㆍ중견기업 대상으로 모의평가 및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했고, 중소ㆍ중견기업의 ESG 경영 부담 완화 및 자가진단 지원을 위해 공급망 대응용 K-ESG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올해는 수출 중소ㆍ중견기업을 대상으로 ESG 공급망 실사 관련 진단평가 및 컨설팅 사업을 추진하고, ESG 평가에 있어 투명성ㆍ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를 마련할 예정이다. 업종별 K-ESG 가이드라인도 만든다.
또 국내 ESG 인프라를 고도화하기 위한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사회적 채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특성화 대학원에 ESG 교육 과정을 개설하는 방안 등도 담겼다.
기획재정부는 “민간의견을 청취하고, 정책과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민관합동 ESG 정책협의회를 분기마다 1회 개최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