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P파리바도 소송, 삼림벌채 기업과 거래 않겠다 했지만 실사 없이 자금 지원
공급망 실사법 시행이 코 앞으로 다가온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는 최근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7년 세계 최초로 공급망 실사법을 도입한 나라로, 민사소송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시민단체가 소송 자격이 있는지에 관한 논의로 인해 그동안 소송이 활발하지는 않았지난, 대법원에서 시민단체도 소송 자격이 있다는 판결이 나온 이후 소송이 봇물 터지듯 나온다.
유럽 최대은행이 BNP파리바가 환경 및 인권단체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지난 27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단체들은 프랑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BNP는 실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삼림 벌채를 야기한 기업에게 자금을 대출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에서 주목할 점은 BNP 파리바가 직접 내놓은 삼림벌채 정책을 위반한 것이다.
2년 전 BNP 파리바는 삼림벌채에 관한 금융 정책을 강화해 발표했다. 생산자, 무역업자들이 2025년까지 아마존과 브라질 세라도(Cerrado) 지역에서 소고기나 콩 등을 재배하거나 생산지와 공급망에서 삼림벌채 제로화(0) 전략을 제시할 경우에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BNP 파리바는 "단순히 자금 조달을 중단한다면 기업들이 다른 대출 기관에 의존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기업과 공급망의 환경 및 인권 실태를 감시하겠다는 금융기관의 집단적 선언이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설명했다.
BNP 파리바가 이번에 자금을 대출해준 기업은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큰 육류 기업 말프리그(Marfrig)다. 이 기업은 2009년 부터 2020년까지 아마존 열대우림과 세라도 사바나우림에서 12만 이상 헥타르의 삼림을 불법 벌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 분야 비영리미디어 센티미디어(sentientmedia)는 말프리그, JBS, 폰테라 등 세계 최대 축산업계 5개의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5억580만톤이며, 이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총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브라질의 NGO 단체 지구산림위원회(Comissão Pastoral da Terra)와 프랑스 단체 우리 모두의 사업(Notre Affaire À Tous)은 “BNP 파리바는 삼림벌채와 탄소 배출을 야기한 기업에 지속적으로 자금을 지원한 정황이 포착됐다”며 “BNP 정책에 따르면 기업의 공급망을 완전히 추적해야 하지만 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BNP 파리바는 지난 2월에 이어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두 번째 소송을 받았다. 옥스팜, 지구의 친구들 등 환경단체 3곳이 BNP 파리바가 200개 이상의 새로운 화석 연료 프로젝트와 8개의 유럽 및 북미 석유 및 가스 회사에 자금을 간접지원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법률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2017년 프랑스 법률에 따르면, 기업들은 사업 활동으로 인한 인권과 환경에 대한 위험을 식별하고 예방해야 한다.
삼림벌채 리스크 높지만 자금 지원 계속 이어져
공급망 실사에 관한 규제가 점점 강화되는 반면 수많은 금융 기관들이 삼림 벌채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발간된 글로벌 캐노피의 연례 포레스트 500 보고서는 아마존, 스타벅스, 유니레버, 이케아 등 350개 기업들이 팜유, 콩, 쇠고기, 목재, 펄프 등 삼림 벌채 리스크가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이들 기업에게 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 웰링턴 매니지먼트, 웰스 파고 등 150개 금융기관이 이들 기업들에게 약 3조6000억달러(약 4716조원)의 대출을 제공했다. 직접 대출은 물론 주식, 채권, 인수 등 다양한 금융 상품으로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비영리 단체 캐노피는 보고서를 통해 “JP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이 ‘최악의 범죄자(worst offenders)’”라며 “이들은 삼림 벌채에 대한 약속을 받지 않은 채 720억달러(약 94조원)의 자금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금융기관은 제대로 된 리스크 정책도 갖추지 않았다. 삼림 벌채 정책을 최소 1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58개 금융 기관 중 16개만이 삼림 벌채로 인한 환경적, 재무적 리스크 감독 정책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금융 상품 서비스에서 삼림벌채 정책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 금융기관도 7개에 불과했다.
캐노피는 “앞으로 금융기관들은 삼림벌채에 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며 “공급망이나 사업 활동에서 관련 리스크가 발견될 시 반드시 경고를 보내야 하며, 기업들이 리스크 관리 계획을 설정해야 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캐노피는 글로벌 투자신탁운용사인 슈뢰더스와 글로벌 스탠다드 차타드를 선진 사례로 제시했다. 슈뢰더스는 2021년 포트폴리오에서 삼림 벌채 제거 측면에서 점수를 4%만 득점했다. 하지만 2025년까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새로운 삼림 벌채 관련 정책을 발표하고 금융 부문의 삼림 벌채 조치 계획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후, 슈뢰더스의 점수는 2022년 50%로 높은 성과를 보였다.
슈로더스의 영향 투자 리더인 캐서린 맥컬리(Katherine Mckerly)는 “삼림벌채를 제거하는 것은 투자기업들이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앞으로도 자연 자본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함으로써 금융 부문이 삼림벌채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뱅가드는 투자 스튜어드십 팀을 구성했으며, 포트폴리오 회사 이사회 및 임원들과 협력해 삼림 벌채와 같은 환경적 및 재무적 위험을 관리감독하는 정책을 펼쳤다. 또한 삼림벌채, 인권남용 등이 발생할 시에는 이를 즉각 시정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다.
삼림벌채를 제거하고자 하는 투자자그룹의 흐름은 아시아까지 확대되고 있다. 아시아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자그룹(AIGCC)은 삼림 벌채 리스크를 관리하고 투자자들이 관련 투자 정책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이니셔티브를 착수했다고 기후 미디어 카본 펄스(Carbon Pulse)가 밝혔다. AIGCC는 알리안츠, 블랙록, BNP 파리바, MSCI, 미쓰비시 등 전 세계 31조 달러(약 4경 610조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70개 이상의 기업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다.
AIGCC 디렉터 모니카 배(Monica Bae)는 “생물다양성, 지속가능한 토지 관리 정책만으로도 자연 기후 솔루션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투자자들이 삼림 벌채 리스크를 평가하고 포트폴리오 내 삼림벌채 영향력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